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감사원장 후보자에서 낙마한 정동기 전 민정수석이 지난달 ‘법무법인 바른’으로 복귀했다. 현재 바른의 고문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재직 7개월(2007년 12월~2008년 6월)에 7억원이라는, 고액 급여를 지급한 바로 그 법무법인이다.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전관예우 의혹을 샀다. 청문회도 열리지 못하고 낙마했던 그로서는 3년 만의 복귀이다.

정동기 변호사는 2007년 11월 대검 차장검사에서 물러난 직후 바른 공동대표 변호사에 올랐다. 한 달 뒤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이명박 대통령인수위원회 인수위원으로 법무행정분과위 간사를 맡았다. 민정수석비서관(2008년)을 거쳐 정부법무공단 이사장(2009년)을 지냈지만, 감사원 문턱은 넘지 못했다.

낙마 당시 관심은 그의 수임료 등 고액 급여에 모아졌다. 인사청문회 자료를 보면, 그의 첫 달 월급은 4600만원, 인수위원회에서 활동한 뒤인 2008년 1월부터 평균 1억1000만원으로 뛰었다. 2008년 1월부터 6월20일까지 로펌으로부터 모두 6억5300만원을 받았다. 당시 정 후보자는 “상여금을 포함해 정당한 자문료와 수임료이다”라고 해명했다.

ⓒ청와대 제공이명박 대통령(왼쪽)이 2008년 6월 정동기 민정수석비서관(오른쪽·현 ‘바른’ 고문 변호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그에게 거액의 급여를 준 바른은 어떤 곳인가? 이명박 정부 이후 바른은 법조계에서 ‘실세 로펌’으로 통한다. 가파른 성장세 때문이다.

서태지-이지아 소송에서 이지아 측 법무법인

지난해 한 언론에서 2010년 상반기 대법원 수임 사건을 분석했는데, 전 분야를 통틀어 대법원 사건을 가장 많이 맡은 로펌이 바로 최대 강자 김앤장이 아닌 바른이었다. 태평양·화우·광장·율촌 등 잘나가는 로펌을 모두 제쳤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법조계에서 ‘바른 1위’가 화제가 되면서도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로펌 소속 한 변호사는 “바른이 잘나간다는 소문이 많았는데, 수치로 나오니까 ‘그럼 그렇지’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였다”라고 말했다. ‘의외의 결과’에 ‘당연하다’는 반응이 따른 건 바른과 이명박 정부의 특수 관계 때문이다.

바른의 대표 변호사는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김동건 변호사(사시 11회), 창립 멤버 강훈 변호사(사시 24회), 대검 차장을 지낸 문성우 변호사(사시 21회)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이후 바른의 성장세를 두고 강훈 변호사의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 서울고법 판사를 지낸 그는 바른의 창립 주역이다. 2005년 이석연 전 법제처장과 함께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시변)을 만들면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대척점에 섰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때 검증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법무비서관을 맡았다가 촛불 사태로 물러났다.

이 같은 인연 때문인지, 바른은 지난 3년간 정부 관련 소송을 도맡다시피 했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가 합류하면서 잘나갔던 법무법인 화우와 비교된다. 화우 역시 참여정부 당시 수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바른은 기업 자문보다는 민형사 소송, 공정거래 소송, 금융 및 증권 소송, 노사관계 소송, 기업 소송 등 재판과 관련된 송무 분야가 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3년간 매출이 서너 배나 증가했다는 말이 도는데, 정부 관련 소송을 도맡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대선 과정에서 불거진 도곡동 땅 및 다스를 둘러싼 차명 의혹과 관련해 이 대통령의 처남 고 김재정씨의 변호를 맡은 것이 시작이었다. 2008년 광화문 일대 상인들의 집단소송 등 ‘반(反)촛불 소송’을 대리했다. KBS 정연주 전 사장이 낸 해임 무효 청구 소송에서는 ‘피고’인 이명박 대통령을 변호했다. 또 야당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미디어법 부작위 소송 당시 김형오 국회의장을 대리한 법무법인도 바른이다. 김정헌 전 문화예술위원장이 후임 오광수 위원장의 직무집행을 정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 이의 사건 등, 청와대가 관련된 사건은 거의 다 맡았다.

