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얘기는 이렇다. 때는 1960년대. 도쿄 빈민가 쪽방촌에 반항기 가득한 고아 청년 야부키 조(야마시타 도모히사)가 흘러든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마을이다. 큰 싸움이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싸움 구경하던 외눈박이 전직 복서 단페이(가가와 데루유키)가 남은 한 눈으로 한눈에 알아본다. 야부키 조가 타고난 복서라는 사실을 말이다.

타고난 복서는 또 있다. 잘나가던 프로 복서 리키이시 도루(이세야 유스케). 일찌감치 사고치고 복역 중이다. 그런데 싸움하다 잡혀간 야부키 조가 하필 같은 교도소에 수감될 건 또 뭐람. 아시다시피 운명이란 놈은 몹시 장난꾸러기~. 지체 없이 두 사람을 숙명의 라이벌로 엮어버린다.

첫 대결은 무승부! 주먹다짐 끝에 주먹 쥐고 다짐하는 두 남자. ‘다음엔 반드시 널 이기고야 말겠어!’ 그 장면 찍고 나서 남몰래 주먹 쥐고 홀로 다짐했을 감독. ‘마지막 경기 장면에선 반드시 원작의 흥분을 재현하고야 말겠어!’ 독하게 마음먹고 배우를 꽤 다그쳤던 모양이다. 마침내 세기의 대결이 성사되기까지, 잘생긴 배우들이 웃통 벗고 흠뻑 흘린 땀과 눈물이 이 메마른 이야기에 모이스처라이징! 어라? 걱정했던 것과 달리 꽤 재미난 복싱 ‘만화’ 영화 한 편을 만들어냈다.


배우들이 직접 치고받은 경기 장면 탁월

1967년 12월부터 1973년 5월까지 일본에서 절찬리에 연재되며 대박 났다는 권투 만화 〈허리케인 죠〉. 그 동안 몇 차례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적 있는 이 추억의 명작을 실사 영화로 다시 만든 게 〈내일의 죠〉다. 탁구 영화 〈핑퐁〉(2002년)으로 칭찬받은 소리 후미히코 감독이 또 한번 스포츠 영화를 욕심 냈고, 아이돌 출신 꽃미남 스타 야마시타 도모히사와 모델 출신 그냥 미남 스타 이세야 유스케가 각각 원작 만화의 카리스마 넘치는 두 주인공을 탐냈다.

청코너~ 쪽방촌의 꿈과 희망~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헝그리 복서 야부키 조! 홍코너~ 스폰서의 꿈과 희망~ 사사로운 야심의 소유자~ 앵그리 복서 리키이시 도루! 혹시 이런 도식적인 대결 구도를 손가락질하려거든, ‘독고진 같은 남자’ vs ‘윤필주스러운 남자’의 대결 구도가 십수 년째 반복되어도 매번 시청률이 잘만 나오는 한국 드라마를 잠시 떠올린 후, 아까 성급하게 뻗은 그 손가락을 얼른 접어야 할 것이다. 상투성과 전형성은 이런 장르의 영화에 오히려 꼭 필요한 요소일 때도 적지 않다는 걸, 아주 대놓고 뻔한 이야기인데도 어느새 입 닥치고 웃으며 보게 되는 〈내일의 죠〉가 새삼 확인해준다.

컴퓨터그래픽 없이, 대역 없이 배우들이 직접 치고받으며 찍었다는 경기 장면에 먼저 ‘참 잘했어요’ 도장 찍어주겠다. 펀치에 맞아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짧은 순간을 만화책에서 그대로 오려낸 듯, 정지 화면에 가까운 느린 화면으로 포착한 클로즈업 장면에는 ‘참 잘했어요’ 도장 두 개 꾹 눌러주겠다. 부자들의 재개발 펀치를 얻어맞는 쪽방촌 사람들이 사각의 링 코너에 몰려 난타당하는 야부키 조를 목놓아 응원하며 눈물짓는 다소 낯간지러운 장면에도, 고백하건대 사실 살짝 마음이 울컥했으므로 ‘참 잘했어요’. “우리 같은 놈들은 주먹이 납득할 때까지 싸워야 해!” 겉멋은 들었지만 그래도 제법 납득할 만한 ‘대사발’에도 ‘참 잘했어요’.

하지만 클라이맥스 이후 지나치게 길고 맥 빠지는 에필로그에는 ‘왜 그랬어요?’ 도장을, 프로답게 짧게 끊어치지 못하고 무려 131분이나 되는 상영시간에는 ‘내가 안 그랬어요’ 도장을, 솔직히 남자가 봐도 예쁘고 잘생긴 주연 배우의 멋진 복근엔 ‘참 부러워요’, 그러나 그거 하나 빼곤 딱히 여자 관객이 좋아할 이유를 찾기 힘든 이 지긋지긋한 남자 영화에 끝으로 ‘어쩌려고 그랬어요?’ 도장 하나 꾸욱 눌러준다.

기자명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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