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라크 바그다드 외곽을 미군 아파치 헬기가 날고 있었다. 아파치 헬기는 민간인 주변을 선회하더니 갑자기 기관포탄을 퍼붓는다. 부상자를 돕기 위해 멈춰선 미니버스를 향해서도 총알 세례를 퍼부어 민간인 10명을 살해했다. 헬기 저격병은 본부와 교신하면서 작전을 마쳤음을 보고했다. 마치 컴퓨터 게임 같았다. 지난해 4월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부수적 살인(Collateral Murder)’이라는 이름이 붙은 영상이었다. 기관포 위에 장착된 카메라는 이른바 ‘깨끗한 전쟁’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었다. 팍스 아메리카나(미국 제일주의)를 주창해온 미국의 위선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지난해 가장 주목을 받은 언론·시민단체·활동가는 ‘위키리크스’였다. 위키리크스의 대형 폭로는 세계를 뒤흔들었다. 율리우스 베어 은행 내부문서, 사이언톨로지교의 비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기밀 문건, 이라크 전쟁 기록, 미 국무부 기밀 자료 25만여 건…. 설립 3년 동안 위키리크스는 〈워싱턴 포스트〉가 지난 30년간 한 것보다 더 많은 특종을 생산했다. 프랑스 〈르몽드〉는 “언론 차원에서 처음 겪는 큰 사건이다”라고 평가했다. 위키리크스는 튀니지 23년 독재를 끝내는 데도 공헌했다. 위키리크스는 2011년 노벨 평화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된다. 

ⓒ시사IN 조우혜돔샤이트 베르크는 한국에서 위키리크스 같은 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의 전 대변인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32)가 반부패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줄리언 어산지에 이어 위키리크스에서 2인자로 활약한 핵심 멤버였다. 위키리크스에 참여하기 전 다국적 기업 컴퓨터 보안업체에서 일했고, 세계적인 컴퓨터 해커 단체인 CCC(Computer Chaos Club) 회원으로 활동했다. 2010년 9월 그는 위키리크스를 떠나 투명성을 더욱 강조한 ‘오픈리크스’를 출범했다. 아직 위키리크스가 공개하지 않은 상당수 문건이 그의 손에 있다. 7월5일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 씨를 만났다.

당신의 책 〈위키리크스-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에는 한국이 딱 한 번 언급된다. 한국어를 아는 전문가가 없다는…. 위키리크스와 당신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인가? 나는 아시아를 좋아하고 아시아 사람들을 존중한다. 한국은 매우 흥미로운 지역 중 하나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고,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브라질과 같이 현재 발전 중인 국가이기 때문에 투명성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가 투명해져야 지속적인 발전도 가능하다.

위키리크스 자료 중 한국 관련 자료가 2878건, 북한 관련 자료가 2596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작성한 전문은 1980건이다. 이 가운데 공개된 문건이 8건뿐인데도 한국에서 대단한 파장을 몰고 왔다. 다른 자료는 언제 공개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위키리크스가 언제, 어떻게 한국 관련 자료를 공개할지 알 수 없다. 위키리크스는 줄리언 어산지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서 투명하지 않다(어산지의 독단적인 위키리크스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은 돔샤이트 베르크는 어산지로부터 정직당한 2010년 9월 ‘건축가’로 불리는 시스템 전문가 등과 함께 위키리크스를 떠났다. 그 뒤 위키리크스보다 투명하고 민주적이고 탈권위적인 사이트를 표방한 ‘오픈리크스’를 설립했다. 오픈리크스는 멤버들 사이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가위바위보로 의사를 결정한다고 할 만큼 탈권위적인 조직을 지향한다). 당신이 보유한 한국 관련 자료를 공개할 생각은 있는가? 위키리크스와의 관계 때문에 시스템적으로 내가 정보를 공개할 수는 없다.

이번에 방한하면서 한국 관련 자료를 가져오지는 않았나? 기자로서 당신의 여행 가방을 훔쳐가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웃음). 미안하지만 한국 관련 폭로 자료를 갖고 온 건 없다. 대부분의 정부는 지나치게 많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런 비밀 중 상당수는 국가 안보나 내부 안정성에 해를 주지 않으면서도 공개될 수 있다. 한국 관련 정보의 경우 미국 대사관 등을 통해 얻기보다는 한국 내에서 스스로 정보를 얻을 방법을 찾아야 한다. 미국 대사관의 관점은 한국 내의 관점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분단국가라는 특수성 때문인지 ‘과잉 기밀주의’가 정보공개로 가는 길을 막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통치자들이 이용하고 있어서 정보를 얻기가 대단히 어렵다. 그런 경우 공익 제보자가 가장 중요하다. 이들의 존재와 활동을 통해 권력자나 중립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이 두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들로 하여금 감시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할 수 있는 독립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두 번째로는 독립 언론과 시민단체가 필요하다.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언론과 시민단체가 핵심 구실을 한다.

ⓒ지식갤러리 제공돔샤이트 베르크(위 오른쪽)는 줄리언 어산지 위키리크스 설립자(위 왼쪽)의 독단적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2010년 9월 오픈리크스를 설립했다.

