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크레인에 올라 있는 김진숙씨가 보내온 글을 읽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크레인에서 쓰는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는 대목 때문이었다. 크레인 위에서도 상추를 기르며 희망을 키우던 그이가 어쩌다 이토록 깊은 절망을 토하게 된 것일까.

그이는 사태가 악화되면서 ‘막내 아들뻘 되는 용역이 정년을 앞둔 노동자를 걷어차는 것’을 35m 상공에서 무력하게 지켜봐야 했다고 했다. 순간 영화 〈똥파리〉가 생각났다. 양익준 감독의 자전적 체험이 바탕이 된 영화에서 주인공인 용역 깡패는 철거 현장 따위를 돌며 ‘실력’을 발휘한 뒤 봉투에 담긴 그날치 일당을 받는다. 그 봉투에 찍혀 있던 ‘참 잘했어요’ 도장. 그러나 그의 엉덩이를 ‘참 잘했어요’라고 두들기며 합법적 폭력으로 내모는 배후의 실체는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결코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이에는 이, ‘방어적 폭력’으로 맞서며 버티는 것이 해법일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기에 김진숙씨도 그토록 모진 시간을 견뎌야 했던 것이리라. ‘수주 0건’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한 경영진의 부도덕함은 백번 지탄받아도 마땅하다. 그렇지만 더 싼 노동력을 찾아 자본이 해외로 해외로 빠져나가는 마당에 한때의 ‘산업 역군’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시사IN〉이 비그포르스에 주목한 것은 이 때문이다. 국내에는 워낙 낯선 이름인지라 표지를 본 순간 고개를 갸웃하신 분도 적지 않을 게다. 나 또한 오늘날 세계적인 강소국으로 꼽히는 스웨덴에 도약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 정도로만 그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의 강력한 추천으로 이번 호 그를 본격적으로 살피면서 뭔가 출구 없는 현실에 숨통이 확 트이는 듯했다. 궁극적 유토피아가 불가능하다면 ‘잠정적 유토피아’라도 대중 앞에 제시하는 게 정치라니, 그야말로 ‘실용’의 원조라고나 할까? 더욱이 꿈을 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수구 정당, 기득권 재벌 따위 도저히 화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적’과도 과감하게 손을 잡았던 진보라니….

사실 먹고살기 바쁜 보통 사람들로서야 보수고 진보가 무슨 소용일까. 일한 만큼 벌고,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고, 품위 있게 늙어가고 싶은 모두의 소박한 꿈을 현실로 이뤄줄, 실력 있는 정치 세력의 출현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비그포르스와 그 친구들이 새로운 개안(開眼)의 경험을 안겨줄 것을 기대한다. 스웨덴 복지 모델을 입에 올리는 이즈음의 대권 주자들 또한 비그포르스를 제대로 알고 나면 ‘뉴타운 대박론’ 내지 ‘줄푸세 복지국가론’ 등 모순된 선동을 더는 입에 담기 민망하리라.

기자명 김은남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ke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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