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경찰·검찰·법원에 대한 이중 삼중의 민주적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
문 아무개씨(50)의 중학생 아들은 태권도 선수였다. 그는 헌신적으로 자식 뒷바라지를 했다. 전지훈련비나 식사비는 물론, 감독과 코치의 인건비까지 문씨 등 학부모가 감당해야 했다. 대다수 부모가 그렇듯 문씨 역시 자녀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아까울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이 속한 중학교의 태권도부 감독은 너무 심했다. 부모들이 모아준 돈에 만족하지 못하고, 태권도부 예산까지 횡령했다. 아이를 생각하면 그냥 못 본 척 넘어가야 했지만, 문씨는 문제를 제기했다. 문씨에 의해 감독의 횡령 사실이 만천하에 폭로됐고, 국가청렴위원회는 문씨에게 대통령 표창까지 수여했다. 

그러나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당장 아들의 고등학교 진학이 문제였다. 악감정을 품은 중학교 감독이 ‘골치 아픈 애’이니 받지 말라고 소문을 냈다. 살던 도시에서는 갈 곳이 없었다. 감독의 입김이 미치지 못하는 다른 도시의 고등학교에 겨우 들어갔지만, 소문은 그곳까지 퍼졌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예선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아들은 외국인 심판이 진행하는 국제오픈 대회에서 메달을 따올 만한 실력이었다. 심판들은 막무가내였다. 협회 차원에서 어린 선수를 죽이겠다고 작정한 것 같았다. 결국 아들은 태권도를 그만두었다.

문씨는 앉아서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교육청·경찰·검찰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문제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증거를 들이밀고 호소를 거듭해도 국가기관은 꿈쩍하지 않았다. 검찰에 고소한 것만 18번이나 되었다. 모두 한통속 같아 보였다.

“국가기관은 자기 이권만을 위해 움직인다”

그는 잘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이 사건에 매달렸다. 아내가 대형 할인점 판매원으로 나가야 할 만큼 가정 형편도 궁핍해졌다. 모든 것이 꼬여만 갔다. 왜 남들처럼 ‘좋은 게 좋은 것’이라 여기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 제기 이후 6년 동안 그가 느낀 점은 교육청·경찰·검찰 같은 국가기관이 모두 자기들의 이권만을 위해 움직일 뿐, 국민을 보살피는 기관은 아니라는 거였다. 아무리 애써봐야 결국은 ‘유전무죄 무전유죄’ ‘유권무죄 무권유죄’였다.

문씨 같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처음에는 대개 검찰이 제대로 수사하지 않는다는 민원을 제기한다. 그래도 담당 검사가 사건을 쳐다보지도 않으면, 이번에는 가해자가 아니라 담당 검사를 고소하게 된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 기소 독점과 기소 편의의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이 제 식구를 단죄하는 경우는 없다. 억울함은 쌓이고, 고소·고발 사건은 늘어간다. 하루 종일 법원과 검찰청 주변을 오가며 서류를 만들고 조사받고 재판받는 일이 반복된다. 법원·검찰청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사법 폐인’은 이렇게 양성된다.

억울함을 풀기 위한 이들의 발걸음도 끝없이 이어진다. 헌법재판소·청와대·국회·국가인권위 등을 거쳐 언론사와 인권단체로까지 이어진다.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을 들고 와 도와달라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사법 살해’당한 인혁당 관계자들이 명예를 회복하기까지 34년이 걸렸다. 1991년에 일어난 ‘유서대필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결같이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사건들인데도 그렇다.

하물며 이름 없는 민중은 오죽할까.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해결책은 경찰·검찰·법원에 대한 이중 삼중의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하지만 권력을 통제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파편처럼 개인으로 흩어진 피해자들이 홀로 가슴만 치는 이런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기자명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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