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반환된 춘천 캠프 페이지에 ‘방사능 무기’인 열화우라늄탄이 보관되었다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캠프 페이지는 핵무기 사고 의혹이 제기된 곳이다. 앞서 전역 주한 미군 병사인 댈러스 스넬 씨(59)는 〈시사IN〉 인터뷰에서 “1972년 핵무기의 방사능 유출로 추정되는 사고를 겪었다”라고 증언한 바 있다(〈시사IN〉 제194호 참조).

〈시사IN〉은 2005년 기지 반환 당시 이뤄진 환경오염 조사 가운데 방사능 조사 보고서 전문을 입수했다. 이 조사에 간여한 핵심 관계자는 “방사능 조사는 기지 안에 보관된 열화우라늄탄 때문에 이뤄졌다”라고 증언했다.


ⓒ시사IN 조남진2005년 반환받은 춘천 캠프 페이지는 현재 환경 정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동안 주한 미군이 보유한 열화우라늄탄은 핵무기와 마찬가지로 존재가 베일에 가려져왔다. 주한 미군이 처음으로 보유 사실을 시인한 것은 1997년이다. 1997년 2월 주일 미군이 일본 오키나와 서쪽 도리시마 섬에서 열화우라늄탄 수천 발을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내 시민단체도 주한 미군에 보유 여부를 질의했다. 당시 짐 콜슨 주한 미군 대변인은 언론의 질의에 “한반도 유사시 사용을 위한 것으로 관리상 문제가 없으며, (열화우라늄탄을)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인 보관 장소는 밝히지 않았다.

이 발표 뒤 M1A1 에이브럼스 전차포탄용으로 보유하던 120㎜ 열화우라늄탄 한 발이 경기 연천군 광사리 폐폭발물 처리장에서 폐기 처분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크게 일었다. 노후한 일반 탄약을 폭발 처리하는 과정에서 행정 착오로 미국 본토에서 폐기해야 할 열화우라늄탄 한 발이 포함된 것이다. 그때 주한 미군은 “열화우라늄탄에서 나오는 방사능은 천연 화강암이나 텔레비전에서도 나오는 낮은 수준으로 인체에 유해하지 않으며 환경오염의 우려도 없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열화우라늄탄은 ‘걸프전 증후군’이나 ‘발칸 증후군’을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되어 유엔에서도 사용 금지를 권고했다.


주한 미군 병사인 댈러스 스넬 씨는 〈시사IN〉 인터뷰에서 “1972년 핵무기의 방사능 유출로 추정되는 사고를 겪었다”라고 증언했다.
미 공군기지에 300만 발 보관

이후 2005년 사진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이시우씨가, 미국 친우봉사회(AFSC)가 미국 태평양사령부를 상대로 정보 공개를 청구한 자료를 입수해 처음으로 정확한 보관 장소를 공개했다. 이씨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주로 ‘탱크 킬러’인 A10 전투기가 배치된 수원(136만 발)·오산(47만 발)·청주(93만 발) 등 주한 미 공군기지에 열화우라늄탄 300만 발가량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시우씨는 “그때 공개된 자료에는 주로 열화우라늄탄을 쓰는 A10기가 있는 기지만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춘천 캠프 페이지에 아파치 헬기 부대가 있었고, 아파치 헬기에 장착하는 열화우라늄탄을 보관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덧붙였다.

2005년 캠프 페이지가 반환되면서 환경조사가 이뤄졌다. ‘SOFA 환경정보 공유 및 접근절차 부속서 A’에 따라 캠프 페이지를 비롯해 반환 기지 36곳에 대해 환경조사를 실시했다. 반환 기지에 대한 조사 가운데 캠프 페이지에는 이례적으로 방사능 오염 조사가 포함되었다.

방사능 조사는 2005년 5월24~27일 나흘간 이뤄졌다. 국방부에서 조사를 의뢰받은 환경관리공단이 조사 주체였다. 조사 때 미군 쪽도 입회했다. 방사능 오염 조사팀은 기지 내 492개 지점에 대한 방사선량률이나 표면오염도를 측정했다. 특히 탄약고·격납고·부품창고 등 20개 지점은 직접 토양 샘플을 채취해 방사성 핵종분석을 했다. 방사성 핵종분석의 일부를 원자력공학과가 있는 한양대가 맡기도 했다. 이 조사를 잘 아는 관계자는 “조사 당시 국방부 등으로부터 열화우라늄탄으로 인한 방사능 오염 여부가 조사 목적이라고 통보받았다. 탄약고나 격납고 등 토양을 채취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핵무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뉴시스춘천시민단체는 춘천 캠프 페이지에 대해 방사능 오염 조사를 다시 하라고 주장했다.

토양이나 수질오염 조사에서 독성물질인 유류(석유계총탄화수소·TPH)나 벤젠 등 발암물질이 확인되었으나 방사능 오염은 없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지표면, 대기 침토양 중 방사능 오염 조사에서 방사능 오염이 발견되지 않음’으로 보고서는 결론을 지었다. 표면 오염도 허용치 기준이 4Bq(베크럴)/㎠ 이하인데, 측정치는 0.18~0.89Bq/㎠로 낮게 나온 것이다. 기지 내 부품창고 외곽 지역과 숙소 외곽 지역에서 표면방사선량률이나 공간방사선량률이 평균 이상 높게 나왔지만 오차범위 이내로 판단했다.

이 조사에 간여한 핵심 관계자는 “핵무기나 열화우라늄탄과 관련한 사고가 없었거나, 방사선이 저농도 상태로 극미량 유출되었다면 조사에서 잡히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조사 당시(2005년) 미군이 핵무기나 열화우라늄탄을 보관한 탄약고가 1970~1980년대 사용한 탄약고와 다르다면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국방부는 6월10일 환경오염 조사를 다시 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 춘천시민연대·춘천환경운동연합·춘천경실련 등 시민단체는 토지와 수질조사뿐 아니라 방사능 오염 여부에 대해서도 다시 조사할 것을 요구한 상태이다.

기자명 고제규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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