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익경부운하 공사가 끝나고 나면 연간 8만 개가량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던 일자리는 신기루가 걷히듯 사라지고, 물가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경부운하 사업은 몇몇 재벌 건설사와 지역 토건업자의 배만 불릴 것이다.

미국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재미 동포의 집에 놀러가 포도주를 여러 병 따며 흥겨운 저녁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밤늦도록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그분이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특히 작은 정부와 자유시장을 앞세우는 미국 공화당의 정책이 언제나 그렇듯 대선을 앞두고 부시가 감세 정책을 내놓았다. 그러자 공원 벤치에서 노숙하며 구걸로 연명하는 홈리스까지 열광적으로 환호하더란다. 그들 처지에서는 공화당의 감세 정책이 아니라 세금을 늘려서 사회복지를 확대하려는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경제학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논리이다.

그렇지만 세금을 안(못) 내는 홈리스마저 정부가 세금을 줄이면 자기들도 세금을 덜 내게 될 것이라고 착각한 모양이었다. 정치인이 내세우는 슬로건이나 정책을 일반 대중이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때로는 정반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일화이다.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는 이명박 당선자의 노림수는?

경부운하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 달아오르는 지금, 몇 년 전의 술자리 대화가 새삼 떠오르는 까닭은 우리 서민 대중이 운하를 건설하면 갑자기 일자리가 늘어나고 내 앞에도 개발 이익이 떨어지리라는 환상에 젖어 있지나 않은지 염려가 되어서다. 운하를 찬성하는 측의 주장에 따르면 4년 동안 무려 14조1000억원의 돈이 풀리고, 30만명의 일자리가 생겨난다(이 수치에 대해서는 엄밀한 검산이 필요하고, 이미 많은 전문가가 그 같은 계산의 허구성을 지적했다).

돈이 풀리고 고용이 늘면 일시적으로 경기가 회복되고 소비가 활발해져서 경제가 살아나는 것처럼 여겨진다. 운하 구간의 일부 지역에서는 부동산 값이 껑충 뛰어 하루아침에 땅 부자가 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고 나면 연간 8만 개가량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던 일자리는 신기루가 걷히듯 사라지고, 물가는 가파르게 상승할 것이다. 운하 주변의 금싸라기 같은 땅을 가진 현지인이 몇이나 되는지도 궁금하지만, 살아오는 동안 부동산으로 횡재를 경험한 서민 대중이 과연 있기나 한지 의문이 생긴다. 그러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막연히 내게도 이득이 돌아오리라는 꿈에 부풀기 쉽지만, 대규모 토목 사업의 이익은 결코 서민 몫이 아니다.

경부운하 사업은 결국 몇몇 재벌 건설사와 각 지역 토건업자의 배만 불릴 것이다. 그렇더라도 기업이 성장하면 결국 국민 모두가 잘살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운하가 경제성을 가진다면 그런 주장도 나름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운하의 경제성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비판이 따른다. 운하 추진 측은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2.3이라고 주장한다. 쉽게 말해 100원 투자하면 230원이 벌리는 알짜배기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분석으로는 그 비율이 최대 0.28, 그러니까 100원을 들였을 때 아무리 많이 잡아도 28원만 겨우 건지고 나머지 72원을 손해 보는 사업이다. 운하로 화물을 실어 나를 화주도 거의 없단다. 이것은 큰일이다. 14조원을 들여서 지은 운하가 10조원의 적자를 떠안긴다는 말인데, 결국은 국민 세금으로 그 손실을 충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 주머니에 돈이 들어오기는커녕 내 주머니에서 돈이 새어나갈 판이다(운하 건설이 환경을 얼마나 파괴할지에 대해서는 결과가 너무도 명백하고 끔찍하니까 아예 말을 꺼내지도 않겠다).

운하 사업의 경제성을 놓고 2배 이상 남는 장사라는 주장과 10조원을 까먹는 사업이라는 상반된 주장이 극단을 달리는 가운데 국민은 누구의 셈법이 옳은지 판단하지 못해 우왕좌왕한다. 이런 상황을 즐기듯이 이명박 당선자는 ‘반대 여론을 수렴하여 추진하겠다’라는 자기모순의 수사학을 구사하며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왜 그럴까? 합법 절차를 건너뛰는 특별법을 만들어서라도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이려는 까닭은 무엇일까? 운하 자체가 목적이 아닌 고도의 정치 계산이 따로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우리 국민도 감세 정책에 열광하는 미국의 홈리스처럼 얕잡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 외부 필자의 기고는 〈시사IN〉의 편집 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자명 김상익 (편집위원·환경재단 도요새 주간)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