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국가 이주노동자들은 오히려 탈레반의 한국인 납치를 비난하며, 인질 석방을 요구했다(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탈레반에 납치된 며칠 뒤 밤 12시께 이주노동자 산재쉼터는 공포 분위기로 뒤덮였다. 술에 취한 한 40대 한국인이 쉼터에 갑자기 들어와서는 신발을 신은 채 마루에 올라와 “모슬렘은 나쁘다. 왜 한국 사람을 납치했느냐? 만약에 그들이 살해되면 나도 너희들을 죽이겠다”라고 마구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쉼터 관리자는 그가 술에 취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 “신발을 벗고 앉아서 차분히 이야기하자”라고 권했으나 안하무인이었다. 할 수 없이 쉼터 관리자가 경찰에 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출동하지 않았다. 쉼터에 있던 사람들은 두 시간 동안이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우리 쉼터에 입소해 있던 방글라데시 출신 등 모슬렘(이슬람교도)들은 더했다. 이들은 납치 사건 발발 이후 혹여나 자기들에게 불똥이 튈까 싶어, 외출조차 자제하던 참이었다. 

기다리던 경찰은 두 시간 정도 지나서 왔다. 그런데 경찰을 데리고 온 사람은 바로 횡포를 부리던 한국인이었다. 그가 경찰에 “쉼터에 불법 체류자가 있으니 와서 잡아가라”고 신고한 것이다. 한국인의 횡포를 신고할 때는 오지 않던 경찰이 외국인 불법 체류자를 신고하자마자 금방 출동했으니 이때 외국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결국 경찰들은 사태를 파악한 후 그 한국인과 쉼터 관리자를 치안지구대로 데리고 갔다. 치안지구대에서도 계속 떠들어대던 그는 경찰서에 넘어가 구속될 처지에 놓이자 마지못해 사과했다고 한다. 외국인과 한국인의 차별 행위에 분노한 쉼터 관리자는 그로 하여금 다음날 쉼터에 와서 정식으로 사과하겠다는 약속을 받은 뒤에야 석방에 합의했다.

한국인들, 국가와 개인 구별하지 않고 판단

비록 큰 불상사 없이 일이 끝났지만,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해 자행된 한국인 피랍 사태를 왜 한국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과 관련시키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나라도 다르고 민족도 다르지만, 이슬람을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납치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그 비상식적 행위를 단지 술에 취해 실수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엇인가 석연치 않다. 그 배경에는 국가와 개인, 민족과 개인, 단체와 개인을 구별하지 않는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풍토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국가라고 다 똑같지 않다. 이들 나라 중 일부는 오히려 이러한 납치 행위가 자신들의 신앙에 위반된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이슬람 근본정신인 사랑에 입각해 인질들을 조속히 석방시킬 것을 촉구한 바 있다.

지난 4월에 있었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 때 미국인들의 자세가 생각난다. 총기를 난사한 범인이 한국계인 조승희씨로 밝혀지면서 미국 교민 사회에는 비상이 걸렸다. 필자는 33명을 살해한 소름 끼치는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교민과 유학생들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을까 매우 걱정했다. 그런데 미국인들은 오히려 조승희씨도 미국 사회의 피해자라는 인식으로 그를 추모하는 꽃을 달았다고 한다. 한국인에 대해 인종 혐오적 반응을 보이는 일 또한 없었다. 미국 사회에서는 개인과 국가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탈레반이 자기들의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면서 무고한 한국인을 납치한 것은 어떠한 변명을 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분노를 한국에 있는 모슬렘 이주 노동자들에게 대리 표출하는 것 또한 상식 이하의 만행이다. 이주 노동자 1백만 명 시대, 이제 우리 사회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기자명 최정의팔 (서울외국인노동자센터 소장)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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