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불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중수부) 폐지 논의를 둘러싸고 요즘 검찰이 국회를 향해 보여준 거친 언행은 한국 검찰 권력의 현주소와 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 검찰소위원회에서 여야가 중수부의 수사권을 없애기로 합의하자 김준규 검찰총장이 직접 총대를 메고 나섰다. 그는 “해병대 상륙작전을 하는 도중에 해병대를 해체하려고 한다”라는 말로 중수부 수사권 폐지에 관한 여야 합의를 정면 공격했다. ‘국회에서 중수부를 폐지하려는 것은 켕기는 게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검찰의 힐난에 이르러서는 겁박의 혐의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국회에서 여야 간에 중수부 폐지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것은 지난 3월 중순이었다. 그때는 아무 말도 없다가 5월 들어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대검 중수부가 맡고 나서야 ‘거악을 수사하니까 중수부를 폐지하려 한다’고 외치고 나선 꼴이다. 더구나 여야 합의 사항에 따르면, 중수부는 폐지 입법이 되더라도 6개월간 더 수사를 진행할 수 있으며 이후에도 거악을 수사하기 위한 새로운 수사기구 설치를 논의하기로 돼 있다. 따라서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못하게 하려고 국회에서 중수부를 폐지하려 한다는 검찰의 논리는 사실 왜곡이자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다.

 

ⓒ청와대 제공지난해 11월10일 청와대 행사에서 만나 파안대소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김준규 검찰총장(오른쪽).

 


그뿐 아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서민 울리는 거악’을 집중 거론하며 “중수부를 폐지하면 앞으로 권력형 비리 수사는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또 진행 중이던 부산저축은행 수사 보이콧까지 선언해 사건 피해자들이 ‘중수부 폐지 반대’라고 쓴 피켓을 들고 국회 앞에 서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한국의 공무원 집단 중 조직 이해가 걸린 사안에 이토록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정치 행위를 할 수 있는 곳이 검찰 말고 또 있을까.

검찰이 북을 울리자 청와대도 장구를 치고 나섰다. 여야의 중수부 폐지 합의에 김준규 검찰총장이 공개 반발한 직후 청와대가 검찰을 적극 거든 것이다. ‘거악 척결을 위해 중수부 폐지를 반대한다’는 것이 청와대의 주장이다. 도무지 누가 거악이고 누가 수사 주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더구나 청와대 역시 여야가 중수부를 폐지하기로 합의했던 3월 중순부터 지금껏 아무런 반응이 없다가 느닷없이 뒷북을 쳤다.

그렇다면 과연 검찰의 주장처럼 현 정부 들어 중수부가 ‘거악 부패 수사의 본산’으로 자임할 만큼 권력형 부정 비리에 맞서 제구실을 해왔을까. 또 중수부가 없어지면 권력형 부정 비리 수사에 손댈 수 없을 만큼 한국 검찰의 수사 능력과 기능은 무력화되는 것일까.

“편파 표적 수사만 벌였다” 비판받아

이와 관련해 전직 대검 중수부장 출신인 한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중수부 폐지 논의는 검찰의 자업자득이다. 지난 3년3개월 동안 이른바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에 대해 중수부에서 수사한 적이 단 한 차례라도 있는가?” 당초 중수부를 설치한 목적은 검찰총장이 정치적 외풍을 막는 방패가 되어줌으로써 거침없이 권력형 비리 등 거악을 척결하기 위해서였다는 것.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중수부는 과거 정권 관련 비위 사건 수사에만 치중해 공정성·형평성을 둘러싸고 불신을 샀다. 이 변호사는 “오늘의 사태는 중수부를 존치하는 데 가장 큰 원군이라 할 수 있는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라고 진단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명박 정권 3년3개월 동안 대검 중수부가 벌인 수사를 들여다보면 ‘권력의 외압을 물리친 거악 척결’이라는 검찰 주장이 얼마나 무색한지 잘 보여준다. 이 기간 중수부 수사는 모두 5개였는데, 모조리 ‘죽은 권력 들추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검찰총장이 중수부를 통해 권력의 직접 지시를 받는 편파 표적 수사만 벌였다는 비난도 그래서 나온다.

 

 

 

 

 

 

ⓒ사진공동취재단‘명예 살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중수부 폐지 논의의 도화선이 되었다.

 

 

첫 대상은 강원랜드를 비롯한 5개 공기업 비리 수사였다. 참여정부 당시 임명된 공기업 임원들의 뒤를 대대적으로 뒤진 이 사건 수사는 현 정권을 향한 ‘해바라기성 청부 수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중수부를 움직여서 임기가 남은 공기업 임원들을 표적 삼아 대거 내보내고, 그 자리를 대부분 낙하산 인사로 채웠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창출에 공을 세운 이른바 개국공신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중수부의 두 번째 수사 역시 전 정권 손보기에 표적이 맞춰졌다. 세종증권 매각 비리에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이 연루된 사건을 수사한 결과 중수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씨를 비리 혐의로 구속했다. 세 번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 정·관계 로비 수사였다.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은 ‘인격 살인식’ 검찰 수사의 부당성을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중수부의 네 번째 수사는 C&그룹 비리 수사였다. ‘다 죽은 호남 기업 뒤지기’라는 비판을 받으며 벌인 이 수사에서 중수부는 권력형 비리는 단 하나도 밝히지 못한 채 관련자 14명을 단순 비리 혐의로 기소하는 데 그쳤다.

