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타국 땅에서 힘들고 외롭게 생활하는 이주노동자(위)에게 의료보험 적용은 시급한 일이다.
이천 물류창고에서 발생한 가스 폭발 사고로 중국 동포 다섯 명과 우즈베키스탄인 한 명이 사망했다. 지난해 2월 여수 출입국관리소 화재 사건으로 이주노동자 열 명이 죽은 이래 또다시 발생한 대형 참사다. 이처럼 ‘대형’ 사건이 아니더라도 최근 이주노동자들의 사망 사건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10월29일에는 베트남 이주노동자 K씨가 컵라면을 먹은 뒤 복통을 호소하다 숨졌고, 11월20일에는 P씨가 자다가 호흡곤란을 일으켜 병원에 옮기기도 전에 사망했다. 그리고 1월 6일에는 역시 베트남 이주노동자 W씨가 기숙사에서 급사했다. 우리 센터가 거들어서 장례 절차를 치른 사망자가 두어 달 사이에 세 명이나 되니, 전국으로 볼 때 얼마나 많은 이주노동자가 사망하는지 짐작이 된다.

안타까운 건 그들 대부분이 20~30대의 건강한 젊은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사망 뒤 부검을 해도 사망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주위 사람들을 더욱 슬프게 만든다. 그들은 결국 산업재해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겨우 시신만 고국으로 돌아가는 신세다.

더욱 안타까운 건 사전에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이주노동자의 죽음도 여럿이었다는 점이다. 충남 아산에서 일하다 지난해 12월26일 세상을 떠난 태국인 안모웨이 씨는 사망 며칠 전부터 맹장염으로 인해 복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 신분인 데다 오랜 실직 상태로 돈이 없었던 안모웨이 씨는 집에서 극심한 복통을 참아내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12월25일 저녁에야 아산시에 있는 개인병원을 찾았지만 그는 개인병원에서 치료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부랴부랴 순천향대학교병원으로 옮겨 진단을 받았으나 병은 이미 맹장염에서 복막염으로까지 번져 있었다. 더 이상 손쓸 도리도 없이 그는 ‘맹장염’으로 숨을 거뒀다. 

대한민국은 ‘이주노동자의 무덤’인가

지금 우리 사회에서 맹장염으로 죽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병원에서 간단한 수술만 받으면 완치할 수 있기 때문에 ‘큰 병’이라 여기지도 않는다. 여러 해 동안 남의 나라에서 일하다가 맹장염을 치료할 돈조차 없어 세상을 뜨고 마는 것이 오늘날 한국 이주노동자의 현실이다.

문제는 안모웨이 씨처럼 언제 비명횡사할지 모를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수가 22만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합법 체류’ 이주노동자의 규모와 맞먹는 수치다. 한국 정부도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이 심각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전국에서 무료 진료사업 등을 실시 중이다. 하지만 교통편이 좋지 않은 외딴 곳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에게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아예 이런 정보 자체를 몰라서 혜택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근본적으로는 등록·미등록 여부를 떠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지자체에서 신분증을 발급하고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열악한 노동환경, 건강과 의료에 대한 무관심, 문화 차이로 인한 스트레스 등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생활인’으로 겪는 여러 요인이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봐야 옳다.

돈을 벌기 위해 멀리 타국으로 떠났던 피붙이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때 가족이 느끼는 절망감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들의 슬픔을 이대로 방치하는 한, 대한민국은 ‘이주노동자의 무덤’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다.

기자명 최정의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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