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IPTV가 처음 도입되던 2005년 12월 KT가 IPTV 시연회를 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명박 차기 대통령은 이른바 실용주의라는 구호 아래 사실상 시장주의로 나아갈 것이다. 이 기조는 방송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예측할 수 있다. 후보 시절 몇 차례 이런 의도를 표명했다.

2007년 11월20일 ‘IT 정책 포럼’에서 “방송·통신 융합 관련 산업을 미래의 주력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라고 했고, ‘중소기업 희망 선포식’에서는 “방송·통신 융합 시대가 열리면 채널이 수만 개가 된다. 신청하면 되는 세상이 온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발언은 후보 시절 밝힌 ‘추상적 공익성을 배제하고 산업화·세계화 마인드로 경쟁력과 효율성을 추구하겠다’는 미디어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언론으로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수단으로서 방송에 대한 개념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물론 이런 시장주의는 이명박 당선 이전에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지난해 12월28일 국회를 통과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법(IPTV법)’이 그 상징적인 예이다.

IPTV 도입은 우리가 IPTV 기술에서 상당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명분을 내세워 KT가 강력히 추진해온 멀티미디어 서비스이다. 그러나 이 서비스 역시 기본적으로는 방송영상 서비스로서 방송법 틀 속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기존 방송법과 충돌하는 부분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특별법을 제정한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 KT 논리 여과 없이 주장

IPTV는 기술 기반에서 차이가 있지만 수용자의 이용 관점에서 보면 디지털 케이블 서비스와 다를 바 없다. 따라서 IPTV는 현행 방송법의 종합유선방송사업에 준해 허가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국 기간망을 확보한 KT가 전국 77개 권역으로 나뉘어 있는 지역사업 면허 체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특별법을 주도한 것이다. 물론 KT와 정보통신부가 주도하고 여당 의원들이 찬성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도 대부분 찬성했다는 점을 미루어 생각하면 차기 정부의 미디어 정책 기조도 산업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자본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IPTV 법안을 논의한 국회 본회의 발언에서 한나라당 이재웅 의원은 ETRI 보고를 인용해 생산 유발 효과가 7년에 약 13조원, 부가가치 6조원, 그리고 일자리 7만 개가 창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9년도에 약 43조원에 달할 세계 시장에서, IPTV 사업과 관련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가진 우리나라가 국내 시장에서 IPTV 사업을 제공하지 못해 경쟁력을 잃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ETRI의 예측이 맞는지 의문도 있지만, 이 의원이 주장에는 일견 KT 논리가 여과 없이 반영되어 있다.

더욱이 이재웅 의원의 발언은 민주당 손봉숙 의원이 KT를 염두에 두고 법안이 졸속으로 처리되었다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어서 더욱 중요하다. 손 의원은 정통부 주도 아래 속전속결로 통과된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사업 법안 제9조 외국인의 주식소유 제한 규정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분을 49% 이상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 법안의 다른 조항에 따르면 KT는 외국인이 소유한 지분이 60%를 초과하게 되므로 49% 이상 지분을 가지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따라서 자회사를 설립하지 않고 IPTV 사업자로 진입을 준비하던 KT는 결국 자회사를 분리해서 IPTV 사업에 진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를 뒤늦게 발견한 정통부와 KT가 수정안을 제출해 법사위를 통과시켰는데, 이 안을 찬성하면 사업자의 이해관계를 받아들인 불공정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시스지난해 언론노조 소속 회원들이 한·미 FTA를 통한 미디어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실 종합유선방송이 지역에서 독점 사업권을 갖는 것은 종합유선방송의 횡포를 초래하기도 했고, 수용자의 이익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역사업권은 동시에 종합유선방송에 지역 매체로서 법적·도덕적 의무를 요구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지역 수용자들이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을 방송해야 하는 의무(퍼블릭 액세스권), 총선이나 지자체 선거 때 역 선거 정보 제공·토론 주최 등 지역 매체로서 수행해온 역할 등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IPTV법 도입 이후 형평성을 들어 종합유선방송도 전국 면허를 요구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로 보아 형평성을 내세워 지역사업권 체계를 포기할 가능성이 농후한데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지역 수용자의 권리와 이익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또 이명박 당선인이 후보자 시절 주장한 것처럼 통신·방송·전파·콘텐츠 등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조속히 법과 제도를 완비하겠다고 나서거나 ‘채널이 수만 개가 되는 세상’이 온다고 생각하는 사고로 새로운 서비스 산업의 관점에서만 접근할 경우 국내 방송 또는 방송·통신 산업의 확장 자체가 사회적 재앙이 될 가능성이 많다. 이것 역시 정부가 적극 추진하고 한나라당이 찬성한, 한·미 FTA 결과와 관련해볼 때 수용자보다는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국내 콘텐츠 산업부터 육성해야

한·미 FTA는 국내 방송 산업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불리한 협상이었다. 외국 자본이 간접 투자를 통해 국내 PP(프로그램 제공업 또는 방송채널 사용 사업)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즉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이 기업이 PP에 투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 케이블 방송에 적용되는 국산 프로그램 의무 편성 비율을 영화는 35%에서 30%로, 만화영화는 25%에서 20%로 완화하도록 했고, 모든 방송에서 수입하는 프로그램의 1개국 쿼터를 60%에서 80%로 완화했다. 이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미국 기업이 한국 PP를 소유하거나 프로그램 수출을 늘릴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방송산업은 뉴미디어 도입 때 항상 늘어나는 채널을 통해 방송 콘텐츠 산업의 활성화를 꾀할 것이라고 내세웠다. 이것이 수용자의 선택 폭을 넓힌다는 명분이었다. 그렇지만 국내 PP는 영세하고 힘든 반면 방송사업자는 플랫폼을 장악해 수신료 수입을 챙기고 값싼 프로그램 수입으로 이윤을 내는 불합리한 상황이 지속되어왔다. 다매체·다채널 시대가 진행되고 있지만 수용자는 다양하지 못한 싸구려 프로그램 속에서 선택의 폭은 여전히 좁은 실정이다. 그리고 한·미 FTA는 이를 가속화할 뿐이다. 즉 국내 콘텐츠 산업의 육성 없는 방송사업자 위주의 정책은 새로운 방송에 진출하려는 자본에게는 유리하겠지만, 국내 콘텐츠 산업과 수용자에게는 외려 불리해질 뿐이다.

그런 면에서 국내 콘텐츠 산업 육성 없이 새로운 방송(통신 융합) 서비스를 적극 도입하겠다는 사고는 매우 위험하다. 새로운 방송 서비스 산업 도입 때 이와 관련 있는 전자 산업, 새로운 플랫폼에 진출하는 자본 등은 이익을 얻을지 모르지만 지상파를 비롯해 국내 콘텐츠 생산을 담당하는 PP들은 싸구려 프로그램과 상업적으로 경쟁해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상파 또는 경쟁력 있는 PP에게 우수한 콘텐츠를 선도해 생산하도록 보장하는 재원 마련 등 기반 조성에 대한 정책이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그동안 보여준 이명박 당선자의 공약 속에는 디지털 콘텐츠 산업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주장은 보이지만 여전히 방송영상 콘텐츠, 그 중에서 공익적 콘텐츠에 대한 고려는 없어 보인다. 선거가 끝났으니 차분한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자명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신문방송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