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윤무영성심성의껏 봉사하는 사람(위)이 많지만, 여러 혜택을 누리려 잠시 시늉만 하다 가는 이도 있다.

“자원봉사자들에게 방을 내주면 오히려 손해입니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김 아무개씨는 자원봉사자들이 썩 반갑지 않다. 그는 기름 제거를 돕겠다고 온 이들에게 숙박료를 다 받을 수 없어 하룻밤 2만원에 방을 내주고 있다. 요즘에는 자원봉사자 수가 줄어 하루에 방이 한두 개 찰까 말까다. 그러나 방 한 칸을 데우더라도 건물 전체에 보일러를 틀어야 하기 때문에 벌이보다 기름값이 더 나간다.

군청 측은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주민이 자발적으로 저렴하게 숙소를 제공하고 있다”라고 설명했지만 김씨 처지에서는 ‘울며 겨자먹기’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여관 문을 닫아버리는 게 낫다는 심정이다.

자원봉사 시간 '조작'하는 대학생도 출현

지난 1월20일을 기점으로 태안을 찾은 자원봉사자는 115만명을 넘어섰다. 태안군 측은 국민 성원에 고마움을 표시하며 지속적 방문을 요청하고 있다. 정부는 태안을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해 자원봉사자들에게 갖가지 혜택도 준다. 그러나 이런 혜택을 노리고 태안으로 향하는 얌체족도 있다.

최근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방제작업 사무실에 한 대학 행정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학교 학생이 태안에서 ‘하루 16시간’ 동안 자원봉사를 했다는 확인서를 받아왔다며 사실 확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전화를 받은 담당 직원은 “하루에 최대 8시간까지 작업에 참여할 수 있다. 아마도 학생이 시간을 조작한 것 같다”라고 답해줬다고 한다. 군청 관계자는 “실제로 일한 시간보다 더 많이 써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많다”라고 귀띔했다. 태안에서 받아간 자원봉사 확인서는 일부 대학에서는 학점으로, 고교생에게는 생활기록부에 올라가는 봉사시간으로 인정된다.

1월19일 오후 만리포 자원봉사센터에서는 한 20대 청년이 톨게이트 비용을 면제받기 위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가 가려는 곳은 스키장이 있는 용평이었다. ‘놀러’가는 길에 태안에 들러 방제 작업에 잠시 참여한 것이다. 태안에 자원봉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확인서 한 장이면 전국 어디를 가든 고속도로 톨게이트 비용이 무료다.

"자원봉사자가 내 일거리 빼앗고 있다"

직장인의 경우 자원봉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하루에 5만원을 기부한 것으로 간주되어 이 금액만큼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잠시 시늉만 하다 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 태안군청 문화정책과 강경희씨는 “자원봉사자 한 명이 돌 하나만 닦고 가도 큰 도움이 되지만, 그들의 소비가 태안 경제를 되살릴 것으로 기대하는 주민이 더 많다”라고 말했다. 방제 작업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이 태안을 찾아 돈을 써주기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태안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지갑을 여는’ 자원봉사자는 극히 일부다. 자원봉사센터 주변에는 적십자사 등에서 나서 무료 급식을 해주고 있다. 국수나 라면 등을 간식으로 내놓는 천막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반면 횟집 등 바닷가 주변 음식점은 거의 문을 닫은 상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태안군의 공식 견해와 달리 내심 자원봉사자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주민도 늘고 있다. 모항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방제 작업에 참여해 일당을 받는 것 외에 다른 생계수단이 없는 처지라 자원봉사자가 내 일거리를 빼앗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라고 말했다. 기름 유출 사건이 만들어낸 씁쓸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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