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의 대화〉/구스타프 야누흐 지음/편영수 옮김/문학과지성사 펴냄
남한의 정치학자 K는 북한에서 열린 남북 교류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막 돌아온 참이다. 우연히 펼쳐든 신문에서 자신에 관한 기사를 발견하고 그는 경악한다. 신문 기사는 정치학자 K가 북한에서 남한 체제를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북한에 남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하고 있지 않은가. 때마침 연구실에 들른 조교는 K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란다. 교수님, 어떻게 여기에!

K는 신문사 편집국장을 찾아가 항의한다. 편집국장은 진심으로 미안해하지만 이번 경우만은 정정 보도를 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 국정원에 가보길 권한다. 국정원에서도 뭔가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하지만, 당장은 어떠한 조처도 취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별일 없을 테니 그저 조용히 지내고 있으라는 식이다. 그러나 조용히 지낼 수가 없다. 도청과 미행 때문에 악몽에 시달리던 K는 마침내 정치적 망명을 시도한다. 오보가 결국 사실이 되고 만 것. 

이 이상한 이야기는 밀란 쿤데라가 쓴 카프카에 관한 에세이(‘저 뒤쪽 어디에’, 〈소설의 기술〉)에 있는 원본을 가져와 우리 식대로 다시 각색한 것이다. ‘카프카에스크(Kafkaesque)’라는 형용사가 있다. ‘카프카적인’이라는 뜻이다. 저런 이야기가 ‘카프카적인’ 이야기다. 한 작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사례다. 조빔(A.C.Jobim)이 곧 보사노바이고 피아졸라(Piazzolla)가 곧 탱고인 것처럼.

카프카 월드로 초대하는 유용한 가이드가 출간됐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쓴 〈카프카와의 대화〉가 그것. 1920년 3월 어느 날, 17세의 문학 소년 구스타프 야누흐는 ‘변신’의 작가 카프카를 직접 만나게 된다. 소년의 아버지가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 그곳은 카프카의 직장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이 억세게 운 좋은 소년에게 카프카는, 부러워라, ‘아빠 친구’였던 것이다. 카프카 역시 이 문학 소년을 총애하여 두 사람의 만남은 꾸준히 지속된다. 1924년 6월3일 카프카가 사망할 때까지.

카프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결벽증적으로 엄격했다. 자기 책이 출간되는 것도 기꺼워하지 않았다.
구스타프 야누흐, 4년간의 만남 기록해

삶의 가장 불안정한 시기에 카프카를 만난 것은 구스타프 개인의 행운이겠지만, 그가 그 만남의 기록을 보존해두었다가 막스 브로트에게 보내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우리 모두의 행운일 것이다. 카프카는 어느 편지에서 ‘책은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트리는 도끼여야 한다’라고 쓴 적이 있다. 이 책은 카프카의 그 ‘도끼’ 같은 소설들이 어떤 맥락에서 탄생했는지를 카프카의 육성으로 들을 수 있게 한다. 이것은 마치 ‘죽은 작가와의 인터뷰’ 같지 않은가.

인간 카프카의 모습을 지인의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이 책의 매력이다. 카프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거의 결벽증적으로 엄격했다. 그는 자기 책이 출판되는 것을 기꺼워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강권으로 출간했을 뿐. 구스타프가 그의 단편 세 편을 가죽 장정으로 제본해서 갖다 주었을 때는 숫제 화를 내기까지 한다. 이 따위는 불에 태워 없애버려야 한다고. 

“… 내 서투른 글은 모두 없어져야 해요. 나는 빛이 아니에요. 나는 그저 내 자신의 고통의 근원으로 빠져들 뿐이에요. 나는 막다른 골목이에요.”(341~342쪽) 그러니 카프카가 이 책의 존재를 반기지 않을 것임은 명백하다. 그러나 카프카라는 ‘막다른 골목’이 누군가에게는 출구로 나아가는 ‘빛’이 되기도 하는 것을 어쩌랴. 

그 빛에 눈이 부셨던 경험이 필자에게도 있다. 10여 년 전에 이 책을 처음 읽었다. 소설가 오정희 선생이 어느 글에선가 이 책이 당신의 젊은 날에 버팀목이 되어주었다고 회고하고 계셨다.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고 거기서 한 권의 책을 찾았다. G. 야노욱흐, 〈카프카와의 대화〉, 가정문고, 1976. 한동안 그 책을 파먹었다. 그 책이 다시 나왔다. 반갑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기자명 신형철 (문학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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