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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70만톤 보내주면 남측 제안 100% 수용"

북한이 정상회담에서 평화선언 등 남한의 제안을 모두 들어주는 조건으로 쌀을 지원해달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미국의 행보도 달라질 수 있다.

남문희 전문기자 bulgot@sisain.co.kr 2007년 10월 01일 월요일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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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사진기자단
 
 
   
 
ⓒAP Photo
 
 
노무현·김정일·부시의 공통점은? 셋 다 럭비공을 연상케 한다는 점이다. 어디로 튈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노·김 정상회담 결과도 예측불허인데, 부시 대통령마저 게임 판에 뛰어들어 혼란스럽다. 지난 9월25일 북한을 시리아 이란 벨로루시와 함께 ‘야만 정권(Brutal Regime)’이라고 일갈한 부시의 발언은 마치 출사표를 방불케 했다. 얼마간 보였던 ‘착해진 부시’가 아니라 ‘악의축’ ‘피그미’ 발언 때의 그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무엇이 부시를 화나게 했을까. 노·김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는 더욱 혼미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상회담부터 전망해보자. 전문가들은 노·김 두 사람의 화끈한 성품으로 인해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해왔다. <시사IN>은 정상회담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기 위해, 단서를 찾아왔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남쪽의 대통령을 북한이 어떤 입장과 방안으로 맞으려 할지에 주목했다. 평양과 베이징에서 북측과 접촉한 인사들을 탐문하는 과정에서, 북의 전략가들이 ‘정상회담에 대비한 3대 방침’을 세워놓고 만반의 준비를 해왔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첫 번째 방침. ‘평양식’으로, 극진하게 예우한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안공항에 깜짝 등장해 ‘평양식 예우’의 전범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김 위원장이 어디까지 마중 나올 건지가 화제가 됐지만, 방침대로라면 이번에는 다른 인물이 등장할 것 같다. 김 위원장 대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개성까지 내려와, 노 대통령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북의 명목상 제 2인자인 김영남 위원장이 개성으로 마중 나오는 것만도 보통의 예우는 아니다.
이런 흥분과 기대감은 회담 초입까지 계속 이어질 것이다. 바로 두 번째 방침, 남측이 제기하는 모든 의제와 요구 사항을 통 크게 수용한다. <시사IN>이 확인한 바 실무접촉 과정에서 남측은 북측에 크게 다섯 가지 분야의 제안을 했다. 첫 번째는 ‘평화선언’으로 노 대통령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해왔다. 평화선언은 북방한계선(NLL) 문제와 동전의 양면처럼 묶여 있다. 두 번째는 6·15 공동선언 제2항 통일방안을 한 걸음 더 진전시키기 위해 ‘남북통일방안 연구위원회’ 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세 번째는 경제협력 분야로 해주에 제2의 개성공단이라고 일컬어지는 황해도공단을 건설하는 문제, 그리고 (주)대우조선해양의 조선소 건설 등이다. 네 번째는 농업, 과학기술, 보건복지 분야의 대북 지원 사업. 마지막으로 일부 납북자에 대한 시범 송환 이벤트 등이다.

정상회담 대비한 북한의 3대 방침

남측의 대북 제안에 대해 북측은 면밀하게 검토해왔고 이미 결론도 나와 있다. 한마디로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들이기 때문에 당장 북에 도움이 될 게 없다는 것이다. 또 임기 5개월밖에 안 남은 노 대통령이 끝까지 책임 질 수도 없어, 차기 정부로 넘어갈 터인데 차기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실효성은 별로 없고 정치성이 강한 제안들이라고 이미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주)대우조선해양의 조선소 건설 사업을 예로 들어보자. 겉보기에는 6억 달러 이상의 대규모 경협 사업이라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대우조선측이 그동안 20여 차례나 북측과 접촉해서도 뾰족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남포, 원산, 나진·선봉 등 세 군데 중 한 곳을 후보지로 물색해왔지만, 남포와 원산은 북의 군항이라 무척 까다롭다. 군항의 일부를 개·보수하려면 막대한 비용을 사전에 지급해야 할 텐데 대우조선해양으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대북사업 가운데는 겉보기는 화려해도 실상은 초라한 경우가 많다.
남측의 제안들에 대해 이미 회의적 결론을 내려놓은 북한. 그러나 막상 회담 과정에서는 절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방침의 요체다. 남쪽의 어떤 제안에 대해서도 통 크게 수용한다는 것이다.
다음 세 번째로 넘어간다. 사실 앞의 두 단계는 모두 이 세 번째를 위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극진하게 대우해주고 당신들의 요구도 모두 받아들였으니, 이제 우리 얘기도 들어달라.’ 이게 바로 세 번째 북의 방침이다. 북은 남쪽에 무엇을 말하고자 할까. 결코 쉽지 않은 뭔가를 요구하려는 것이다.
그건 과연 뭘까. 바로 쌀이다. 쌀을 지원해달라는 것이다. 북의 2천만 주민이 올해 겨울과 내년 봄 춘궁기까지 견디는 데 필요한 약 70만t 규모의 쌀을 지원해달라는 게 바로 북측 요구 사항의 핵심이다. 동절기에 필요한 40만t과 춘궁기에 필요한 30만t, 합해서 70만t이다. 이밖에 중후장대형 프로젝트 말고, 노 대통령이 남은 임기 5개월 동안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몇 가지 프로젝트가 덧붙여질 수도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쌀 지원이 최우선이다.
70만t이면 정부가 매년 북에 지원하는 양의 2배가량이다. 규모도 그렇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다. 북은 왜, 7년 만에 북을 찾은 남의 손님에게 이토록 큰 부담을 지우려 할까. 손님을 불러놓고 너무하는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지금 그런 것을 따질 처지가 아니다.

