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수신료는 잘 아는데 미디어렙은 잘 몰라서… 여론전 펴기가 쉽지 않아!”

민주당 한 문방위원의 넋두리다. 그의 말마따나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니면 생소한 용어 ‘미디어렙’이 수신료 정국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미디어렙(Media Representative)은 방송사를 대신해 기업에 광고시간을 팔고, 방송사로부터는 수수료를 받는 ‘방송광고 판매대행사’를 뜻한다. 방송사도 신문사처럼 직접 광고 영업을 하면 되지 왜 대행사가 필요할까?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방송사가 직접 기업과 연결될 경우 공영성이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기업의 영향을 받아 보도를 빙자한 홍보 프로그램은 넘쳐나고 기업에 불리한 보도는 불방될 수도 있고, 반대로 프로그램을 무기 삼아 방송사가 기업을 협박할 수도 있다. 하지만 완충지대가 있으면 그럴 개연성이 줄어든다. 

 

ⓒ뉴시스6월27일 언론노조와 야당 인사들이 새로운 ‘미디어렙 법안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또 하나는 방송 프로그램이 지나치게 오락 중심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 질 좋은 교양 프로그램이나 경쟁력이 취약한 지역방송 등에 광고를 나눠줄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방송광고는 주로 시청률이 높거나 영향력 있는 몇몇 프로그램에 몰린다. 그걸 ‘시장 논리’에만 맡길 경우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은 점점 구석으로 몰리거나 아예 폐지될 공산이 크다. 그 중재자 구실을 미디어렙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81년에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코바코)라는 공영 미디어렙을 만들어 KBS·MBC· SBS 등 지상파 방송의 광고 판매를 도맡게 했다. 공영방송뿐 아니라 SBS와 지역민방 같은 상업방송이 모두 미디어렙 체제에 편입된 것은 그만큼 전파의 영향력과 공적 가치가 크고, 그래서 공영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공론 때문이다.

그런데 2008년 11월 변수가 생겼다. 헌법재판소가 코바코의 방송광고 독점 판매에 대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리면서 코바코의 광고대행권이 소멸된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미디어렙 관련 법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각 방송사나 정치권·언론단체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면서 2년 넘게 새 법을 못 만들고 있다. 미디어렙을 몇 개나 만들 건지, MBC를 공영 미디어렙에 넣을지 민영 미디어렙에 넣을지, 미디어렙의 소유권을 누구에게 줄지 등이 논란거리였다. 


“미디어렙이 수신료보다 훨씬 중요한 사안”

그래도 지금까지는 큰 혼란이 없었다. SBS 등이 독자 영업을 하겠다고 당장 뛰쳐나가지 않고 여전히 코바코에 대행을 맡기고 있어서다. 하지만 새로 허가를 받은 이른바 ‘조·중·동 종편’이 올 하반기부터 방송을 시작하겠다고 나서면서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종편을 미디어렙에 넣을지 말지가 새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종편 측은 당연히 직접 영업을 주장한다. 다른 케이블 PP(프로그램 공급업자)처럼 ‘조·중·동 종편’도 미디어렙에서 열외라는 것이다. 여권은 이 주장을 지지한다. 그래서 미디어렙을 다루는 법안 마련에 전혀 적극적이지 않다. 아직까지 종편 채널의 광고 영업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에 그냥 놔두면 자연스레 직접 영업이 가능하리라는 속셈이다.

반면 민주당과 언론노조 등은 ‘예외 없는 미디어렙 위탁’을 주장한다. ‘조·중·동 종편’이 KBS·MBC·SBS처럼 전체 시청 가구의 86%를 커버하는 전국 방송이며 보도 기능 등 편성 장르에 차이가 없으니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조·중·동 방송’이 직접 광고 유치에 나설 경우 ‘신문’의 영향력을 앞세워 각종 편법을 자행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디어 시장 전체가 일대 혼란에 빠지게 되리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미디어렙 법안 제정을 촉구하며 6월23일부터 단식에 들어간 언론노조 이강택 위원장은 “종편이 직접 영업을 하면 방송은 더더욱 상업화하고 취약한 매체는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다. 민주주의 위기는 가속화하고 민주적인 정권교체도 물 건너간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집중 토론하고 늦어도 9월 전에는 관련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침이다. 안 그러면 아직까지는 눈치를 보고 있는 ‘조·중·동 종편’이 다들 광고 사원을 뽑고 직접 영업에 나설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동력이다. 민주당의 한 정책통은 “수신료와 같이 논의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이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도 않을 것이고, 수신료를 내준다 해도 한나라당이 미디어렙을 받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수신료보다 미디어렙이 훨씬 중요한데, 사람들이 언론사들의 밥그릇 싸움 정도로 치부하니 이슈화하기가 쉽지 않다”라며 갑갑해했다.

 

 

기자명 이숙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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