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김은지 / 사진 - 조남진
수빅 현장에서 이동차 시위에 결합한 수빅조선소 필리핀 노동자들은 기자를 보자마자 너도 나도 다가와 유니폼 왼쪽에 달려 있는 이름표를 가리켰다. ‘Finback’ ‘EAMBANAS’와 같이 각기 다른 회사명이 새겨져 있었다. 하도급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였다. 현재 수빅조선소는 직접 고용된 필리핀 노동자가 한 명도 없다. 수빅 해고노동자 로이 살라곤 씨(38)는 “회사는 필요할 때는 우리를 한진 직원이라 하고, 자기들이 불리할 때는 우리를 하도급 업체 직원이라고 한다. 직접 고용을 하지 않으면서 회사 편의대로 노동력을 착취하고 해고를 남발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이곳에서는 “팔리팔리”가 가장 유명한 한국말이다. “새퀴야” “시파로마”도 이에 못지않게 많이 알려진 단어다. 10명 정도 모인 필리핀 수빅 노동자들에게 아는 한국말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너, 새퀴야, 팔리팔리”라는 합창이 돌아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한국인 관리자가 자주 써서 알게 되었다고 했다. 랜디 비니티라오 씨(23·용접공)도 한국인 상사에게 일상적으로 “새퀴야”라는 얘기를 들었다. 자주 듣는 말이라 자신도 똑같이 상사에게 썼다가 혼난 적이 있다. 그때 비니티라오 씨는 “새퀴야”가 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안토니 다톨 바윈 씨(32)는 기자에게 “또라이”가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2년 동안 수빅에 근무하면서 한 번도 고향에 가보지 못해, 하루 쉬겠다고 한국인 상사에게 말했다가 들은 대답이었다.
이들은 한국인이 필리핀 노동자를 함부로 대하는 것에 불만이 많았다. 이들이 모여사는 한 자취방 문에는 ‘Fuck the Korean’이라고 흰 매직으로 쓰여 있었다. 언어폭력만이 아니다. 아베조 제니퍼 씨(29)는 한국인의 부당 대우를 말하며 자신의 허벅지를 내보였다. 바늘로 세 번 꿰맨 자국이었다. 지난 5월, 한국인 관리자가 던진 공업용 가위가 낸 상처였다. 비품을 가지러 다른 작업장에 들어갔다 영문도 모르고 당한 일이었다. 평상시 친절하지만 화가 나면 뭐든지 던지기로 유명한 한국인이었다. 그는 “한국인들은 툭하면 필리핀 노동자를 무시한다”라고 말했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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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기자의 '필리핀 희망버스' 동행기는 시사IN 200호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먼저 사진팀 조남진 기자의 현장사진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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