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3월, 나는 스포츠 전문 주간지 기자를 그만두고 스페인으로 한 달 동안 축구 여행을 다녀왔다. 마드리드를 거쳐 두 번째 목적지인 바르셀로나에 당도했을 때가 3월31일(금요일) 밤이었다. 마침 다음 날 밤 바르셀로나-데포르티보 리그 경기가 열릴 예정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경기장 앞 매표소에 가서 예매를 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는 호나우지뉴였다. 호나우지뉴는 2002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고, 2005~2006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자신의 독무대를 연출했다. 모두가 호나우지뉴를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라고 입이 마르게 칭찬할 때였다.


ⓒReuter=Newsis리오넬 메시(오른쪽)는 2007년 4월18일 상대편 골키퍼를 포함해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위).

하지만 나는 당시 열여덟 살 축구 신동 메시의 플레이를 감상하고 싶었다. 경기 직전까지 비가 많이 내려서 본부석 맨 앞자리가 다소 불편했지만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른쪽 윙포워드에 포진한 메시를 눈앞에서 지켜봤으니 행운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반 44분 기다리던 장면이 연출되었다. 메시가 호나우지뉴의 패스를 가슴으로 받아 상대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선제골을 성공한 것이다. 나를 포함해 캄프 누(FC 바르셀로나의 축구장)에 모인 6만5000여 명이 메시를 연호했다. 결국 바르셀로나가 2대1 승리를 거뒀다.

돌이켜보면, 2007년은 메시라는 선수가 축구사에 각인되기 시작한 해가 아니었나 싶다. 메시를 언급할 때면 자료 화면을 통해 반복되어 방영된 축구사적 명장면이 나왔기 때문이다. 메시는 4월18일 헤타페와 겨룬 코파델레이(스페인 국왕컵) 4강전에서 골키퍼를 포함해 상대 선수 6명을 제치고 골을 넣었다.

펠레·마라도나·메시 중 최고 선수는?

메시의 골은 제친 선수들의 숫자, 골문과의 거리, 골 뒤풀이까지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터뜨린 마법의 골과 매우 흡사했다. 이때 메시의 골은 한동안 끊임없이 리플레이되었고, 스페인 언론은 ‘메시도나’라는 별명을 선물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메시가 호나우지뉴를 밀어내고 바르셀로나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는 데 고작 1년밖에 안 걸렸다.

그리고 2010~2011시즌 현재 메시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 개인 득점 기록은 매 시즌 10골 단위로 늘어나고 있으며, 게르트 뮐러가 세운 유럽 무대 한 시즌 최다 골(55골) 경신을 앞두고 있다. 메시의 골 폭풍에 힘입어 소속 클럽 바르셀로나는 리그 3연속 우승을 확정 짓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맛붙을 챔피언스리그 결승전(5월29일)을 기다리고 있다.

리오넬 메시 1987년 아르헨티나 출생, 키 169cm, 몸무게 67kg2005년부터 FC 바르셀로나 공격수로 활약우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2005~2006시즌, 2009 ~2010시즌), FIFA 클럽 월드컵 우승(2009~2010시즌), FIFA U-20 월드컵 우승,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획득.개인상:발롱도르 2회(2009년·2010년), UEFA 챔피언스리그 득점왕(2009~2010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득점왕(2009~2010시즌), UEFA 올해의 선수상(2009년), FIFA 올해의 선수상(2009년), FIFA U-20 득점왕(2005년) 등. 축구화:아디다스 150g 아디제로 프라임 축구화 수입:2010년 3300만 유로(504억원). 축구 선수 중 1위 (2위 베컴은 464억원, 자료:프랑스풋볼)
나뿐만 아니라 대다수 사람들도 메시를 세계 최고의 현역 축구 선수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그를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하기 마련이다. 펠레·마라도나 그리고 메시 중 누가 최고 축구 선수일까?

마라도나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메시가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나와 펠레 중 누가 최고냐’라는 말싸움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다”라고. 재미있는 것은 마라도나가 이 말을 했을 때는 그가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일부 축구 팬들은 ‘마라도나가 메시를 두려워해 아르헨티나를 막장으로 만들어놓은 거냐’라며,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어쨌든 마라도나의 말처럼 메시에게 남겨진 숙제는 분명하다. 국가대표팀 최고의 목표 월드컵 우승 말이다. 사실, 메시는 클럽 무대에서 더 이상 이룰 게 없다. 2008~2009시즌 바르셀로나는 리그, 코파델레이, 챔피언스리그, 클럽 월드컵, 유럽 슈퍼컵, 스페인 슈퍼컵 등 6개 대회를 석권한 유럽 최초의 팀이 되었다. 그 중심에 당연히 메시가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다. 현재의 바르셀로나 전력을 평가하면 향후 그가 들어 올릴 트로피와 개인상이 얼마나 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이다.

눈을 돌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을 살펴보자. 메시는 2005년 FIFA U-20 월드컵 우승,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연령별 제한이 있는 대표팀 무대에서 이룰 수 있는 목표를 모두 달성했다. 남은 것은 남아메리카 대륙 대항전인 코파아메리카와 2014 브라질월드컵이다.

국가대표팀에서의 활약이 저조한 까닭

메시에 대해 꾸준히 나오는 평가 가운데 하나는 소속 클럽 바르셀로나에서와 달리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에서 보여주는 플레이가 기대 이하라는 것. A매치 55경기 16골의 대표팀 기록도 클럽 기록보다 빛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사실 국가대표팀과 클럽의 비교는 무의미하다. 선수 개개인의 비교는 차치하더라도 바르셀로나는 특유의 선수 육성 정책을 바탕으로 팀을 꾸려오기에 조직력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2004년 이후 7년여 동안 감독 다섯 명이 교체되었고, 이마저도 순탄치 못했다.

다행히 아르헨티나는 세르히오 바티스타 감독 부임 이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바티스타 감독은 극성스러운 언론 보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관이 뚜렷한 선수 선발과 전술을 구현해가고 있다. 무엇보다 바티스타 감독은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를 이끈 이후 메시와 좋은 교감을 유지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오는 7월 코파아메리카에서 18년 만의 우승을 노린다.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이니만큼 각오가 대단하다. 메시도 2007년 대회 결승전에서 라이벌 브라질에게 0대3으로 완패한 기억을 씻으려 할 것이다. 만일 아르헨티나가 이번 대회에서 목표인 우승을 달성한다면 2014 브라질월드컵도 노려볼 만하다.

나는 메시의 성공 비결을, 집중 견제로 인해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며 다시 달음박질치는 근성이라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이면 언제든지 성공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현재 나이는 24세. 지금은 펠레·마라도나 같은 축구 전설과의 비교를 잠시 접어두고, 그의 플레이를 느긋하게 감상해도 좋지 않을까. 아직 그에게 남은 시간은 너무나 많다.

기자명 이남훈 (축구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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