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를 같이 갔던 동료 기자는 〈플라워즈〉를 '일본여성 탐구생활'이라고 명명했다. 어찌 보면 이 영화는 여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일본 근현대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영화로서 가치를 갖는다.
남성관객에게 〈플라워즈〉는 판타지가 될 것이다. 아오이 유우, 히로스에 료코, 타케우치 유코, 스즈키 교카, 다나카 레나, 나카마 유키에, 이런 일본의 대표 여배우들과 결혼하면 어떤 기분일까? 혹은 어떤 미래가 열릴까에 대한 로망을 충족시켜주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여성 관객에게는 이 영화가 어쩌면 불편하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플라워즈〉는 영화가 현실보다 진보적인 담론을 담아낸다는 통념에 배치되는 영화다. 오히려 현실보다 더 보수적이다. 그것이 일본이 한국보다 보수적인 까닭일 수도 있겠고, 주연 여배우들의 여성성을 강조하다보니 나타난 결과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렇다. 영화는 시종일관 모성을 따르라는 메시지를 반복한다.
〈플라워즈〉를 짧고 굵게 요약하면 일본 최고 여배우들이 출연하는 '나는 아내다'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들이 미션곡으로 각축하듯, ‘나는 아내다’에서 일본 최고 여배우들은 미션캐릭터로 각축한다. ‘엄마처럼 살기 싫었던 여자’ ‘사랑에 빠진 여자’ ‘일에 빠진 여자’ ‘희생에 빠진 여자’ ‘뒤늦게 여자를 깨달은 여자’ ‘지금 이대로 행복한 여자’를 각자 열연한다.
이야기의 얼개는 이렇다. 1936년 정략결혼을 앞둔 ‘린(아오이 유우)’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녀의 세 딸, 카오루(타케우치 유코) 미도리(다나카 레나) 사토(나카마 유키에)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거쳐 사토의 두 딸, 카나(스즈키 교카)와 케이(히로스에 료코)의 일과 가족 이야기로 마무리 짓는다. 어머니에서 딸로 다시 그 딸의 딸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일본 여성들의 ‘미시사’다.
〈플라워즈〉는 제목과 다르게 ‘꽃’이 아니라 ‘과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엄마가 딸을, 혹은 딸이 엄마를 동생이 언니를, 혹은 언니가 동생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여성으로서 홀로서는 법보다 남성과 함께 서는 법,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법을 찬양한다. 여성은 스스로 피는 꽃이 아니라 과일을 맺음으로써 완성된다고 역설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워즈〉는 꽃으로 기억될 영화가 될 것이다. 아오이 유우, 히로스에 료코, 타케우치 유코, 스즈키 교카, 다나카 레나, 나카마 유키에... 영화 속 그들은 그대로 꽃이었다. 그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밀착한 카메라로 담아낸 영화의 잔상은 짧게 핀 벚꽃 만큼 강렬하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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