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히 폐쇄한다는 독일 정부의 발표를 이끌어낸 것은 민간 전문가 17명으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윤리위원회)였다. 여기에 참여한 미란다 슈로이어 교수는 동아시아 기후·에너지 정책 전문가이자, 유럽연합(EU) 환경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그녀가 몸담고 있는 또 하나의 기구인 독일연방정부 환경자문회의는 2050년까지 독일 전력의 100%를 재생가능 에너지로 공급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올해 초 발표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독일 녹색정책 창시자로 불리는 마르틴 예니케의 뒤를 이어, 2007년부터 베를린 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장으로 재임 중인 그녀를 만나 원전 폐쇄 결정의 의미 등을 들어보았다. 독일 정부가 2022년까지 원전을 완전 폐쇄하겠다고 결정했다. 내가 속한 윤리위원회는 출신 배경이 서로 다른 전문가들이 모인 기구다. 이런 기구에서 2021년까지 원전 폐쇄를 하겠다는 결정을 이끌어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 이를 받아 독일 정부는 완충 기간을 1년 둔 뒤 2022년까지 원전을 폐쇄하겠다고 결정했다. 시기가 좀 더 앞당겨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한다. 다만 화력발전을 더 짓겠다는 계획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염광희

일본 원전 사고 이후 유럽 국가들 중에서 독일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점을 흥미롭게 생각한다. 일단은 체르노빌 사고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 독일인들은 매우 심각한 심리적 공황을 경험했다.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낙진이 독일 땅에 떨어지면서, 방사능 낙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멀리까지 날아간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독일의 반핵·환경 운동의 특수성을 들 수 있다. 독일 녹색당은 환경운동 그룹 중에서도 반핵운동 진영이 핵심으로 참여해 만들어졌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이미 원내에 진출해 있던 독일 녹색당은 정부의 원자력 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면서 영향력을 키워왔다.

독일과 이웃한 프랑스는 ‘원전 대국’으로 꼽힌다. 스웨덴 또한 한때 핵 폐기를 결정했다가 다시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독일과 스웨덴의 결정적인 차이는 냉전 경험이 있으냐 없느냐이다. 통일 이전까지 독일은 동·서 갈등을 겪었다. 옛 소련과 미국의 영향 아래 서로에게 장거리 미사일을 겨누었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독일 시민들은 독일 땅에 무기가 배치되는 것을 반대하고 핵무기에도 반대하는 행동에 나섰다. 즉, 독일에서는 반핵운동이 곧 평화운동이기도 했다. 이것이 스웨덴 등 여타 유럽 국가와 독일을 다르게 만든 중요한 지점인 것 같다. 프랑스의 경우 에너지 기업이 국영이라는 점 또한 기억해야 한다. 반면 독일은 전력산업이 민영화되었고, 체르노빌 사고 이후 매우 강한 환경부가 들어섰다. 원자력 안전과 재생가능 에너지 보급이 환경부 소관으로 추진되면서 힘을 얻었다. 당신이 속한 연방정부 환경자문회의는 2050년까지 재생가능 에너지만으로 독일이 필요로 하는 전력의 100%를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기술적으로 100% 가능하다. 환경자문회의뿐만 아니라 독일연방환경청·세계자연보호기금(WWF)·그린피스 등도 이것이 가능하다는 시나리오를 이미 제시한 바 있다. 단,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에너지 효율을 증가시켜 수요를 줄여야 한다. 재생에너지의 출력 효율을 높이기 위해 풍력발전의 경우 리파워링(소형 풍력발전기를 대형 풍력발전기로 교체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적재적소에 재생에너지를 보급하는 일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느 지역에 해상 풍력을 공급하고, 어느 지역에 대규모 태양광을 보급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 말이다. 그 밖에 재생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서는 전력을 저장하는 기술이 보급돼야 한다. 노르웨이 등에 많이 건설돼 있는 댐을 양수발전소로 활용한다든가 지역 분산적인 에너지 저장, 메탄을 활용한 저장, 스마트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보급 등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력 가격이 상승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나라와 협력하면 가격은 더 저렴해질 것이다. 6월 초 일본을 방문한다고 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 나아가 국제사회가 갈 길을 전망한다면? 일본 민주당과 의회의 초청을 받아 일본에 가게 되었다. 일본 사회 또한 독일의 에너지 정책이 어떻게 변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매우 궁금해한다. 일본의 경우 매우 강력한 원전 산업이 있기 때문에 독일처럼 원전 폐쇄를 선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전력의 50% 이상을 원전에 의존하겠다던 이전 정권과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핵 산업에 지금과 같은 지원이 계속되지도 않을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복구하는 데만 해도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미국은 자국 내 모든 원전의 안전성을 검토하고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미국 핵규제위원회의 1차 리포트에는, 현재 가동 중인 미국 내 원전의 안전과 관련한 많은 문제가 지적되어 있다. 독일처럼 확고한 폐기는 아니더라도 어느 나라든 새로운 핵발전소를 건설하기는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한국은 최근 10년간 에너지 소비가 40% 가까이 급증했다. 그에 반해, 재생에너지 비중은 고작 1% 남짓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원자력발전소를 폐쇄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한국과 일본의 사정이 거의 비슷하다고 들었다. 강력한 원전 산업이 있고, 원전 관련 기술의 잠재력 또한 상당하다고 알고 있다. 그렇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한국인들에게도 충격일 수밖에 없지 않나? 이 사고로 인해 시민사회나 지역공동체의 원전 반대 움직임이 거세지고, 원전 건설비용 또한 이전보다 비싸질 것이다. 그간 원자력 산업계가 지불하지 않고 정부에 떠넘겼던 보험이나 핵폐기물 처리 비용 따위 숨겨진 비용(hidden cost)도 드러나게 될 것이다. 원전을 수출하는 문제 또한 그렇다. 가까운 미래에 신규 원전 건설에 관한 좀 더 까다로운 기준이 도입되리라 보인다. 사고 위험이 있는 국가,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 등에 원전을 수출하는 것이 매우 어렵게 될 것이다. 파키스탄이나 이란에 원전을 건설하는 것을 누가 원하겠는가? 한국도 어느 정도 에너지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리라 본다. 한국 정부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원전을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또한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겠다는 강력한 정책 목표를 갖고 있다. 이 목표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원전을 폐쇄할 것이냐가 관심사다. 원전을 폐기한다고 석탄으로 이를 대체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재생에너지 확대만이 정답이라고 본다. 현재 국제사회에서 독일이 일종의 정책 모델이 되어 있다. 독일이 원전 폐기에 성공하면 다른 나라들 또한 독일을 보고 원자력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이 핵 폐기에 성공하게 되면 재생에너지 생산 단가 또한 자연스럽게 하락하게 될 것이다. 과거 독일이 ‘발전차액지원제도’로 알려진 재생에너지법을 도입하는 데 성공하면서 많은 나라가 이 제도를 채택한 바 있다. 정책 모델이 작동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이 이것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선구자의 강점 중 하나는 기술 리더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의 리더가 되는 것도 독일의 목표 중 하나이다.
기자명 염광희 (베를린 자유대학 환경정책연구소 박사과정 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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