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이었다. 같은 반 친구 서넛과 머리를 맞대고 종이에 뭔가를 또박또박 적어나갔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앨범 타이틀 곡 〈교실 이데아〉 가사였다. 띄어쓰기를 무시한 채 써 내려간 가사를 뒤에서부터 거꾸로 읽어 올라갈 때, 가슴이 쿵쿵 뛰었다. “진짜 ‘피가 모자라’가 나오면 어떡하지….”

“어됐은침르가런그제이어됐젠이어됐….” 말도 안 되는 말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당연하지!). 안심하고, 다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즐겼다. 노래를 거꾸로 돌린다는 것이 가사를 거꾸로 읽어가는 뜻인 줄 알았던 서태지의 초딩 팬들이 당시 〈교실 이데아〉의 ‘백매스킹(Back Masking)’ 논란에 대처한 방식이었다.

당시에는 멍청했던 그 방식을 이번엔 써먹었어야 했다. 노래 가사를 뒤집어볼 생각만 했지, 왜 이름을 거꾸로 돌려볼 생각은 못했을까? 서태지를 영어 알파벳으로 풀어(SEOTAIJI) 뒤에서부터 읽으면 이지아(IJIA)가 나온다. 대박 특종을 할 수도 있었는데….

노홍철·정형돈 키스신 사진의 ‘결말’

비밀은 달력에도 숨어 있었다. 2009년부터 MBC 〈무한도전〉의 달력 판매 수익금을 기부 받아온 전국소년소녀가장돕기 시민연합중앙회가,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기는커녕 후원금을 주식 투자에 쏟고, 자녀 결혼 비용이나 친인척 경조사비에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유재석은 한복을 입고 클럽에서 부침개를 부치고, 박명수는 원주민 복장으로 결혼식장에 참석하고, 길은 첫 키스 장소인 김제동 집에서 꿀벌 인형 옷을 입고, 노홍철과 정형돈은 수영장에서 격렬 키스신을 연출하며 멋진 달력 그림을 만들어냈건만 엉뚱한 사람들 좋은 일만 시켜준 셈이 됐다.

농협에는 비밀이 없었다. 지난 7년 동안 비밀번호 0000만 입력하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곳, 농협 전산망이었다. 농협 체크카드를 쓰는 젊은이 여럿이 이번 주 ‘작업’ 남녀와 데이트 후 밥값 계산이 안 돼 체면 한번 단단히 구겼다. 그러면서도 혹시 마비된 농협 전산망이 복구되고 나면 카드값 사용내역이 0으로 바뀌는 마술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했건만, 농협은 자기들 잘못으로 전산망을 마비시켜놓고 제 날짜에 카드 대금을 내지 않았다며 고객들에게 연체료를 물렸다가 뒤늦게 환불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단단히 뿔난 농협 고객들, 14년간이나 결혼 사실을 숨겨온 서태지·이지아 뉴스를 보고 무릎을 친다. “농협은 저 커플의 보안력을 배워야 해!”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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