한국에는 ‘공익 제보자’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그를 배신자로 간주하는 문화가 있다. 그래서 공익 제보자들이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첫 번째 관건은 익명성이다. 공익 제보자는 법적으로나, 사생활을 포함한 모든 면에서 익명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두 번째 관건은 ‘공익 제보자(whistle blower)’라는 개념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루지야를 예로 들어보자. 그루지야는 부패가 만연했다. 공익 제보자를 ‘쥐’ ‘밀고자’ ‘배신자’라고 부르곤 했다. 그러자 국제투명성기구에서 기자 6명과 NGO 활동가 3명, 언어학자 3명을 저녁식사에 초청해 공익 제보자에 적합한 현지 명칭을 찾는 작업을 벌였다. 회의 끝에 현지어로 ‘빛을 가져오는 사람(light bringer)’이라는 단어가 채택되었다. 미디어를 통해 이 단어의 뜻을 알리는 대대적 캠페인을 벌였고, 6개월~1년 뒤에는 모든 사람이 이 개념을 긍정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사회가 그들(공익 제보자)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시민단체에 찾아가 제보를 하기 어려울 경우 언론을 찾아가야 하는데, 어떤 기자를 믿을 수 있는지 알기 힘들다. ‘오픈리크스’는 제보자와 적절한 언론인을 연결해주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한국 언론, 특히 메이저 언론은 권력에 종속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권력기관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공개하려 들지 않는다. 이미 오픈리크스를 통해 해결한 문제다. 공익 제보자가 오픈리크스에 정보를 제공하면, 오픈리크스는 관련 단체에 해당 자료를 보내준다. 공익 제보자와 해당 단체 외에는 특정 기간(4주) 동안엔 이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다른 파트너들에게도 해당 정보를 보낸다. 정보가 공개되면 언론에서 이런 정보를 다루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스스로 자료를 찾아봄으로써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언론이 왜 이런 기사를 쓰지 않는지 알아차리게 된다. 캄보디아·북한 등 언론자유 후진국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 같은 선진국만 보더라도 큰 문제가 있다. 미디어 90%가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의해 경영되기 때문에 정보가 차단되고 있다. 미디어는 결국 오락거리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미디어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대한 문제다. 일부 언론사는 이념에 따라 사실관계를 호도하고 정보공개를 막기도 한다. 내 생각에는 인터넷에 기회가 있다고 본다. 인터넷은 모두가 정보를 생산하고, 발표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정한 미디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이야기해야 한다. 한국의 특수한 문화적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미 다른 나라에서는 이런 활동을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고, 리비아나 이집트 혁명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정부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 가운데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정직한 사람들을 활용해야 한다. 

ⓒAP Photo위키리크스는 튀니지 민주화(위)에도 크게 공헌했다.

정직한 사람들이 고위층까지 오르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한국에서는 제보자를 찾아내거나 응징하는 시스템이 발달돼 있다. 제보자를 찾아내지 못하면 주변 사람까지 괴롭힘을 당한다. 그것이 바로 제보자들이 보호받아야 하는 이유다. 오픈리크스 시스템은 이런 경우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공익 제보자가 우리에게 정보를 주면, 우리가 그 정보를 받아 한국 언론에 주더라도 한국에서는 제보자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위키리크스가 출범한 후 한국에서도 여러 단체가 위키리크스와 같은 사이트를 만들었다. 〈경향신문〉에서 만든 ‘경향리크스’가 몇몇 의미 있는 제보를 기사화하기도 했지만 중대하고 본질적인 정보에 접근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듯하다. 정보를 제공하는 사람은 누구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이 위키리크스와 유사한 사이트를 설립한 언론사나 단체가 아니라, 해당 시스템 자체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이 시스템의 존재를 알고, 시스템에 대한 믿음이 생겨야 한다. 좀 더 홍보하고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천안함 사건과 같이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을 만한 특정한 이슈를 골라 일정한 기간 제보를 받는다는 식의 캠페인이 필요하다. 이러한 캠페인을 통해 사람들이 어떻게 정보가 모이고 공개되는지를 학습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내가 포르투갈 신문사와 함께 일했을 때, 그들은 정보의 대부분을 검찰에서 얻어냈다. 법·제도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검찰이 정보를 쉽게 제공했다. 사회문화적 배경이 다른 만큼 아시아는 아시아의 문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아직 한국에는 위키리크스나 오픈리크스 같은 신뢰도와 인지도를 지닌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익 제보자들이 제보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한국에서 이러한 시스템을 만드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사회를 좀 더 자세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얼마나 인터넷을 통제하고 있는지, 공익 제보자에 대한 법적 보호는 어떻게 되는지 등에 대한 세부 사항을 알고 싶다. 오픈리크스가 한국에 관한 자료를 공개하면, 한국에서 용기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나설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는 브라질에서 유사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 중이다.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한국이 매우 중요한 지역이라고 생각한다. 오픈리크스는 한국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도울 것이다. 아직 한국 파트너는 없다. 참여연대나 〈시사IN〉과도 이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 2~3개의 NGO나 언론 단체가 연합해서 하나의 단체를 만드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 오픈리크스(openleaks.org)에 자료를 보내면 한국 파트너에게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비밀주의가 팽배하고 투명성이 부족한 과잉 기밀의 세계에 살고 있다. 대중이 눈을 부릅뜨고 정부·관료·기업 등을 감시해야 한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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