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 나흘 만인 3월15일에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도움을 요청했다. 그때까지는 사실상 원전 사업자인 도쿄전력을 믿고 기다려왔던 것이다. 상황이 악화돼 도쿄전력이 현장 직원들을 철수시키겠다고 하자 간 나오토 총리가 도쿄전력에 분노를 터뜨렸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사고가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 정부는 즉각 원전 사고 수습조치를 취할 수 있을까? 현행법에 따르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일단 원전 사업자를 믿고 맡길 수밖에 없다. 원자력법 제98조에 따르면 지진·화재 등 재해에 의해 원자력 이용 시설이 고장 나고 방사선 재해가 발생했을 때, 원자력 관계 사업자가 이에 대처하고 관련 내용을 정부에 신고토록 돼 있다. 정부가 즉시 개입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은 것이다. 이는 최근 정부가 내놓은 개정 추진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지난해 3월 권영길 외 국회의원 10인이 발의한 원자력법 개정 추진안에는 ‘즉시강제권’이 포함돼 있다.


ⓒ청와대 제공이명박 대통령이 5월17일 대전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방문해 고리 제1발전소장과 화상통화를 하고 있다.

원자력 관련법 정부 개정 추진안이 원자력 안전 규제를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짜인 것은 사실이다. 기존 원자력 규제와 진흥 방안을 뒤섞어놓았던 원자력법을 원자력안전법과 원자력진흥법으로 분리해놓고,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격상시키며, 교과부의 원자력안전국도 따로 떼어내 위원회 산하 사무처로 붙였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위원 결격 사유도 ‘최근 2년 내 원자력 이용·진흥 관련기관 종사자 및 연구 수행자’로 규정해 원자력 진흥을 외치던 인사가 갑자기 안전 규제를 담당하게 되는 모순을 방지했다.

하지만 몇 가지 부분에서는 아직 충분치 않다. 원자력 안전 규제의 기술적 실무를 담당하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을 여전히 관보에 의해 업무가 위탁되는 ‘지원기관’으로 둬 독립성을 부여하지 못했고, 긴급한 필요 시 방사선 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즉시강제권도 포함하지 않았다. 또한 원자력 안전 규제를 위한 연구개발 기금을 지금처럼 교과부와 지식경제부 같은 원자력 이용·진흥 부처가 심의하게끔 돼 있어 규제의 재원 독립성 확충 방안도 갖추지 못했다(42쪽 표 참조).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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