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늄이 원자로에서 인간을 위한 막대한 에너지를 생성해낸다. 그리고 할 일을 다한 핵폐기물은 아주 안전하게, 땅속 아주 깊은 곳에 버려져 인류에게 잊힌다. 이 핵폐기물들은 토양도 물도 공기도 오염시키지 않은 채 독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10만년 후까지 안전하게 봉인된다.

이게 인류가 꿈꾸어온 핵에 관한 최선의 시나리오다. 이미 몇 번의 큰 사고로 시나리오 초반부는 훼손되었지만, 잘만 한다면 시나리오 후반부는 그대로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핀란드의 단단한 기반암 지대에 지하 500m를 뚫어 만들고 있는 핵폐기물 보관소 ‘온칼로(Onkalo)’가 바로 시나리오를 실현해주는 최초의 장소가 될 것이다. 자부심과 흥분으로 가득 찬 핀란드 관료들에게, 감독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자꾸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후손들이 온칼로를 발견하면 어떡하나요?” “종교적 성지나 보물이 묻힌 장소로 오해하면요?” “몇 만년 뒤 인류가 핵폐기물이 뭔지 알고 있을까요?”


미카엘 마센 감독(덴마크·위)의 〈영원한 봉인〉 (왼쪽)은 지하 500m를 뚫고 만든 핀란드의 핵폐기물 보관소 ‘온칼로’가 10만년 뒤까지 과연 세상과 완전히 격리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전망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영원한 봉인〉 앞에서 한국 인들이 가장 먼저 마주칠 감정은 ‘부러움’이다. “깨끗하고 안전하다”라는 말만 반복하는 한국의 관료들과 달리, 영화 속의 핀란드 핵폐기물 관련 국가기관 담당자들은 자기 입으로 방사선의 위험성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한다. “몇 만년 뒤 인류가 지금과 다른 언어를 써서 온칼로가 위험하다는 표식을 몰라보면 어쩌죠?”라는, 어찌 보면 과한 것 같기도 한 감독의 질문에 함께 머리를 싸매고 고뇌한다. 100년 뒤도 아닌 10만년 뒤 후손들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들여 2100년까지 ‘핵폐기물 안전 저장소’를 만들 계획을 세워놓고 실제 작업을 진행하는 핀란드의 모습은, 당장 내일 쓸 에너지를 위해 원전을 늘려가는 나라에 사는 사람에겐 생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온칼로는 끔찍한 장소이다. 몇 차례 빙하기도 견뎌내며 생존한 인류의 후손들이, 보물을 숨겨놓은 곳인 줄 알고 겹겹이 막아놓은 온칼로를 파헤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그렇게 영화는 ‘가장 진보된 행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가장 끔찍한 미래를 그릴 수밖에 없는’, 핵을 사용해버린 인류의 원죄를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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