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가 집권 4년차에 접어들면서 레임덕 징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일종의 ‘가치 동맹’을 추구했던 참여정부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실용 동맹’ 내지 ‘이권 동맹’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하면서 훨씬 더 강한 결속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재·보선→총선→대선으로 이어질 본격적인 정치의 계절을 맞아 이들 동맹은 어떻게 움직이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금융·법조·언론·토건 영역을 두루 장악한 이들의 동향을 추적했다.

특별기획 MB와 ‘이권 동맹’
❶다시 보자, ‘고·소·영’-경제·금융을 장악하다

❷다시 보자, 권력기관-MB 정권 최후의 보루
❸다시 보자, 개국공신-화려한 출세 행진

 

 

 

 

 

 

 

지난 2월24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귀국했다. 이튿날에는 약속이나 한 듯 에리카 김씨(김경준 전 BBK 대표의 누나)가 입국했다. 한 전 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이명박 대통령 재산의 비밀을 양손에 쥔 인물이다. 이 대통령과 특별히 가까웠던 에리카 김씨는 BBK 사건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당사자이다. 두 사람 모두 이명박 정권을 송두리째 흔들 ‘폭탄’과도 같은 존재였다.

4월15일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최윤수 부장)는 한 전 청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상득 의원 등과 관련된 권력형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무혐의 처분하고, 한 전 청장의 개인 비리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이에 앞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이동열 부장검사)는 에리카 김씨의 모든 혐의에 대해 형사 처분을 면하는 것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회사 자금 319억원을 횡령한 혐의에 대해서는 동생 김경준씨가 감옥에 갔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주가조작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두 사건에서 검찰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관대하고 파격적인 판단을 내렸다.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했던 한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 앞장서서 정권의 의혹을 파묻고 있다. 참여정부 때 같으면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도 열 번은 더 당했을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검찰이 현 정권에 이중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기획 입국설, 정권과의 교감설이 무성한 상태에서 부담이 많은 수사였다. 검찰 수사가 너무 깔끔해서 오히려 신뢰도가 떨어지는 감이 없지 않다”라고 말했다.

권력이 기댈 마지막 보루는 역시 권력기관

물가 상승과 전셋값 폭등, 여기에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과학 비즈니스 벨트 분산 배치 등 지역갈등이 겹치면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견고하게 지켜오던 50% 지지도는 이제 30% 선을 걱정해야 할 수준에까지 떨어졌다. 측근들이 대통령을 공격하는가 하면 탈당까지 요구하고 있다. 든든한 지지 세력인 보수 언론도 예전 같지 않다. 과학 비즈니스 벨트 선정, LH공사의 지방 이전 등 뇌관은 곳곳에 도사린다.

여기서 권력형 비리가 하나 터지면 ‘레임덕’은 당연한 순서다. 그래서인지 정권이 기댈 보루는 권력기관밖에 없다는 말이 나온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사석에서 “한상률이나 에리카 김 모두 정권에 큰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힘이 남아 있을 때 정리해야 할 문제였다”라고 말했다.

권력기관 중에서도 특히 검찰은 정권의 ‘수호천사’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사건이 불거졌다. 이인규 전 윤리지원관은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사찰 결과를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이 일로 이영호 청와대 고용노동비서관이 옷을 벗었다. 수사 과정에서 고용노동비서관실 행정관이 공기업 임원 명의를 도용해 ‘대포폰’ 5개를 만들어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 제공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오정돈 형사1부장)은 어찌된 일인지 대포폰을 청와대에 되돌려주었다. 수집한 증거를 돌려주고 은폐한 것은 검찰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다. 검찰은 이영호 전 비서관을 무혐의 처리했다.

보수 언론인 〈중앙일보〉조차 ‘군사독재 때 같은 사찰하고, 검찰은 적당히 덮으려 하고’라는 기사를 실었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이 정부 탄생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심히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법 무시하고 충성 경쟁만…

MB 정부 들어 검찰이 법 절차를 어기면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를 했다는 논란은 계속되었다(21쪽 딸린 기사 참조). 한명숙 전 총리 사건, 〈PD수첩〉 사건, 미네르바 사건,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 사건 등 검찰이 의지를 불태운 사건에 대해 법원은 잇달아 무죄를 선고했다. 지방의 한 부장검사는 “검사들이 권력자에게는 ‘뿅망치’를 휘두르다가 힘없는 자들에게는 ‘쇠망치’를 휘두른다. 검찰이 반칙하고 있다는 의식이 국민들 사이에 깔려 있다보니, 현장에서 검사에게 대드는 피의자가 속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을 섬기는 경찰’이 되겠다던 경찰도 정권을 섬기는 태도가 검찰에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G20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날, 한 남성이 코엑스에서 “님 결혼해주세요”라는 글을 도화지에 써서 결혼 프러포즈를 하고 있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를 패러디한 이벤트였다. 하지만 경찰은 이 사내의 두 팔과 다리를 들어 연행했다. 잠시만 프러포즈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도 소용없었다. 당시 강남경찰서 담당 경찰은 “프러포즈도 1인 시위로 볼 수 있다. 경호안전특별법에 따라 코엑스 주변의 모든 집회와 시위는 원천 금지된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남진검찰은 ‘기획 입국설’이 제기됐던 한상률 전 국세청장(위)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지난 3월17일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의 방사능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는 게 아니냐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를 둘러싼 유언비어는 우려스럽고 막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음 날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방사능 물질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맨 처음 보낸 20대를 붙잡았다. 위험을 과장해 주식시장을 폭락시켰다는 혐의였다. 일본의 방사능 물질은 요즘도 우리나라로 날아오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수사 담당자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낸 당일 오후 4시에 방사능 물질이 상륙했다는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다. 피의자가 주식을 소유하지는 않았지만 주가조작 여부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라고 말했다.

