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라인과 정보 비전문가.’ 최근 국가정보원 수뇌부의 인적 구성을 함축한 표현이다. 쉽게 말해 서울시청 출신 중용과 ‘북한통 및 정보통’을 배제한 외부 인사 영입을 뜻한다. 이명박(MB) 정권의 임기 말 국정원 관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레임덕을 두려워한 역대 대통령이 ‘믿을 곳은 너뿐’이라는 심정으로 임기 말 국가 정보기관에 적극 기대면서 부작용이 잦았는데, MB 정권에서도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정원을 상대로 ‘철저한 프로 정신’을 주문한 이 대통령은 4월4일 국정원 핵심 보직에 대한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을 비롯해 리비아 파견 국정원 요원의 간첩 혐의 추방 사건, 프랭크 라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미행 사건 등으로 ‘아마추어 국정원’ 원세훈 원장 체제를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던 상황이어서 수뇌부 후속 인사는 예견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아마추어 국정원장’은 그대로 두고 대신 1차장과 3차장 자리만 손을 댔다. 그것도 정보통과는 상관없는 경력의 외부 인물들을 파격 임명했다. 국내 정보를 총괄하는 신임 1차장에 외교통상부 출신 전재만씨를, 3차장에는 현역 육군 소장인 이종명 합참군사기획부장을 전격 기용한 것이다.

ⓒ국정원 제공MB 정부는 초기에 ‘정보는 국력이다’라는 기존 국정원 표석 내용을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으로 바꾸고 제막식(위)을 가졌다.

이로써 국정원은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인맥인 원세훈 원장과 목영만 기조실장, 민병환 2차장까지 합쳐 핵심 5대 요직 모두를 비정보통으로 채우는 진기록을 세웠다.

국정원 출범 사상 수장(장관급)부터 차장(차관급 4명)까지 지휘부 전원이 정보 분야 비전문가로만 채워지기는 처음이라는 점 때문에 이번 인사를 두고 국정원 안팎에서는 우려와 뒷말이 무성하다. 한 전직 정보기관 간부는 “해도 너무한 인사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체 무슨 생각으로 수뇌부를 정보 분야 아마추어들로 채워놓고 프로 근성을 주문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혀를 찼다. 또 다른 국정원 출신 인사는 “북한통도 정보통도 없는 국정원이 어디로 흘러갈지 앞날이 개탄스럽다”라고 말했다. 이런 안팎의 염려에 대해 청와대는 “과거 몸담은 조직에서 업무 수행에 탁월한 분들이라 맡은 분야 조직 장악을 잘할 것이다”라는 태도이다.

기업 마인드와 성과주의로 ‘아마추어’ 비난 자초

국정원 수뇌부에 대한 이런 기형적 인사는 임기 말 원세훈 원장 체제를 끝까지 안고 가겠다는 MB의 ‘집념과 오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한나라당 안에서조차 원세훈 원장을 교체해야 한다는 노골적 요구가 높았다. 정보와 공작에 무능한 수뇌부가 국정원을 만신창이로 만들었다고 평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측근들을 대통령직 인수위와 청와대, 내각 등에  데려다 초고속 승진을 통해 관리한 뒤 국정원에 친위대로 포진시키는 진용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다. 원세훈 원장은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때 행정1부시장을 거쳐 현 정부 들어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2009년 2월 국정원장에 기용된 그는 서울시에서 과장·국장을 하며 자신을 보필한 목영만 행안부 차관보를 기조실장으로 영입했다. ‘서울시청 라인’으로 불리는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과는 ‘바늘과 실’ 사이로 통하지만, 정보기관인 국정원 업무에는 ‘문외한’이나 다름없다. 유임된 민병환 2차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고려대 후배로 원세훈 원장이 국정원에 부임한 뒤 측근으로 관리하며 호흡을 맞춘 사이다. 국정원의 기존 수뇌부 중에서 서울시 라인과 고려대 인맥만 유임시킨 셈이다. 

ⓒ시사IN 백승기국정원 창설 이후 수뇌부 전원이 비정보통으로 채워져 우려를 낳고 있다. 원세훈 원장(위)과 목영만 기조실장, 전재만 1차장, 민병환 2차장, 이종명 3차장(아래 사진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세훈 체제는 국정원 마인드를 ‘MB식 코드’에 꿰맞추는 데 앞장섰다. 이른바 기업 마인드 주입과 성과주의 독려가 그것이다. 정보기관에 갑자기 행정적 효율성과 성과를 강조했고, 이 기준에 따라 인사도 이루어졌다. 2009년 2월 취임한 원 원장은 수시로 인사를 했다. 심할 경우 두 달에 한 번 보직을 바꿨다고 한다. 노무현 정권 때 주요 보직을 맡았던 인사는 물론이고, MB 정부 초대 원장인 전임 김성호 원장 시절의 간부들까지 70여 명을 좌천시켜 자체 교육기관인 정보대학원 등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 결과 서울시청 라인이 수뇌부를 장악한 국정원 안에서 TK(대구·경북) 출신이 요직을 독점했다는 비판이 대두됐다. ‘정보 능력보다는 정권에 대한 충성도가 인사의  최우선 기준’이라는 불만도 팽배했다.

그러면 원세훈 원장 체제 2년간 국정원에 강력하게 도입한 기업식 성과 위주의 조직 운영이 과연 실적을 높였을까. 결과는 그와 한참 거리가 멀다. 뭔가 한 건 해야 한다는 성과주의가 상호 협조 체제 구축을 막았고, 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한 공작이 잦은 사고를 일으켰다. 지난 2년간 잇따라 터진 정보 부재 및 공작 실패 사건들이 보여주듯이 국정원은 나라 안팎으로 형편없는 아마추어 정보기관이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신임 1차장·3차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프로 정신이 필요하다”라고 주문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정보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이 대통령이 주문과 다른 처방전을 내놓았다고 지적한다.

국정원을 임기 말 통치 기반으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욕심은 역설적이게도 정권의 몰락을 부채질하고 국가 정보기관을 병들게 했다. 김영삼 정부는 임기 말에 권영해 안기부장이 총풍·북풍 사건에 가담해 몰락을 자초했다. 김대중 정부는 국정원 개혁 이후 내부 권력다툼을 통제하지 못해 몰락을 자초했다. 국정원 경제단과 일부 가신그룹 사이의 대립을 상징했던 정성홍씨와 정학모씨의 권력 다툼이 대표적이다.

국정원의 탈정치화 개혁에 성공했던 노무현 정부도 임기 후반에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호남 출신인 김승규 원장을 제쳐두고 이호철 국정상황실장-이상업 국정원 2차장-김만복 기조실장으로 이어지는 부산 라인 별동대를 실세로 가동함으로써 국정원 내에 망국적 지역 갈등을 만들었다는 비판이 따랐다. 국정원에 ‘S라인 아마추어 수뇌부’를 고집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말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역사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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