김지홍헌법재판소의 ‘대통령 정치적 중립 의무’ 판결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정치 중립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민주주의와 책임 정치 그리고 책임 재판의 중요성을 놓치게 만들 수도 있다.
지난 1월16일과 17일, 미국 연방대법원과 한국 헌법재판소는 각각 흥미롭고도 상반된 판결을 내렸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대통령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담하는 공무원이므로 선거 기간에 자기가 속한 정당을 지지하거나 상대 정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미국 연방대법원은 정당 지도부가 자기 구미에 맞는 사람을 판사 후보로 공천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당 공천을 받아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도 중립을 지켜야 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독립성과 중립성이 핵심인 판사조차 정당의 공개 공천을 받아 선출할 수 있다고 판결한 셈이다.

미국 판사의 대부분은 정당에 소속돼 있다. 연방 법관의 90% 이상이 대통령 소속 정당 당원 중에서 임명되며, 많은 주가 정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은 후보자 중에서 주 법원 판사를 선출한다. 주지사 등 정치인 선거와 동일한 선거 절차를 거쳐 뽑힌다. 그러다 보니 미국 판사는 정치 성향을 가지는 것이 당연시된다. 이는 임명권자인 대통령이나 판사 본인에 대한 선거를 통해 국민의 뜻이 정확하게 반영되는 책임 정치와 책임 재판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법관의 정치 중립성과 공정성을 제도로 확보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법관이 당적을 가질 수 없음은 물론이고, 법관의 업무 실적을 평가하는 것조차 주저해왔다. 법관의 고과를 따지기 시작하면 공정한 재판을 하지 못할 염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십수 년 전에 있었던 사법연수원 졸업 성적에 의해 법관의 승진과 보직을 결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아무리 재판을 못하고 편파적으로 해도, 사법연수원 성적이 좋으면 어느 시점까지는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법관의 ‘정치적 중립’은 누가 심판하나

ⓒ뉴시스지난 1월17일 노무현 대통령이 낸 헌법소원에 대해 판결하는 헌법재판소.
하지만 우리 법관이 그만큼 정치적으로 더 공정하게 재판을 하는지는 의문이다. 멀리 군부 독재 시절까지 갈 것도 없다. 지난해 12월28일, 서울고등법원의 한 재판부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가 정부로부터 208억원의 보조금을 교부받고 아무런 사업을 하지 않았더라도 정부가 보조금을 회수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이미 2006년 12월에 심리를 마친 사건이었는데, 특별한 이유 없이 1년 넘게 판결 선고를 미루어오다가 대통령 선거 결과가 나오자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손을 들어준 것이다. 정치적 고려가 있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이러한 판결을 보고 있노라면, 법관의 중립성을 보장하려는 제도가 도리어 중립성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법관을 국민의 책임 추궁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에게 선거에 관해 침묵할 의무를 부과하면서, 대통령이 선거에서 중립을 표하지 않으면 공무원도 편파적이 되리라 걱정했다. 대통령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 재임 기간 중에도 당적을 유지하며 각종 후보 공천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한다. 그러한 대통령이 대외적으로 소속 정당에 대한 지지 발언을 하지 않는다고 공무원이 대통령의 정치 성향을 모를까?

혹시 이번 판결이 엄연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정치 중립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정작 민주주의와 책임 정치 그리고 책임 재판의 중요성을 놓치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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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김지홍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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