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재(地位財)’란 개념이 있다. 상품이지만, 그 소비의 주된 목적이 ‘실용성’은 아닌, 그런 상품이다. 지위재에서는 실용성보다 그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얻어지는(혹은 얻어진다고 상상되는) 사회적 지위가 더 중요하다. 명품 핸드백을 떠올리면 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나는 이른바 ‘진보’로 불리는 사상이나 취향도 일종의 지위재 아닌가 하는, 불손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컨대 ‘진보’는 별로 ‘실용적’이지는 않다. 마르크스나 들뢰즈, 라캉을 아무리 읽어봤자, 그 소비자의 경제 생활이 즉각적으로 윤택해지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보(혹은 진보로 여겨지는) 지식을 읽고 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지위’는 분명히 있다. 이 부패하고 균질적인 대중사회로부터 ‘나’를 차단하고 차별화함으로써 쿨하고 정의로운 자기 정체성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1930년대 잡지 〈혜성〉에는 ‘사회주의 개설서’에 대한 매우 흥미로운 광고가 실려 있다. ‘사회주의는 처세의 상식’이란 제목의 이 광고는 “사회주의를 믿고 안 믿는 것도 딴 문제이고, 사회주의가 실현되고 안 되는 것도 딴 문제이다. 다만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행세를 하게 된 것이 오늘날의 형편이다. 누구나 처세 상식을 알려거든 하루바삐 이를 읽어볼 일이다.” 식민지 조선에서 사회주의 이론은 ‘처세의 상식’, 즉 지위재이기도 했던 것이다. 당시엔 사회주의자 행세를 하지 못하는 청년은 지식인으로 취급받기 어려웠다고 하니까.
그런데 지위재의 소비자는 배타적이기 쉽다. 샤넬 핸드백은 소수만 가져야 지위재다. 모두가 가진 샤넬은 더 이상 지위재도 명품도 아니다. 그 소유자를 차별화시켜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지위재를 이미 가진 자는 같은 상품을 노리는 이에게 신경질을 부릴 수도 있다.
그토록 진보로 불리고 싶었던 국민참여당을 ‘진보’에 끼워주지 않겠다고 애면글면하던 진보 정당인들과 진보 감별사들, 그리고 안철수 교수를 굳이 (신)보수로 서둘러 범주화하려는 진보 지식인 등을 보며 어렴풋하게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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