2010년 상반기 대법원 사건 수임 1위

정권과 가까운 ‘실세 로펌’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수임료가 비싼 대형 사건들을 바른이 수임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비자금 수사를 당한 대한통운, 채권단의 합동제재 조처를 막아달라며 가처분 신청을 낸 현대그룹 등 기업인과 기업들이 바른의 문을 두드렸다. 신한은행 사태와 관련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특경가법)상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도 바른을 찾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비롯된 ‘키코’ 사태에서 피해를 본 기업들이 법률 파트너로 삼은 것 또한 바른이었다.

그런가 하면 신정아 사건과 관련해 2008년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변론도 바른이 맡았다. 뇌물 수수·알선 수재·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변양균 청와대 전 정책실장에게 씌워진 혐의 대부분에 대해 바른은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

ⓒ시사IN 조남진서울 강남구 메디슨타워 빌딩에 위치한 법무법인 바른(왼쪽). MB 정부와 관련한 소송을 전담하면서 실세 로펌으로 불린다.
수임 사건의 ‘성적’도 나쁘지 않았다. 현대그룹 가처분 신청 사건에서는 법조계의 예상을 깨고 승소를 이끌었다. 상대 후보에 대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최구식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도 무죄 확정 판결을 이끌었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한테 미화 2만 달러를 건네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진 한나라당 의원 항소심 사건에서는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는 벌금형(80만원)을 받아냈다. 박 의원은 1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에 해당하는 벌금 300만원과 추징금 2313만원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바른이 변론에 나서며 상황이 바뀌었다. 2심 재판부는 미화 2만 달러를 받은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고, 후원금 1000만원을 받은 혐의만 인정해 벌금을 80만원으로 낮췄다. 이것이 대법원 확정 판결로까지 이어져 박 의원은 의원직을 유지했다.

반면 박진 의원과 똑같은 액수인 미화 2만달러와 돈 1000만원을 차명으로 후원 계좌에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서갑원 민주당 의원은 벌금 1200만원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피고인들의 처지에서는 형사사건 승소율이 높은 로펌을 찾을 수밖에 없다. 바른은 이명박 대통령 남은 임기에도 잘나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한때 사법 권력의 교체와 관련해 바른은 주목 대상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9년부터 사법 권력 교체가 시작되었다. 올해 대법관 14명 중 5명이, 헌법재판관 9명 중 3명이 바뀐다. 지난 2월 퇴임한 양승태 대법관의 후임으로 이용훈 대법원장은 자신의 측근인 이상훈 법원행정처 차장을 제청했다. 5월에는 이홍훈 대법관, 9월에는 이용훈 대법원장, 11월에는 진보적 판결을 냈던 박시환·김지형 대법관의 임기가 끝난다.

사법 권력 교체 관련해 주목받기도

사법 권력 교체와 관련해 정권 초반기부터 주목을 받은 이가 바른의 강병섭 변호사(사시 12회)이다. 서울중앙지법원장을 지낸 그는 2004년 대법관 후보 1순위였다. 그러나 이용훈 대법관이 한참 기수가 낮은 김영란 대전고법 부장판사(사시 20회)를 대법관으로 제청했다. 이에 반발한 강 법원장은 “최근 진보적 시민단체들이 법원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라는 퇴임사를 남기고 법복을 벗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청와대가 그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말이 돌았고, 2009년에는 신영철 후보자와 함께 최종 후보자 4명에 포함되었다. 하지만 이용훈 대법원장은 신영철 후보자를 제청했다. 당시 인사를 잘 알고 있는 한 판사는 “청와대가 밀고 있다는 말이 도는 강병섭 후보자를 피하기 위해 이 대법원장이 고육책을 선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지금은 차기 대법원장이 누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어차피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기자명 고제규·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