이처럼 이명박 정권 3년3개월이 흐르도록 중수부는 살아 있는 권력 실세 관련 비리나 거악 수사는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던 셈이다. 이명박 정권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서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은 물론 김윤옥 여사의 친인척 등이 부정 비리에 연루된 의혹을 둘러싸고 각종 고발이 있었지만 중수부는 수사를 피했다. 대신 지검 형사부 등으로 보내 대부분 도마뱀 꼬리 자르기 선에서 사건을 처리했다.

바로 이 같은 행태 때문에 검찰 안에서도 거악 척결을 명분으로 중수부 존치를 고집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고 인정하는 이가 적지 않다. 재경 지청의 한 부장검사는 “권력 실세 주변에 무슨 일만 생겼다 하면 중수부가 피해놓고는 이제 와서 거악 척결에 중수부가 꼭 필요하다고 하면 믿어줄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지난해 민간인 사찰 수사만이라도 중수부가 제대로 파헤쳤더라면 이 정도로 코너에 몰리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말꼬리를 흐렸다. 하지만 이명박 정권 아래서는 중수부가 이 사건을 맡을 엄두도 못 내더라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김홍일 중수부장과 우병우 수사기획관 등 중수부 핵심 멤버는 BBK 사건 무혐의 처리와 노무현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등에 개입해 현 정권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은 전형적인 ‘MB 보은 인사’ 대상이었다.

 

 

 

 

 

ⓒ뉴시스6월9일 국회 법사위 회의실에서 사법개혁 특위 소속 여야 의원이 중수부 폐지를 논의하고 있다.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은 ‘외면’

한 현직 검사는 “아무리 조심스러운 시각으로 보더라도 청와대 배후 혐의가 짙은 총리실 민간인 사찰 사건은 심각한 권력형 범죄였던 만큼 마땅히 거악 척결을 명분으로 내건 중수부가 수사를 맡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여름 드러난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민간인을 사찰하고, 민간 기업 회계자료를 압수 수색해 사직을 강요하는 등 각종 초법적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이렇게 불법 행위를 통해 수집한 자료를 경찰에 넘겨 수사하도록 했으며, 그 증거를 은폐하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이 개입해 하드디스크를 훼손하는 등 조직적으로 조사를 방해했다.

하지만 고발장을 받은 검찰은 이 사건을 중수부 대신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배당해 축소 처리하고 말았다. 형사부 수사팀은 총리실 이인규 전 공직윤리지원관 등 3명을 단순 직권남용죄로 기소해 사건을 마무리한 뒤 “청와대와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다”라고 발표했다. 사찰을 지시하고 정기적으로 보고받은 청와대 비서관은 무혐의 처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사건 수사 발표 후에도 청와대가 사찰에 직접 개입한 정황이 잇따라 드러났다. 사찰 실무자 수첩에 ‘BH 지시’라는 메모가 수시로 등장했고 청와대 비서관이 총리실 직원에게 직접 지급한 대포폰(차명 휴대전화)이 불법 사찰 증거로 확인됐다. 하지만 검찰은 끝끝내 ‘재수사는 없다’며 청와대를 감쌌다.

그렇다면 ‘정치 수사’ 시비와 별개로 대검 중수부가 수사를 잘하는 곳이기 때문에 능력과 효율성 면에서 존치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은 일리 있는 것일까. 최근 검찰 수뇌부는 마치 중수부가 아니면 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못할 것처럼 주장한다. 하지만 삼화저축은행과 보해저축은행 비리 수사는 광주지검 특수부와 서울중앙지검 조세금융조사부가 맡아도 중수부 못지않은 수사 성과를 내고 있다. 특히 광주지검 특수부는 금감원 간부 4명과 전·현직 군수 2명 등 저축은행 비리 관련 단체장을 구속 기소하며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런 현실을 보더라도 대검 중수부 외의 검찰 조직이 정치 외압에 약해 제대로 수사를 못할 것이라는 검찰 일각의 주장은 제 얼굴에 침 뱉기인 셈이다. 가까운 예로 일본만 해도 중수부 같은 옥상옥(지붕 위에 지붕을 얹는 식) 조직 없이 도쿄지검 특수부가 거악 척결의 선봉 노릇을 잘 수행하고 있다(38~39쪽 딸린 기사 참조).

각종 통계 또한 대검 중수부가 내세우는 수사 능력의 허구성을 보여준다. 검사 출신으로 최근 〈대한민국 검찰공화국〉을 공저한 김희수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2008년 전체 형사 사건을 조사해보니 무죄율이 0.31%인 반면, 대검 중수부가 맡은 사건의 무죄율은 27.3%였다. 항소심과 상고심은 더욱 심각하다. 대검 중수부 사건의 무죄율은 32%에 이른다. 이는 출세욕과 공명심이 앞선 중수부가, 권력자가 하명한 사건을 맡아 피의자 인권을 유린했음을 방증해준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가 그 결정판이다.”

현재 국민이 바라는 것은 대검 중수부가 해체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독립성을 가지고 부패를 척결할 수 있는 믿음직한 수사기구의 존재이다. 중수부 대신 고위 공직자의 비리를 독립적으로 수사·기소하는 상설 수사기관(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을 신설하는 방안 등이 그것이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는 여야 합의로 단지 그 첫 단추를 끼웠을 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검찰이 강력히 반발하고 청와대까지 거들고 나서자 당황한 한나라당은 6월9일 의원총회를 열어 중수부를 폐지키로 한 여야 합의를 ‘없던 일’로 번복해버렸다. 결국 청와대와 검찰의 ‘미묘한 협조’ 속에 당분간 중수부는 연명해나갈 길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존폐 기로에서 뒤늦게 ‘거악 척결’을 명분으로 내건 대검 중수부가 청와대와 권력 핵심 인사들의 이름이 꼬리를 무는 저축은행 비리 사건 수사에서 어떤 잣대를 들이댈지 주목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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