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협경제연구소의 임일섭 거시경제센터장이 〈한겨레〉에 의미 있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가계부채 총량을 직접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으나 그것은 위험하며 적절히 연착륙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가계부채와 부동산 시장의 경착륙을 유도하는 듯한 발언이 상당수 흘러나오는 상황에서 그의 칼럼은 의미가 깊다.

물론 학자나 언론인 중에서 가계부채나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지금 당장 거품을 붕괴시키지 않고 시장을 떠받치면 오히려 거품이 더 커진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상당히 많다. 금리 인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사람도 상당수다. 필자가 보기에는 둘 다 틀렸다.

거품을 해소하는 과정에서는 ‘속도’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1998년 외환위기라는 거품 해소 과정을 직접 경험했고, 일본의 부동산 거품 해소 과정도 지켜보았다. 전자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후자는 속도가 너무 느렸다. 둘 다 성공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


ⓒ뉴시스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해소하는 데는 ‘속도’가 중요하다. 너무 빠르면 경제의 튼튼한 근육까지 도려내게 된다. 위는 임대아파트 전세금 인상 반대 시위.

지나치게 속도가 빠른 거품 해소 과정은 경제의 생살과 튼튼한 근육까지 도려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98년 우리나라에 지나치게 가혹한 경착륙을 유도해 한국 경제의 허리를 붕괴시켰다는 비난을 받는다. 지나치게 속도가 느린 거품 해소 과정도 경제에 치명적이다. 1990년대 일본은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장기간 지연해 병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착륙 충격, 상상외로 크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부동산 시장과 가계부채의 거품을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도 안 되고, 지나치게 느려도 안 된다. 혹자는 그래도 1990년대 일본식의 느린 거품 해소보다는 1998년 IMF식의 빠른 거품 해소가 더 낫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1998년 직후 IMF와 우리나라는 운이 좋았다. 1999년과 2000년의 전 세계적 IT 혁명은 IT 비중이 유난히 큰 한국에 초대형 호재가 되었고, 그것이 IMF의 오류로 인한 치명적 상처를 조기에 치유해주었을 뿐이다.

가계부채나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경우 그 악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것 이상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때보다 충격이 더 크지는 않겠지만 그에 준하는 충격이 4~5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집값이 2년간 매년 10%씩 하락할 경우 GDP는 1년째에 1.3∼1.4%, 2년째에는 2.3∼2.5% 감소할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평년에 비해 GDP 성장률이 2.5% 감소하면 일자리는 평년에 비해 25만 개 줄어든다. 그리고 이런 저성장이 4~5년간 지속되면 실업자는 평년에 비해 100만명 이상 더 늘어난다.

물론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일본과 여러 가지로 다르기 때문에 거품이 붕괴한다 해도 서울의 주택 가격이 평균 25% 이상 하락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그 충격은 우리가 평소 생각하는 것보다는 클 것이다. 참고로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서울의 주택 가격 하락률은 18%였다. 그것도 1997년 고점 대비 1998년 저점 사이의 변동률이 그 정도였다.


ⓒAP Photo일본은 금융기관 구조조정을 장기간 지연해 병을 키웠다. 위는 일본 노숙자들.
따라서 부동산 시장을 연착륙시킬 수만 있다면 연착륙시켜야 한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 연착륙 방안을 세우고자 한다면 일차적으로 연착륙되는 지점이 어디인지 그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필자는 2000년의 연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이 일차 목표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2000년에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는 거품이 거의 없었다고 평가한다.

목표가 세워졌다면 그 다음에는 몇 년간 주택 가격을 동결했을 경우 PIR가 어떻게 변하는지 모의실험(시뮬레이션)을 해볼 필요가 있다. 통계청과 국민은행 통계 자료를 토대로 추정해보면 앞으로 8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을 현 수준으로 동결한 상태에서 가계의 경상소득이 연간 5% 이상 계속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서울 아파트 PIR는 11.5배에서 8.0배로 낮아져 2000년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가 어렵다 하더라도 물가 상승 등으로 인해 가계의 경상소득이 지속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결과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시장이 충분히 연착륙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우스 푸어와 무주택자 모두 ‘양보’ 필요

물론 이런 연착륙 전략은 하우스 푸어(빚내서 집을 산 가난한 사람)와 무주택 서민 양자에게 일정 정도의 양보를 요구한다. 하우스 푸어에게는 주택 실질가치 하락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무주택 서민에게는 몇 년간 기다려줄 것을 요구한다. 그래도 이들에게 큰 손해가 나는 것은 아니다. 전자는 경착륙을 피하면서 양질의 주거 생활을 누릴 수 있고, 후자는 몇 년간 기다리면 저렴해진 주택을 구입할 수 있으므로 큰 손해라 보기 어렵다.

가계부채와 관련해 총량을 직접 규제하거나 금리를 인상해 부채가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게 하자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같은 강경 일변도 전략은 오히려 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가계부채도 부동산 시장과 마찬가지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정책 지표로 삼아 그것을 서서히 낮추는 전략을 세우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연착륙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1990년대 초 일본처럼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계 부문과 금융 부문이 동시에 부실해지면서 악순환을 거듭하는 비극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은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액 비율이 10% 이상인 가구를 하우스 푸어라 정의하고 우리나라 하우스 푸어가 108만명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나라 평균 가구의 가처분소득이 월 300만원 정도이므로, 평균 가구의 경우 한 달 원리금 상환액이 30만원 이상이면 이 연구원이 정의한 하우스 푸어에 해당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하우스 푸어가 원리금 상환을 유예하고 이자만 갚고 있다는 것. 이 상황에서 금리가 급격히 오르거나 대출규제가 갑자기 강화되면 금융기관들은 하우스 푸어의 연이은 파산과 부실채권 확대를 두려워해 대출 만기연장을 거부하거나 원리금 상환을 독촉하는 등 지극히 보수적인 자금 운용을 하게 되는데, 이는 가계 부문과 금융 부문이 동시에 부실화되면서 악순환을 거듭하는 비극의 단초가 된다.

따라서 정부는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정책 지표로 삼아 이 비율을 서서히 낮추는 전략을 취하면서, 가계 부문과 금융 부문이 동시에 필요 이상의 공포심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해야 한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금융 부문과 실물 부문이 동시에 악순환을 거듭하며 복합 불황에 빠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필요 이상의 공포심이 화근이었다. 물론 이런 공포심은 정부가 투명하고 명확한 정책 비전을 제시하지 않은 데 따른 불신의 결과였다.

기자명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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