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uters=Newsis전세계에 단일 선체 유조선의 가공할 환경 파괴 위험을 일깨워준 유조선 프레스티지 호가 두 동강 난 채 침몰하고 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은 대형 유조선 침몰 참사를 겪은 스페인과 유럽 각국의 경우에도 들어맞는다. 2002년 11월13일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연안에서는 바하마 선적의 유조선 프레스티지 호가 거대한 파도를 만나 배 우현 중심부에 구멍이 뚫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벙커C유 7만7000t을 실은 사고 선박은 보름 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항을 떠나 싱가포르로 항해하던 중이었다. 프레스티지 호는 스페인 북부 해안에서 50km 떨어진 지점을 지나던 중 악천후 속에 높이 15m의 ‘괴물 파도’를 만났다.

이 사고로 단일 선체 선박이어서 취약한 유조선 프레스티지 호의 우현 중앙에 구멍이 뚫리면서 6000여t의 원유가 바다로 흘러나왔다. 배가 기울자 그리이스인 망구라스 선장은 조난 신호를 보냈다. 스페인 해안경비대는 헬기를 동원해 우선 유조선 승무원 27명을 구조한 뒤 가까운 항구로 배를 예인하려 했다. 선장도 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고 배를 구하려면 그 길밖에 없다고 보고 스페인 정부에 선박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자국 항만 입항 금지 명령을 내린 뒤 이 배를 먼 바다로 쫓아냈다. 엔리크 로페스 해양청장은 “배를 먼 바다로 내보내면 더 넓은 해안이 영향을 받겠지만 항만으로 끌어들이는 것보다 피해가 덜 집중될 것이다”라고 스페인 국민을 설득했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의 이런 조처는 대참사를 몰고 왔다. 기름을 흘리며 정처없이 악천후 속을 표류하던 프레스티지 호는 스페인 정부가 보낸 예인선에 끌려 외해로 멀리 빠져나갔다. 이 과정에서 기름 5000여 t이 추가로 유출되었다.

문제는 1만여t의 원유 유출에 그치지 않았다. 치명상을 입은 배는 심한 폭풍우 속에 이리저리 뒤틀리다가 결국 선체가 2등분되면서 가르시아 해안에서 270km 떨어진 수심 4000m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만다. 배 안에는 4만여t의 원유가 담긴 상태였다.

'침몰선에서 원유 유출 없다'고 했지만...

사고 닷새 후인 11월17일부터 유출된 기름띠가 홍합 산지로 유명한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해안으로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처음 유출된 기름은 길이 17km의 거대한 띠를 형성해 강한 바람을 타고 갈리시아로부터 150km에 이르는 스페인 해안을 오염시켰다. 망연자실한 주민과 스페인 국민은 최근 한국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처럼 바닷가에 밀려드는 기름띠 제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침몰 직전까지 유조선에서 추가로 흘러나온 기름이 해안 400km에 걸쳐 광범위하게 오염 지대를 확산시켰다. 기름이 새는 유조선을 외해로 추방한 정책에 대한 스페인 국민의 불만이 높아가자 정부는 프레스티지 호 선장 망구라스 선장을 ‘환경오염죄’로 체포해 구속했다.

 
문제는 원유 수만t을 싣고 두 동강 난 채 수심 4000m 바닥에 가라앉은 유조선 잔해였다. 스페인 국민은 물론 유조선 침몰 지역과 인접한 포르투갈·프랑스 정부에서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스페인 정부는 전문가의 견해라며 ‘침몰선 안에 남은 원유는 영하에 가까운 심해에서 점도가 높아 유출되어 나오지 않는다’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오판이었다. 심해의 부서진 선체에서 하염없이 기름이 솟아나온 것이다. 최악의 가상 시나리오였다. 인공위성 사진 판독 결과 기름띠는 남부 포르투갈 해안부터 스페인 북부 프랑스 해안까지 약 950km에 걸쳐 확산되었다.

스페인 연안의 조개 양식장과 물고기 산란장은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파멸과 절망이 스페인 해안을 휩쓸자 분노한 오염 지대 주민 20만여 명이 2002년 12월1일부터 산티아고로 몰려들어 연일 정부 규탄 시위를 벌였다. 그들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정부를 성토하고 정부의 보상과 재발 방지책을 요구했다. 스페인 정부는 913km에 이르는 오염지대 주민에게 ‘수산활동 금지’를 명령하고 그 기간의 피해에 대해 충분히 배상하겠다고 약속했다. 집계된 피해액만도 13억 달러(당시 약 1조3000억원). 그 중 선박 보험사와 ‘국제 기름오염 손해보상기금(IOPC)’에서 배상액으로 나온 금액은 약 2억 달러였다.

과학자들, "3년간 기름 흘러나온다" 분석

스페인 기름 유출 사고의 심각성은 3만8000t을 싣고 침몰한 유조선에서 끊임없이 기름이 흘러나오는 데 있었다. 유럽의 과학자들은 침몰한 유조선을 그냥 두면 3년 이상 기름이 흘러나온다고 분석했다. 결국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팔을 걷어붙이고 스페인 정부 돕기에 나섰다. 네덜란드 구난회사 SMIT 사에서는 침몰 선박 기름 유출구 봉쇄를, 프랑스 정부는 20세기 초 침몰한 타이타닉 호를 찾아낸 소형 유인 잠수정 ‘노틸’을 지원했다. 사상 유례없는 심해 침몰 유조선의 기름 빼내기와 인양 작업이 2년 가까이 계속된 끝에 2004년 10월 침몰한 프레스티지 호를 인양해 폐선시켰다.

프레스티지 호의 사고 원인이 노후 단일 선체 유조선의 안전관리 부실에 따른 인재로 밝혀지면서 유럽연합 국가들은 유조선 안전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조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모든 단일 선체 유조선의 조기 퇴출 및 중질유 운송 금지, 연안 운항 유조선에 대한 각국 정부의 통제(PSC) 등 점검 강화, 유류 오염사고에 대한 책임과 배상책임 확대 등이 골자였다. 또 이 사고를 계기로 유럽연합 소속 국가들은 자국법을 별도로 제정해 국제 협약과 상관없이 노후 단일 선체 유조선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입항 거부 등 강력한 규제 조처를 시행하고 있다.

세계 2위 석유 수입국이자 세계 7위 해운국, 세계 제1의 조선국인 한국으로서는 프레스티지 호 유조선 참사에서 교훈을 얻었어야 마땅했다. 서해 항로의 노후 단일 선체 유조선 집중은 늘 대형 참사의 위험성을 내포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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