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상사가 자리를 비운 날 아침 출근길은 왠지 마음이 편하다. 버스를 놓쳐도, 지하철 환승 통로에 사람들이 꾸역꾸역 밀려 있어도, 저 멀리 횡단보도 신호등에 초록색 불이 깜빡거려도 이상하게 발걸음이 느긋하다. 몰랐다. 장관님들까지 나 같은 줄은 정말 몰랐다. 이명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길에 오른 5월11일 아침 8시, 국무회의 시간에 제대로 출석한 장관은 18명 가운데 10명도 되지 않았다. 보스가 자리를 비우니 아랫사람들이 금세 ‘빠진’ 것이다. 깬다. 장관직, 별거 아니었다. 그냥 ‘대통령의 부하 직원’일 뿐이구나.

장관들 기강이 해이해진 탓일까? 치안부터 불안해진다. 남의 나라 일인 줄만 알았던 폭탄 테러 사건이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났다. 지하철 서울역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의 사물함에서 터진 사제 폭탄, 분석해보니 장난감용 폭죽 화약에 일회용 부탄가스를 연결해 완성한 것이란다. 누가 그랬을까? 오사마 빈라덴? 죽었으니까 아니겠고, 소말리아 해적의 보복? 거리가 너무 멀다. 


경찰은 CCTV에 찍힌 용의자를 ‘사회에 불만을 품은 사람’으로 추정했지만, 누리꾼들은 국가에서 배운 ‘대한민국의 인과법칙’을 사용해 범인을 지목한다. 7개월 전부터 악성코드를 유포하고 노트북을 감염시켜 원격으로 해킹을 한 북한 정찰 총국이 아니었던가. 이번에 해커부대가 아닌 부탄가스 부대가 새롭게 등장할지 모르겠다.“저렴한 부탄가스를 이용한 걸로 봐서 가난한 북한의 소행이 틀림없다!” 파란색 유성펜으로 ‘1번’이 적혀 있는지 여부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북 구미의 단수 사태도 북한의 소행이면 욕이나 실컷 할 수 있으련만, 안타깝게도 각하의 숙원 사업 4대강 공사가 구미 시민들에게 새삼 수자원의 귀중함을 일깨우사, 어디 함부로 욕하기도 어렵게 되어버렸다. 구미 광역상수도 해평취수장에 설치된 4대강 공사 임시 제방이 붕괴되면서 닷새째 수돗물이 끊긴 구미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생수를 사서 화장실 변을 내리고 급기야 거리 곳곳에 대변을 보기까지 했다니, ‘불신 지옥’ 능가하는 ‘단수 지옥’이 도래했음이 틀림없다. 닷새 만에 겨우 수돗물 공급을 정상화시킨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 단수 지옥을 구원한 자는 트위터를 통해 결성된 ‘구미 물공급 원정대’였다. 부디 이 원정대가 상설 조직이 되지 않게 해주옵소서, 아멘.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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