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만큼 곁을 주는 데 인색한 게 없다. 열두 시간 이코노미석, 꼼짝 앉고 정주행하다 보면 착륙 시점에 다다라 나와 의자가 과연 떨어질 수 있을지 고민에 휩싸인다. 비즈니스석은 다르다. 차지하는 부피 따라 가격도 달라진다. 부동산 계급사회 못지않은 ‘공중부피’ 계급사회다.

상공도 바다 위도 아닌데 공간 내주기 야박하기 이를 데 없는 호텔이 있었다. 이혜순 한복 디자이너가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신라호텔 뷔페 입장을 거절당했다. 한복의 부피감 때문에 움직일 때 다른 사람에게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뭔가 12시간 이코노미석의 불편함을 상기시키는 서러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부피감이다.

한복과 함께 트레이닝복도 출입 불가였다고 한다. ‘이태리 장인이 아무리 한땀 한땀 수놓았대도’ 이번만은 예외 없겠다. 드레스코드, 진작에 알려줬더라면 부피감 적은 타이츠나 입고 갔을 텐데. 어쨌거나 ‘19금’ 영화 보러 들어가는 극장 입구, 빨간색 ‘출입 불가’ 딱지를 맞닥뜨린 십대 시절의 두근거림 이후 참 오랜만에 보는 출입거부 사태다. 

누리꾼들은 부지런히 세계적인 부호 워런 버핏의 트레이닝복 차림과 삼성 일가의 한복 차림을 인터넷에서 구해 날랐다. G20회의에 온 정상들도 한복을 입으면 호텔 뷔페 말고 대형마트 시식 코너를 뷔페로 대체해야 할 판이다. 일본인들이 신라호텔에서 기모노를 입고 행사에 참여한 과거 모습도 발견됐다. 기모노야 폭이 좁아 부피감을 느끼게 할 리 없어서 예외. 이참에 우리 한복도 쫄쫄이로 개량해야겠다. 저고리 고름은 위험하니 생략. 이부진 사장이 사과했지만 이 이야기는 결국 외국의 해외토픽에 실렸다.

억울하면 부피를 줄이면 된다. 전북 김제의 마늘밭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부피를 줄이려 5만원권 22만 장을 준비했다. 1만원권이면 110만 장. 역시 부피감이 생명이다. 불법도박자금으로 묻어둔 110억원이 발견된 마늘밭은 순식간에 관광지가 됐다. 5만원권은 흙 색깔과도 같아 이런 용도로 그만이라고. 마늘밭이란 것도 의미심장하다. 곰이 백일간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듯이, 마늘밭을 백일간 정성으로 가꾸면 신사임당의 방문으로 순식간에 인생 역전이겠다. 그럼 앞으로 무조건 비즈니스석이다.

마을 사람들은 마늘밭 주인이 밤낮으로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한다며 감탄했다고 한다. 역시 믿을 건 땅뿐. 땅은 마늘밭 주인도 춤추게 한다. 부동산 공화국 만세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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