정권에 잘 보이기 위한 경찰의 성과 경쟁은 이 정부 들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1980년대에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재갈 물리기’ ‘머리 밟기’ ‘날개 꺾기’ 등 고문이 되살아났다. 채수창 서울 강북경찰서장은 경찰 지휘부의 실적주의를 비판하며 조현오 경찰청장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한상률 의혹’, 국세청·검찰이 꼭꼭 파묻어

국세청도 충성 경쟁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이,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연루된 이상득 의원 로비와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 등을 제기하려 하자, 국세청이 조직적으로 사퇴를 강요하면서 휴대전화를 빼앗고 감금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 조사에서 안원구 전 국장이 이상득 의원을 만났다는 사실과 한 전 청장이 이상득 의원 아들 지형씨의 세무조사를 무마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국세청과 검찰은 의혹을 꼭꼭 파묻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검찰이 모든 의혹을 털 이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검찰 인사는 “청와대에서 한상률을 무서워한다. 그래서 앞뒤가 안 맞는 한상률의 말을 정리하느라 수사 관계자들이 고생했다는 얘기가 검찰 내에 돌았다”라고 말했다. 한 국세청 고위 관계자는 “한상률 사건은 언젠가 다시 불거질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통령 독대’가 부활되는 등 국정원에도 힘이 실렸다. 국정원 요원들의 활동 반경도 따라서 넓어졌다. 그러나 지난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에서 보듯 국정원은 최근 들어 아마추어 같은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22~23쪽 기사 참조).

 

 

 

 

ⓒ뉴시스검찰은 ‘기획 입국설’이 제기됐던 에리카 김씨(위)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지난 2월 초에는 원세훈 국정원장이 미국을 방문한 내용이 공개되었다. ‘정부가 극비리에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다 이 사실이 미국에 알려졌고, 이에 미국이 강력 반발하자 원 원장이 급히 리온 파네타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만나러 갔다’는 내용이 상세하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다른 정보기관 고위 관계자는 “원세훈 청장이 취임한 뒤부터 국정원이 어설픈 보고서를 자주 만들어낸다. 내부 통제에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국가의 정예 요원이라는 사람들의 수준이 한심하다”라고 말했다. 한 전직 국정원 직원은 “국정원의 공작은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패한 내용이 토씨 하나하나까지 언론에 브리핑되는 것이 더 큰 문제다”라고 말했다.

검찰총장의 임기가 만료되는 오는 8월이면 권력 기관장의 대폭 교체가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는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을 4대 권력기관에 앉혀서 레임덕을 돌파하겠다는 계산이다. 이미 ‘내가 바로 적임자’라고 내세우는 고위 공무원들의 충성 경쟁에도 불이 붙었다. 검찰 출신의 한 고위 공무원은 “권력기관 공무원은 퇴임 당시 어떤 자리에 있었느냐에 따라 이름과 노후가 달라진다. 청문회에서 날아가도 총장이나 청장으로 불린다. 대통령은 정권의 흠을 가장 잘 덮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발적 독립성, 대통령에게 반납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은 CEO 방식으로 부하를 부리는 방법, 즉 지위와 돈을 가지고 충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구사해 권력기관을 작동해왔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도 권력기관을 부리는 이 같은 능력을 기반으로 정치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조 교수는 “하지만 그 유효기간은 명백하다. 대선 후보가 나타나면 권력기관은 정보를 가지고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서는 본성이 있다”라고 덧붙였다.

권력기관이 줄서기 행태를 보인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MB 정부에서는 권력지향형 인물들을 노골적으로 중용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말했다. ‘정권으로부터 독립’이라는 최소한의 대의명분조차 팽개친 채 자발적 독립성을 대통령에게 반납하고 권력에 봉사하는 성향의 사람들로 권력기관장을 채웠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행정 권력을 견제할 수 있도록 입법부와 사법부에 권력을 분산하는 것이 시급하다. 권력기관장에 대한 대통령 임명권을 제한하고, 검찰 조직에 직선제와 지방분권제를 시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주진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ace@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