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변진경 1954년부터 지금까지의 교과서가 시대별로 나열돼 있다.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과정을 밟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흥미를 느낄 만한 박물관이 있다. 바로 충남 연기군 내판리에 위치한 교과서박물관이다. 2003년 교과서를 출판하는 (주)미래엔(옛 대한교과서)에서 건립한 이 박물관은 전근대 서당에서 사용하던 서적부터 개화기, 일제강점기, 광복 직후, 현재의 교과서까지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교과서 전문 박물관이다. 나이가 적든 많든 누구나 이 박물관에 오면 학창 시절 늘 품고 다녔던 ‘우리 세대’ 교과서를 만날 수 있다.

교과서의 역사는 ‘교육’의 역사이기도, ‘한반도’의 역사이기도 하다. 〈동몽선습〉 〈도형천자문〉 〈소학언해〉 등 옛날 서당에서 배우던 교과서에서 출발해 일제강점기의 〈국민예법〉, 미 군정기의 〈농사짓기〉, ‘국군과 유엔군은 어떻게 싸워왔나’가 소제목인 1950년대 〈전시생활〉 등을 순서대로 보고 있노라면 단순히 교과서의 변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변천사와 역사의 굴곡까지 함께 실감할 수 있다.

ⓒ교과서박물관 제공 교과서박물관에는 어린이가 흥미를 가질 만한 전시물이 여럿 있다.

특히 1954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1~7차 교육과정 교과서들이 시대별로 나열돼 있어 대한민국 건립 후 나라의 교육·사회 가치관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1980년대 후반까지의 제1~3차 교육과정에서 발간된 교과서들에서 가장 강조되는 덕목은 바로 ‘반공’이다. 아예 〈승공〉이라는 반공 교과서가 따로 나오고, 초등학교 4학년 2학기 〈도덕〉에는 ‘공산당과 그 앞잡이들’이라는 제목의 글에는 “공산당원들은 마을 사람들을 칼과 죽창으로 마구 찔러 주변이 순식간에 붉은 피로 물들었습니다”라는 일화가 실려 있기도 했다. 1960년대에 발간된 〈혁명 기념 방학생활〉 교과서에서는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형식적이고 구호에 그친 반공 태세를 재정비 강화한다”로 시작하는 혁명 공약이 눈에 띈다.

교과서 표지만 봐도 시대상이 보이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교과서 표지의 대부분은 벚꽃과 후지산이 그려져 있고, 1970년대 〈음악〉 교과서 표지엔 소가 풀을 뜯는 개울가에서 베잠방이를 걷어 올린 시골 소년이 피리를 불고 있다. 세월이 흐른 오늘날의 교과서 표지에는 각종 현대 공장 시설 사진이나 고층 빌딩숲이 빼곡하다. 시각장애 학생용으로 나온 점자 교과서나, 시력이 나쁜 아이들을 위한 확대 교과서 등을 보면 우리나라 교과서가 좀 더 섬세하고 배려 깊은 방향으로 발전해왔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교과서박물관 제공 교과서박물관에는 어린이가 흥미를 가질 만한 전시물이 여럿 있다.

     북한 교과서 코너도 따로 마련

교과서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교과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영국·일본·프랑스 등을 비롯해 라트비아·이란·러시아·체코·몽골·핀란드·튀지니 등 각국 나라에서 학생들이 사용하는 교과서를 한눈에 관람할 수 있다. 또한 교과서박물관에서는 ‘북한의 교과서’ 코너도 따로 마련해놓았다. 한눈에 봐도 남한에 비해 훨씬 작고 종이·인쇄 질이 나쁘지만, 국어·수학·과학 등 기초 과목의 교과서 속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남한에서 배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 혁명 활동〉과 같은 교과서도 여럿 전시돼 있어서 북한에 대한 동질감과 이질감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교과서 전시관에 이어 바닥의 화살표를 따라 가보면 인쇄기계 전시관이 나온다. 1950년대부터 최근까지 교과서 인쇄에 사용된 각종 인쇄기계 30여 종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자동활자 주조기, 인테르 주조기 등 이름도 모양도 생소한 기계이지만 이 기계를 거쳐 이제껏 우리가 보고 배운 교과서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에 한번 더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 특히 수동 조판에 사용된 활자들이 꽉 들어찬 활자판 전시대를 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관람 정보

주소:충남 연기군 동면 내판리 산 25-1 관람 시간:오전 9시30분~오후 5시

휴관일:매주 월요일, 1월1일, 설·추석 연휴, 성탄절 관람료:무료 전화:041-861-3142 홈페이지:www.textbookmuseum.co.kr 놓치지 마시라:교과서 표지만 잘 봐도 ‘역사’를 읽을 수 있다. 지금과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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