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영국 희극에 빗대지 않아도 21세기 베니스는 부족함 없는 상인의 도시다. 바다 위에 뜬 인공섬은 이국적인 휴양 판타지를 품은 외지인과 이를 상대하는 현지 장사치들의 결합이 있을 때 완벽하게 가동한다. 여름 성수기에 맞춰 격년으로 개최되는 대형 미술축제 베니스 비엔날레는 전시장 관문에 당도하기 전 세계 각지에서 촘촘히 모여든 한철 인파 사이를 통과해야 한다. 전적으로 우연이지만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내세운 전시 테마, 일루미네이션(illumination:빛·조명)은 모든 관광 명소가 그렇듯 조명이 둘러싼 이국적 섬 도시의 환한 빛을 지목할 때 부족함이 없다. 아니 그렇게 읽힌다. 대부분의 유럽처럼 베니스의 상가도 가게 문을 일찍 닫지만, 산마르코 광장에서 지새는 밤이 결코 어둡게 느껴지진 않는다.

참여 작가가 80명이 넘는 대형 아트쇼를 전시 주제 일루미네이션에 견주어 네댓 줄로 요약·촌평하는 건 무리다. 전시 주제와 좀체 어울릴 수 없는 작품 다수를 열거하며 기획의 총체적 부실을 꼬집는 건 가장 흔한 비평법이었다. 그걸 불성실한 비평이나 꼼수로 깎아내릴 순 없지만, 비엔날레 같은 초대형 미술 행사는 단일 주제 밑으로 100여 점에 이르는 예술품이 일사불란하게 수렴되는 구조를 취하지 못한다. 상인의 도시답게 베니스 비엔날레를 찾는 관람객 다수는 세계 각지의 여행 인파가 압도적이다. 모든 여행안내서가 홀수 해마다 열리는 베니스 필수 방문 코스로 비엔날레를 지목해서일 것이다. 격년으로 비엔날레가 거는 주제는 개최를 위한 명분의 대문일 뿐 작품 흐름을 짚는 유의미한 진입로이긴 어렵다. 괜히 작품들 사이를 걸으며 ‘조명(일루미네이션)’ 효과를 직설적으로 예시한 조형물을 찾느라 애먹지는 마시길. 하물며 참여 작가나 커미셔너는 이미 준비된 대표작을 출품하기 마련이라, 전시 총감독이 내건 (형이상학적) 주제에 작품을 물리적으로 일치시키느라 애쓰지는 않는다. 


ⓒ반이정 제공알로라와 칼자디야의 공동 작업 〈육상 경기〉는 전쟁과 스포츠 강국 미국을 풍자했다.

54회를 맞는 2011년 베니스 비엔날레 관련 뉴스를 검색하면 자주 잡히는 이미지가 뜬금없이 르네상스 화가 틴토레토다. 그의 대형 회화 3점이 본 전시장에 해당하는 지아르디니 센트럴 파빌리온 메인 룸에 걸려서다. 삼엄한 경비 배치는 물론이거니와 사진 촬영 자체가 금지된 유일한 전시실이다(비엔날레의 모든 전시실 내부는 작품 촬영이 허용된다). 지난해 10월 비엔날레 예술총감독 비체 쿠리거는 틴토레토로부터 비엔날레 기획의 영감을 얻었노라 진술한 바 있다. 시대는 르네상스(후기)에 속하지만, 그 시대의 정교한 이성주의 미감과 구성을 파기하고, 극적으로 빛의 효과에 주력한 화술로 비정통 미학의 토대를 세운 화가가 틴토레토다. 빛의 극적인 표현이 당대 조형 관례를 파괴한 것이다. 


초대 작가의 심기 불편하게 한 카텔란의 작품

그렇다고 제54회 비엔날레가 동시대 미술에서 조명(빛)의 드라마적 응용을 확인시키는 기획전인 것은 물론 아니다. 당대 미학의 도그마를 깬 틴토레토처럼 현대 미술과 전시공학의 룰을 부수는 작업을 찾자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이거 좀 심심하다). 매머드급 미술행사의 관전법은 인습에서 벗어난 작품 몇 점을 건져내면 족하다. 다만 상투적 미학 타파를 검토한답시고 수백년 전 명장까지 호출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인습 타파는 이미 현대 미술의 불문율인데. 마침 삼엄한 경비가 선 틴토레토의 메인 룸 천장 위로 족히 100마리는 됨직한 박제 비둘기가 줄지어 앉은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인습 위반으로 치면 저 박제 비둘기 출품자를 빼놓을 수 없다. 비둘기 설치는 현대미술계 최고 악동으로 꼽히는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비엔날레 출품작 〈타인들〉(2011년)이다.

