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우 편집국장
〈로마인 이야기〉를 쓴 일본인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탈리아로 건너가 그 나라 말로 자유롭게 소설을 쓸 수 있는 수준까지 공부한 인물이다. 그런 시오노 나나미가 몇 년 전 한국에서 강연할 때 얘기한 내용은 뜻밖이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외국어를 잘 가르칠 수 있느냐”라고 묻는 한국의 열성 학부모에게 그녀는 “모국어를 잘 가르치라”고 충고했다. 요컨대 ‘모국어에 능통해야만 남의 나라 말로 정확하게 자기 의사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현재 전세계에서 통용되는 언어는 약 6000개이다. 언어학자에 따르면 금세기 안에 그 절반인 3000개쯤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지금 170여 개인 아메리카 선주민의 언어는 100년 안에 5개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호환 마마에도 끄떡하지 않고 전염병이나 천재지변도 이겨내며 수천, 수만 년을 이어온 언어들이 겨우 100년 사이에 자취를 감추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경제의 세계화, 시장의 거대화와 단일화 때문이다. 세계화는 주변부인 농촌 사람과 소수민족을 도시로 불러들여 그들의 전통과 문화와 가정을 무너뜨렸다. 주변부의 젊은이는 먹고살기 위해서 토착 언어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독일어권에 둘러싸인 슬라브계 소수민족 언어인 소르브 어는 나치의 탄압 속에서도 살아남았지만 요즘 거의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독일 경제권에 예속된 슬라브계 젊은이가 더 이상 두 가지 언어를 습득하는 수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어학에서는 ‘하나의 언어가 이중 언어 생활자에 의해 유지되는 것은 곧 그 언어가 사라질 신호’라고 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고등학교에서 영어뿐만 아니라 일반 과목도 영어로 수업을 하는, 이른바 ‘영어몰입식’ 교육을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해 논란이 뜨겁다. 논의는 주로 2년 안에 공교육이 그런 준비를 할 수 있는지, 사교육비가 더 늘어나지는 않을지 정도에 머무는데 문제는 그보다 훨씬 심각하다. 이는 우리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과연 대한민국을 이중 언어 생활 구역으로 만들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이다.

만약 그럴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순서가 틀렸다. 시오노 나나미의 얘기대로라면 모국어 교육에 먼저 힘을 쏟아야 한다. 가뜩이나 자기 애가 영어를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면서 모국어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은 하나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세태가 아닌가.

이대로라면 이중 언어 생활에서 어떤 언어가 승자가 될지 자명하다. 이미 ‘맙소사’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물지 않은가.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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