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한국은 20대에게 ‘비정규 알바’를 권하는 사회다.

〈88만원 세대〉는 필자가 한국 경제 대안시리즈로 집필하는 4권의 책 중 1권에 해당하고, 현재 2권까지 출간이 된 상태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리즈를 좌우합작이라는, 일제 시대의 오래된 한국 전통 위에 세우고 싶었는데 그 시도가 성공한 것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1권과 2권 모두 좌파 경제학 이론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표준경제학 우파들의 이론을 주로 인용했다. 1권의 이론 틀은 경제 원론 체계를 만든 새뮤얼슨의 ‘세대 간 중첩 모델’과 균형성장론자인 솔로의 ‘세대 간 형평성’, 그리고 존 내시의 ‘내시 균형’ 위에 세웠고, 여기에 약간의 진화경제학을 사용했다.

이 시리즈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좌파의 이론으로 보든, 우파의 이론으로 보든, 정상적인 논리 전개만 한다면 한국 자본주의에 대해 같은 진단이 나오리라는 것이었고, 실제 작업을 해보니까 우파 이론들을 사용해도 결론은 최초의 진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모 뼛골 빼먹는 세대로 이해하다니…

1권이 발간된 후, 동아일보를 제외한 대다수 일간지에서 서평 혹은 칼럼 형태로 책 내용을 다루었는데, 진단은 대동소이했다. 현재 20대를 둘러싸고 있는 노동시장의 재편이 가혹한 것이며, 이 상태로는 더 이상 한국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굳이 차이점을 생각한다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그리고 경향신문이 사태를 풀어나가고자 하는 방향 혹은 시사점에 대한 시각의 차이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 박해현 기자는 대통령 선거에서 386에 대한 20대의 ‘봉기’를 주문했고, 중앙일보 노재현 논설위원은 일자리 만드는 기업의 고마움을 새삼스럽게 환기하는 방향의 글을 쓴 것 같다. 그리고 조한혜정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88만원 세대’의 문제를 세대 간 연대, 정확히는 세대 기금 같은 것을 통해서 풀자고 주문한 것으로 이해한다.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에 이명박 후보에 대한 공개 편지를 썼던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한국 보수 진영에 이 문제에 관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라고 주문했다. 진단은 거의 유사한데, 그야말로 각 매체의 편집부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게 활용된 셈이다.

마이니치 신문 일요판을 통해 일본에 이 책이 간략하게 소개되었고, 한류 사이트에서 한글본 판매가 시작되었다는 말과 함께, 일부 혐한류 사이트에서 한국의 실상을 보라는 근거로 이 책이 사용되고 있다는, 약간 황당한 말도 들었다.

약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더 많이 얘기하고, 더 많이 토론해보고, 더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

사실 내가 지켜본 바로는 한국의 매체 중에서 20대 문제에 대해 가장 먼저 중요성을 파악한 곳은 동아일보였다. ‘지 애비 등골 다 빼먹고’라는 표현처럼 그들을 부모 뼈골을 빼먹는 세대로 이해했다(〈신동아〉 4월호 밀착취재 ‘한국의 2030 빈털터리 세대’ 중). 내가 이 글을 읽었을 때에는 이미 초고가 내 손을 떠나간 뒤였다. 원래의 내 입장과 가장 정반대에 서 있는 곳은 조선일보나 중앙일보가 아니라 오히려 동아일보인 셈이다. 세대 간 협동 게임과 다양성이라는, 사실상 내가 내세운 두 가지 중추 개념은 좌파들의 대안이 아니다. 오히려 세대를 5~6개로 세분하는 최근 미국 우파 경제학의 실증적 결론이기도 한데, 동아일보 결론은 20대를 파렴치하며 사치스러운 게으름뱅이 정도로 치부하는 셈이다. 그에 비하면 오히려 20대가 386이 내세우는 얕은 정치적 민주화의 구호를 불신하고 투표에서 그들을 심판해달라는 조선일보의 경우는 애교에 가까워 보인다.

20대의 ‘88만원 현상’은, 적어도 내 눈에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리고 한국 자본주의가 전후 복구 50년 만에 만난 가장 큰 모순이다. 이걸 넘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이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의 사회문화의 ‘토대’에 해당하는, 그야말로 ‘하부구조’상의 근본적 현상이다. 내가 요즘 좋아하는 표현대로, “좌파든 우파든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이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 좌파와 우파, 각자 대안을 20대에게 제시하고, 20대도 자신들의 언어를 통해서 나름으로 이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는 아이에게 젖 준다”라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의 20대는 너무 힘들어서 울지도 못한다. 울지 않는다고 젖도 주지 않는 야박한 부모의 처지를 〈신동아〉가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그들도 문제가 뭔지는 아는 것 같아 보인다. 노조와 언론, 그리고 예술이 현재 이 문제를 어느 정도 인지한 듯한데, 메이저 정치인 중에는 이 문제를 이해하는 사람이 아직은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좋지만, 누가 되어도 88만원 세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이 이 문제를 얘기하고 떠드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비정치권의 좌우합작인 셈이다. 현재 대통령 후보 중 ‘고장난 축음기’처럼 “용기를 내면 된다”라고 하루에도 수만 권씩 팔려나가는 자기계발서의마조히즘적 메시지가 아닌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을 함께 외칠 수 있는가? 대선 토론에 20대 패널을 앉혀주자. 그리고 내년 총선에 20대 비례대표가 국회에 갈 수 있게 해주자. ‘무엇을 할 것인가’는 그들이 결정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그것이 좌파적 대안이든, 우파적 대안이든, 이름 없는 ‘덩어리’ 세대로 88만원받는 비정규직 청년들이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고 싶다.

혼자서 외치면 ‘뻥’이지만 여럿이 외치면 ‘길’이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 한국의 20대를 위해서 모두가 외치면 한국 자본주의가 지난 5년을 과거로 묻고 새로운 진화를 시작할 수 있는 가느다란 길 하나가 열린다. 그 길을 열고 싶다.

기자명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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