전시의 일반 규칙에 따르면 출품작은 전시될 방 하나를 지정받아 관객을 맞는다. 카텔란은 지아르디니 센트럴 파빌리온 내부의 거의 모든 전시실 천장 위로 박제된 비둘기(마치 살아 있는 듯 포즈를 취한다)를 설치·출품했다. 그 수가 무려 2000마리라고.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벽 위의 작품보다 천장 위에 있는 비둘기 떼를 올려보기 일쑤다. 비둘기의 수가 어찌나 많던지 흡사 산마르코 광장의 비둘기를 개막 직전 죄다 잡아들여 박제한 게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지아르디니 센트럴 파빌리온 전체가 카텔란(의 박제 비둘기)의 간섭 아래 놓인다. 그 안에 초대된 작가들의 심기가 불편할 만했다. 방 배정은 받았지만 주인공 자리를 빼앗긴 것 같은 찜찜함. 모든 전시장에 산재한 비둘기가 비엔날레 전체를 내려보는 형국. 카텔란은 자신의 서명을 전시장 전체에 남겼고 작금의 미술 전시가 무엇에 주목하는지를 성찰하고 야유한다.

ⓒ반이정 제공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타인들〉. 전시실 천장 위에 살아 있는 듯 박제된 비둘기 2000마리를 설치·출품했다.

제아무리 100년 전통의 전문가 축제여도, 초대형 미술축제는 대중 취향을 항상 안배하기 마련이다. 소수 취향과 다수 취향이 확연히 갈리는 장면은 비엔날레 전시장 몇 곳에서 확인된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크게 아르세날레 파빌리온과 지아르디니 파빌리온으로 나뉘고, 지아르디니 파빌리온은 본전시에 해당하는 센트럴 파빌리온과 출품 국가의 단독 전시가 열리는 국가관으로 구성된다. 아르세날레에서 입장객 시선을 끈 건 남아공 작가 니컬러스 흘로보가 고무 타이어처럼 산업 폐기물을 이어 붙여 익룡 형상을 만든 다소 식상한 정크아트였다.

아르세날레에서 대중을 낚은 게 후진국 남아공이었다면, 지아르디니는 초강대국 미국의 알로라와 칼자디야의 공동 작업이 시선을 낚았다. 미국관 바로 앞에 탱크(M1 Abrams)가 뒤집혀 있고 그 위로 설치된 러닝머신 위에서 미국 올림픽 팀의 구성원 한 명이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데, 굉장한 볼거리다. 이 괴상한 퍼포먼스는 매일 시간을 정해 행해지는데 뒤집힌 탱크의 무한궤도가 러닝머신과 함께 가동하기 때문에 엄청난 굉음이 지아르디니 전체를 시끄럽게 울린다. 덕분에 주변을 지나던 입장객이 죄다 미국관으로 집결한다. 홍보조차 미국다운 이 작품 〈육상 경기〉(2011년)는 어설픈 반전(反戰) 메시지를 탑재하기보다는 전쟁 중장비를 과도하게 전시장으로 동원해 전투적 경쟁(전쟁과 스포츠) 부문에서 지구촌 서열 1위를 지키는 자국의 정체성을 비록 상투적 방식이지만 자조하는 제스처로 보여주었다.

속내야 알 수 없지만 전시장에서 만나는 이런 뜻밖의 볼거리는 대중의 카메라 세례를 한 몸에 받는다. 휘황하게 빛나는 비엔날레를 둘러보느라 지친 관객의 눈은 파빌리온을 벗어나자마자 또다시 베니스 상인의 점포 조명과 직면한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테마 ‘일루미네이션’은 2011년 54회 행사에 한정짓기에는 무리한 타이틀 같다. 관광의 섬 베니스의 불야성은 일루미네이션을 일관되게 실현해왔으니까.

기자명 반이정 (미술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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