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미국 정가가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민주당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미 재선 도전 의사를 천명한 만큼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모든 관심은 공화당 대선 예비 주자들에게 쏠려 있다. 공화당 후보로는 2008년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탈락했지만 지금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오바마 행정부에서 얼마 전까지 중국 주재 대사를 지낸 존 헌츠먼,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 미셸 바크먼 하원의원,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 20여 명에 이른다.

공화당 후보가 난립하는 이유와 관련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 전략가로 활동했던 마트 매키넌 씨는 의회 전문지 〈더 힐〉과의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진단을 내놓았다. ‘경제 상황이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꺾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9·11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한 오사마 빈라덴이 미군 특수전 요원들에게 사살된 뒤 지지율이 올랐지만 경제난 때문에 발목이 잡혀 있다. 경기가 좋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9%에 이르는 높은 실업률이 말해주듯,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이 1400만명이나 된다.


ⓒAP Photo6월21일 대선 출사표를 던진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오른쪽). 왼쪽은 6월13일 토론회에 참석한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7인. 가운데가 선거 자금 모금에서 선두를 달리는 미트 롬니 후보.

이처럼 공화당 대선 예비 주자들이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요즘 가장 각광을 받는 사람이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51)이다. 헌츠먼 전 지사는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가 제안한 주중 대사직을 흔쾌히 수락해 공화당 지지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 선거전에 나서기 위해 주중 대사직을 내던지고 6월21일 출사표를 던졌다. 헌츠먼 전 지사가 대선 출마 의사를 공식 표명하자 그를 주중 대사로 기용했던 오바마 대통령과 선거 참모진도 잔뜩 긴장하는 분위기다. 헌츠먼은 대선 출마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국 외교의 최대 골칫거리인 아프간 주둔 미군 문제와 관련해 ‘신속한 철군’을 강조함으로써 점진적 철군을 계획하는 오바마 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헌츠먼, 오바마 행정부에서 주중 대사 역임

헌츠먼 전 지사는 유타 주에서는 최고 인기 정치인이지만, 워싱턴 중앙정치 무대에서는 무명에 가깝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전국적 관심을 끈 것은 주지사 재선에 성공한 지 6개월도 안 된 2009년 5월 주지사직을 사임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요청한 주중 대사직을 받아들였을 때다. 골수 공화당 인사들에게 당시 그의 처신은 ‘변절’로 매도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헌츠먼은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주중 대사직을 자신의 외교 경험을 쌓을 절호의 정치적 기회로 삼았던 것 같다. 공화당 대선 주자 가운데 외교 경험을 갖춘 후보는 헌츠먼이 유일하다. 미국 주요 언론이 헌츠먼을 다른 후보들과 비교하면서 가장 큰 강점으로 내세우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헌츠먼은 다른 유력 후보들에 비해 비교적 늦게 대선 후보군에 합류한 만큼 불리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당장 맞닥뜨린 문제는 선거 자금 모금 능력이다. 통상 1년 이상 지속되는 유세 기간 중 가장 절실한 게 선거 자금인데,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법정 한도액으로는 어림도 없다. 따라서 후보들은 모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선거 자금만큼이나 중요한 조직력도 결국은 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제대로 가동할 수 없다는 점에서 선거 자금을 얼마나 많이, 또 빨리 모금할 수 있느냐에 따라 후보의 본선 경쟁력이 결정된다. 2008년 대선 때 민주당 오바마 후보는 무려 7억5000만 달러(약 8000억원)를 모금한 반면 상대인 공화당 존 매케인 후보는 3억7000만 달러(약 3900억원)에 그쳤다.

사실 지금은 예비 후보들이 유권자의 표심을 얻는 것보다 내년 여름 후보 지명 전당대회까지 유세를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선거 자금을 확보하는 게 더 중요한 때다. 더구나 2분기 선거 자금 모금 시한이 6월 말이다. 7월에는 각 후보의 모금 액수가 공개될 예정이고, 그에 따라 모금력에 근거한 후보들의 1차 판세도 드러난다. 


자금 확보·기독교인 반감 해소 ‘발등의 불’

현재 선두 주자는 일찌감치 유세를 시작한 롬니 전 지사(64)이다. 그는 지난 5월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모금 행사에서 하루에 1000만 달러(약 108억원)를 모금해 상대 후보들의 기세를 제압했다. 롬니는 6월 말까지 3000만 달러를 거둬들여 자신이 오바마에게 맞설 최적의 후보임을 입증할 계획이다. 헌츠먼도 6월21일 대선 출마를 공식적으로 밝힌 당일 저녁 모금 행사에서 120만 달러(약 13억원)를 걷었다.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를 비롯해 플로리다 주, 자신의 정치적 아성인 유타 주 등지에서 잇따라 대규모 모금 행사를 열 계획이다.

헌츠먼 앞에는 선거 자금 외에도 넘어야 할 거대한 산이 있다. 그가 공화당의 주류 기반이라 할 보수 기독교 유권자들이 기피하는 모르몬 교인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미트 롬니 전 지사도 모르몬 교인이다. 모르몬교는 미국에서 신도 수가 600만명에 이르며 네 번째로 교세가 크다. 문제는 2008년 대선 때 롬니가 모르몬 교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보수적인 아이오와 주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보수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했듯이, 헌츠먼도 그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퓨리서치센터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독교인 가운데 47%는 모르몬 교인을 기독교인으로 보지 않는다. 특히 전통 기독교인들은 모르몬교를 아예 이단으로 간주한다. 기독교인은 공화당 기반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일부 기독교인 사이에서는 ‘롬니 혹은 헌츠먼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을 모르몬의 나라로 만드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는 ‘모르몬의 시대’라는 제목의 최근 호 커버스토리에서 유력 후보 롬니의 부상을 계기로 브로드웨이와 토크쇼, 연방 상원까지 입성한 모르몬교가 이제는 백악관에 들어갈지 모른다는 내용의 특집 기사를 실었을 정도다. 모르몬 교인인 데이비드 캠벨 교수(노트르담 대학·정치학과)는 〈워싱턴 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모르몬 교인은 롬니 혹은 헌츠먼에게 선거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모르몬교를 주류 종교로 편입시키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라고 밝혔다. 갤럽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보수 유권자 가운데 22%는 ‘모르몬교 출신 후보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되면 찍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모르몬교에 대한 주류 기독교인의 경계심과 의혹을 누구보다 잘 아는 헌츠먼은 최근 모르몬교와 다소 거리를 두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모르몬 신자인 롬니나 헌츠먼은 유세 과정에서 보수 유권자들의 혹독한 심판과 검증을 거칠 것이 확실하며,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 정치적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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