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조남진

자신의 삶을 남 앞에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 정욜씨(33·사진)는 처음에 자신이 없어서 몇 차례 출판을 고사했다고 했다.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또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될 상처들을 마주하는 일이 두려웠어요.” 그는 ‘편견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사람이다. 정씨는 ‘인권재단 사람’과 ‘동성애자인권연대’에서 일하는 인권운동가이며, 동성애자이다. 그리고 그의 연인은 에이즈 환자이다. 그러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커밍아웃’하게 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쓰면서 위로가 됐어요. 어떤 사람들은 평생 살아도 경험하기 힘든 일이잖아요(웃음). ‘아, 나 잘 견뎌왔구나. 기특하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처를 햇빛 아래 고스란히 드러내고 소독하는 느낌이랄까요. 이건 제 이야기이지만,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 다른 동성애자들에게 지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정씨는 부모에게 세 차례 커밍아웃을 했다. 아직 전하진 못했지만, 이번에 가장 먼저 책을 선물하고 싶었던 사람 역시 부모였다. 그러나 부모는 그가 ‘되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못했다. 올해 3월 정씨는 6년간 다니던 유명 도넛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 인권운동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출연한 영화 〈종로의 기적〉을 통해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회사에 알려졌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전 직장 동료들은 자발적으로 정씨가 일하는 인권 단체의 후원인이 되어주었다. “언젠가 부모님으로부터도 이런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난 7월24일 미국 뉴욕 동성결혼 합법화 첫날. 많은 커플이 식을 올렸다. 정씨는 얼마 전 본 외신 사진 한 장을 잊지 못한다. 휠체어에 앉은 80대 할머니와, 그 휠체어를 밀어주던 70대 할머니의 결혼 사진. 정씨는 “내 노년도 아름다울 수 있겠구나, 하고 노년을 꿈꾸게 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ilhostyl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