   
 
ⓒ연합뉴스
지난 6월30일 군산항에서 대북 쌀차관 40만t에 대한 북송 작업이 진행되었다.
 
 
지난해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소동으로 남쪽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대북 식량지원이 끊긴데다, 올해 8월의 대홍수로 지금 북의 식량 사정은 최악이다. 현재도 매일 굶어 죽는 사람이 있고, 이대로 겨울을 맞게 되면 대규모 아사 사태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음이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1995년과 같은 기근이 또다시 발생할 경우 북한 정권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미국 전문가들의 지적도 다시 등장했다.
체제 유지의 버팀목 역할을 해온 엘리트층의 이반을 김 위원장은 특히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하라는 대로 다 해왔는데 결과가 이게 뭐냐며 그들이 이미 삐딱한 시선으로 김 위원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몸이 불편하다고 알려진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 임한 이유가 바로 식량 때문이라는 지적에 이르고 보면,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다. 그가 사전에 북의 다급한 사정을 알고 대책을 강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책 없이 갔다면 매우 곤혹스런 상황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 면전에서 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실무진 간 협상에서 불거지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결국 노 대통령이 답을 해야 한다.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하나는 어떤 식이든 대가성 있는 거래는 하지 않겠다는 그동안의 원칙을 지키는 방안. 이 경우 회담 분위기가 당연히 경색될 것이다. ‘우리는 당신들 제안을 다 들어줬는데 당신들은 왜 우리 제안을 거절하느냐’ 라며, 남측 제안을 모두 거부할 수도 있다.
노대통령이 마지못해 수용할 수도 있다. 이때는 돌아와서가 문제다. 당장 쌀 70만t을 마련할 예산도 없을뿐더러 국회의 승인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노 대통령이 약속을 못 지키면 남북관계는 또다시 힘들어진다. 정상회담 이후, 속으로 끙끙 앓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Reuters=Newsis
9월25일 유엔총회에 참석한 부시 대통령.
 
 
부시는 왜 화가 났나

엎 친데 덮친 격으로 ‘화가 난’ 부시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노려보고’ 있다. 그러다가 정확하게 노 대통령을 곤란하게 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부시 대통령이 9월25일 유엔에서 북을 야만 정권이라 한 것에 대해 의례적인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북한만을 특별히 언급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9월27일부터 시작되는 6자회담을 앞두고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워싱턴 내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그 배경이 만만치 않다.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은 이미 북한·시리아 간의 핵물질 유출 소동에서도 잘 드러났다. 북·미 관계를 시기하는 네오콘 일부의 흘러간 옛 노래쯤으로 여겼던 이 사안이 눈덩이처럼 확대되더니, 6자회담 석상에까지 영향을 끼칠 기세다. 시기상 부시의 유엔 연설이 모종의 방향 전환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시는 왜 화가 났을까. 국내의 한 전문가가 백악관 내부 사정에 정통한 워싱턴의 한 인사에게 조회한 바에 따르면, 지난 9월7일 시드니에서 있었던 아펙(APEC)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양 정상의 기자회견 시간에 노무현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두 차례나 평화협정 문제에 보충 답변을 다그치는 해프닝이 벌어진 데 대해, 우리 정부는 통역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무마했지만, 워싱턴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마디로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을 공개리에 망신을 줬고, 외교상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분노는 이미 지난 9월12일자 국내 한 신문에 빅터 차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동북아국장이 “노 대통령의 행동은 공개석상에서 동맹국 간에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없음을 보여줬다”며 전직 미국 외교관으로서는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칼럼을 쓴 데에서도 잘 드러났다.
문제는 그 정도에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앞의 국내 전문가는 “워싱턴에서는 FTA 문제를 두고 노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었다. 자기가 하자고 해놓고 협상 과정에서 너무 빡빡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참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펙 회담에서 봉변까지 당하자 부시 대통령의 감정이 폭발해버린 것 같다”라며 우려했다.
실제로 부시 대통령이 감정적으로 일 처리를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없으나 ‘노 대통령 재임 기간에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라는 게 지금 워싱턴의 분위기이다. 일단은 남북 정상회담 결과를 보고 방향을 잡을 것이라고 한다. 노·김 회담이 성공적일 경우, 뭔가 찬물을 끼얹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핵 폐기가 이뤄지지 않으면 올해 안에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는 없다’는 멘트가 불쑥 튀어나올 수도 있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회담 성과가 별로 없어 노 대통령이 빈손으로 돌아올 경우, 워싱턴은 보란 듯이 북·미 관계 개선으로 달려갈 수도 있다. 라이스 방북이 추진되는 등 원래 프로그램이 가동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다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또 다른 상대인 북한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들과 상관없는 일로 피해를 보게 될 경우 가만히 있을 북한이 아니다. 9월27일부터 시작되는 6자회담에서 미국이 남북 정상회담 또는 노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빡빡하게 나올 경우, 화가 난 김 위원장이 의도적으로 노 대통령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갈 수도 있다. 이는 정상회담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미국은 한편으론 북을 달래면서, 또 한편으로 노 대통령을 골탕 먹이는 방법을 찾으려 애쓸 것이다.
노무현·김정일·부시, 얽히고설킨 이들 개성파 지도자들의, 난형난제 수 싸움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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