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만도 했다. 이미 1심에서 〈시사IN〉 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검사 10명에게 36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은 터였다. 최근 에리카 김씨가 귀국하면서 상황은 더 나빠졌다. 검찰에 출두한 김씨는 〈시사IN〉 기사의 주요 근거가 됐던 자신의 과거 발언을 부정했다. 그런데 1심 판결을 뒤집는 항소심 결과가 나온 것이다(37쪽 기사 참조).
힘센 검사들이 언론중재위 절차도 생략한 채 〈시사IN〉처럼 털어서 나올 것 없는 가난한 언론사에 덜컥 6억원짜리 손해배상부터 청구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문에서 BBK 관련 〈시사IN〉 기사가 게재된 다음 날 검찰이 반박 기자회견을 열었던 점을 들어 “검찰로서는 잘못된 정보로 인한 왜곡된 여론의 형성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볼 때 이들의 선택은 현명했다. 검찰을 잘못 건드렸다간 어떻게 되는지 정권 초반에 확실히 보여주었다. 이 정권 들어 검찰이 휘두른 칼에 전직 대통령이 목숨을 잃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스폰서 검사·그랜저 검사 등 각종 스캔들이 줄을 이었는데도 관련 검사 대부분은 브레이크 걸리는 일 없이 승진 가도를 내달렸다.
개인적으로 더 황당했던 것은, 우리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검사들이 승소할 경우 위자료를 태안 기름유출 사건 위로금으로 쓰겠다고 밝힌 점이었다. 차라리 독재정권 때처럼 끌고 가 몇 대 패고 끝낼 일이지, 왜 애꿎은 언론사 갖고 ‘공익 검찰’ 퍼포먼스까지 벌이려 든단 말인가. 감히 권유컨대, 그토록 공익에 헌신하고 싶다면 검찰이 양산한 피해자에게 먼저 눈 돌릴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영부영 촛불집회 따라나섰다 교통방해죄로 벌금 폭탄 맞은 대학생들이나, 그도 아니면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기소당한 뒤 이런저런 후유증에 시달리는 미네르바처럼 공익적 관심을 필요로 하는 대상은 널려 있다(물론 이분들이 검찰로부터 그런 관심을 받을 생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검찰이 상고를 할지, 상고를 한다면 대법원 판결은 또 어떻게 나올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그래도 일단은, 이 정권 들어 심하게 위축된 표현의 자유를 법원이 다시 한번 폭넓게 인정했다는 점에서 자축하고 싶다. ‘자유만큼 책임을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모를까, ‘자유보다 책임을 더 생각해야 하는 언론’이란 우리 모두의 불행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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