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모든 사람이 한 방향을 바라볼 때 누군가는 반대 방향을 주시하는 것, 이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이명박 정권의 많은 사람이 한·미·일 공조를 이야기할 때 중국으로 열린 창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다.
후진타오 주석은 중국 특사 왕이 부부장이 이명박 당선자를 만났을 때의 어색함을 상쇄하기라도 하듯이 지난 1월17일 박근혜 특사를 반갑게 맞았다. 그는 이명박 당선자를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초청했고 한국과의 협력적 동반자 관계를 격상할 용의가 있다고 ‘깜짝 선물’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 3일 전인 1월14일 이명박 당선자를 찾은 중국 특사 왕이 부부장은 정색을 하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한·미·일 관계를 중시하는) 이 당선자 취임으로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질 것이라고 염려하는 일부 언론 보도가 있지만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다. 당선자의 생각을 듣고 싶다.” 외교 화법을 직설법으로 풀어보면, ‘당신들이 미국·일본을 중시하고 중국을 소홀히 대하겠다고 하는데 사실인가’라고 따져 물은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도 하기 전에 벌써부터 외교적으로 여러 차례 평지풍파를 겪는 듯하여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나마 박근혜 전 대표를 중국 특사로 보낸 것은 참으로 잘된 일 같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중국이 호감을 가진 인물을 적시에 보낸 게 아닌가 싶다.

부친이 미국과 불편한 관계였던 박근혜와 다나카 마키코

박근혜 전 대표가 2006년 11월 중국을 방문했을 때 아주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중국 측은 당시 박 전 대표에게 ‘21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그것은 바로 당신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아버지가 20세기 동북아시아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것처럼 당신도 21세기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박근혜씨 측도 당시 국빈 대접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녀의 이 중국 방문기는 미국 방문기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미국 역시 박 전 대표를 환대했으나, 정작 본인은 중국에서만큼 기꺼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동양과 서양의 손님 접대 방식 차이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사유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주변에서는 ‘생래적으로 친미가 어렵지 않겠나’라고 수군거렸다고 한다.

그런 얘기를 듣는 순간 오버랩되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다나카 마키코 전 일본 외상이다. 박근혜와 마키코는 그 선대의 ‘히스토리’에서 매우 흡사한 부분이 있다. 최근 외교부 비밀 해제 문서에서도 다시 한번 분명해졌지만, 박 전 대표의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5년까지도 독자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할 정도로 우파 민족주의의 길을 걸은 면이 있다. 생시에 그는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다. 필자는 그 시대 산업화 주역을 담당했던 인물들을 접하면서 그들이야말로 ‘생래적으로 친미가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느낀 적이 있다. 그렇다고 반미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미국의 견제와 간섭·통제를 뚫고 국익을 관철하기 위해 흘렸던 그들의 땀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필요할 듯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 배경에 미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얘기 역시 그 때문에 나왔다. 다나카 마키코의 부친 다나카 총리가 몰락한 과정은 이보다도 훨씬 직접적이다. 1972년 7월 총리 취임 이래 2년4개월간 그는 중국과 국교 정상화, 에너지 민족주의적 정책 등 일본판 우파 민족주의 노선을 걸었다. 이것이 화근이었던지, 퇴임 후 2년 뒤 벌어진 록히드 스캔들에서 그는 워싱턴발 괴문서의 첫 번째 희생양이 되었다.

미국과 거리를 두다 권좌에서 밀려난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란 마키코의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외상 시절의 그는 ‘반미 친중’ 성향으로 유명했다. 일본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실질적인 일본 총독’이라 불렸던 아미티지 당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의 면담 요청을 ‘격이 안 맞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얘기는, 이웃 나라의 일이지만 지금도 뇌리에 선명하다. 

고이즈미 정권은 자타가 공인하는 친미 일변도 정권이었다. 그런 정권이 친중 성향의 마키코를 외상에 앉히는 것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 일본은 늘 태평양 건너 미국을 바라보면서도, 그 미국이 언제든지 자신들의 머리 위로 중국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미국이 그런 조짐을 보일 때마다, 미국보다 먼저 중국과 손을 잡아버림으로써 미국을 ‘응징’해온 게 바로 일본 외교의 진면목이다.

모든 사람이 한 방향을 바라볼 때 누군가는 반대 방향을 주시하는 것. 이것이 바로 외교의 기본이다. 이명박 정부 시대에 모든 사람이 한·미 동맹, 한·미·일 공조를 얘기할 때, 중국 쪽으로 열린 창이 하나쯤 있다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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