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산하고 괴이한 마성의 블랙 판타지 새창
- 젊은 날엔 젊음을 모릅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젊음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를 먹은 뒤에 젊은 시절을 기억한다면 세대 간 갈등이 이렇게 심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그냥 망각의, 축복을 받은 동물입니다. <몬스터 콜스>가 잊은 줄 알았던 유년의 상처를 떠올리게 해주었습니다. 청소년기의 상처도 건드려주었습니다. 다 아문 줄 알았던 상처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현재의 상처도 돌아보게 했습니다. 괴물이 입을 열었습니다. “코너 오말리. 널 데리러 왔다.” 괴물이 벽을 밀며 말했습니다. 벽에 걸린 사진이 흔들립니다. 책과 낡은 ...
- 이루리 (작가·북극곰 편집장) 2019-02-15
- 연애할 때 절대 포기하면 안 되는 것 새창
- 연애할 때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뭘까? 때에 따라 내가 더 돈을 많이 낼 수도 있고, 자주 만날 수 없는 애인을 오래 기다릴 수도 있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며 생기는 기나긴 싸움을 견딜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것을 다 포기한다 하더라도, 내가 나 자신이기를 포기하며 살 수는 없다. 설령 그것이 타인을 포함해 나에게 고통을 준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진실하지 않은 삶은 아무리 잘 살아도 가짜일 테니까. 언제나 예의 바르고 정중한 태도로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받던 A 선배를 기억한다. 사람들은 그가 선비 같다고 했다...
- 김민아 (페미당당 활동가) 2019-02-15
- 심각함을 놀이로 바꾼 스티커 사진의 운명 새창
- 사진 기술에도 유행과 운명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이제 길거리에서 잘 눈에 띄지 않는 스티커 사진기이다. 일본에서 발명되었다는 이 즉석 사진기는 20여 년 전에 등장했다. 스티커 사진기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마다 있었고 모임 도중 이동할 때 심심풀이로 사진을 찍어 나눠 가지며 한때 전성기를 누렸다. 스티커 사진은 사진이 완전한 놀이, 이미지 게임이 되었다는 증거였다. 유행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었고,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의 득세로 설 자리를 잃었다. 그럼에도 스티커 사진은 사진 찍기의 태도를 바꿨고 의미와 소통...
- 강홍구 (사진가·고은사진미술관 관장) 2019-02-15
- 한순간도 흔하지 않고 한 장면도 뻔하지 않다 새창
-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49년이었다. 발레리나가 되고 싶어서 집을 나온 열일곱 살 여성이 자신보다 열 살 많은 의대생과 사랑에 빠졌다. 남자가 곧 군에 입대하면서 둘은 멀어졌다. 몇 해 뒤 재회했고 다시 사랑에 빠졌다. 결혼했다. 아들을 낳았다. 싸웠다. 이혼했다. 남자는 폴란드를 탈출한 뒤 독일에서 재혼했고, 여자도 영국 남자와 재혼해 런던에 정착했다. 열네 살짜리 아들과 함께. 몇 해가 흘러 또 마주치게 되었다. 독일과 영국에 떨어져 살던 두 사람이 어떻게 다시 만났는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만나자마자 곧 다시 ...
-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2019-02-15
- 남상아 “록 음악 해왔지만 로커이고 싶지 않다” 새창
- 허클베리핀 이기용이 만난 뮤지션 ㉗ 남상아 얼마 전 나는 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의 보컬 남상아를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2017년 여름 내가 속한 밴드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의 협연 이후 약 1년 반 만이었다. 우리는 함께 만든 ‘허클베리핀’의 첫 번째 앨범 <18일의 수요일>에 대해, 그리고 신림역에서 처음 만났던 오래전 그날에 대해 이야기하며 웃었다. 그보다 더 오랜 시간 나는 안타까움과 이해와 슬픔이 뒤섞인 복잡한 마음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남상아는 1990년대 중·후반...
- 이기용 (밴드 허클베리핀 리더) 2019-02-15
- [SKY 캐슬]의 최종 승자는? 새창
-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 JTBC <SKY 캐슬> 1회 시청률은 1%대였다. 10회 만에 두 자릿수를 돌파했고, 18회에 이르자 22.3% (닐슨코리아 집계)를 기록하며 비(非)지상파 드라마의 최고 전국 시청률을 경신했다.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 주효한 것은 이야기의 재미였다. 단순한 인물이 빤히 보이는 함정에 빠져 감정적으로 행동하며 괜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많은 드라마와 달리, 영리하고 경계심 강한 주인공이 그 순간 최선처럼 보이는 선택을 하지만 어떻게 해도 딜레마를 벗어날 수 ...
- 최지은 (<괜찮지 않습니다> 저자) 2019-02-15
- 일본 아닌 일본, 류큐 왕국의 수난 새창
- 오키나와 나하(那覇) 중심부에 있는 슈리(首里)성에는 200여 년 전, 성에서 열렸던 행사를 재현해놓은 미니어처가 있다. 전통적인 일본 군주 복장이라기보다는, 어딘지 한국이나 중국 복장을 닮은 차림을 한 왕이 궁정 한가운데에 서 있고, 그 앞에 장막이 쳐진 단 위에 중국에서 온 사신 두 명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왕의 부하들은 멀찍이 물러선 채 무릎을 꿇고 있다. 오롯이 왕 혼자서 중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풍경이다. 이 모습은 오키나와의 옛 이름인 류큐(琉球) 왕국의 왕이 새로 즉위한 뒤, 명나라 천자로부터 책봉서를 받는 모습을...
- 탁재형 (팟캐스트 <탁PD의 여행수다> 진행자) 2019-02-14
- K의 흔적 없는 ‘텐’ K팝 최전선에 서다 새창
- 하루에도 몇 번씩 ‘K’가 붙은 무언가를 만난다. 케이팝(K-Pop), 케이컬처(K- Culture), 케이푸드(K-Food). 이제는 K가 나인지 내가 K인지 알 수 없이 혼미해진 지금, 가열차게 외쳐본다. 대체 ‘K란 무엇인가’. 한국을 뜻하는 Korea의 K를 딴 것이니 한국적인 무엇인가 싶어 무릎을 치다가도, 그렇다면 대체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의문이 똬리를 튼다. 한복을 입고 고추장을 비벼야 한국적인가? 인터넷이 빠르고 수학을 잘해야 한국적인가? 평생을 바쳐도 명확한 해답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혼돈...
-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2019-02-12
- 문화계 들썩이는 정태춘·박은옥 노래 인생 40년 새창
-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92년 장마, 종로에서’)라고 노래했지만 그들을 만난 곳은 늘 거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공연장에서, 촛불집회 현장에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이전 반대 집회장에서 약속 없이 만날 수 있었다. 이슈의 현장에서 그저 묵묵히 지켜보았다. 언제부턴가 카메라를 들고 나와 현장을 기록했다. 정태춘·박은옥. 그 두 사람이 몇 년간 두문불출했다. 딸의 이혼 때문이었다. 수십 년을 한 몸처럼 붙어 다닌 부부였기에 딸의 이혼은 충격이 컸다. 그의 표현대로라...
- 고재열 기자 2019-02-11
- 1858년 파리의 뒷골목을 기록한 사진가 새창
- 어렸을 때 읽은 <쿠오바디스>에는 로마 황제 네로에 관해 이런 장면이 나온다. ‘로마가 불타오르는 광경을 내려다보며 시종에게 하프를 치게 하고 시를 지어 노래했다.’ 이건 후세에 지어진 ‘가짜 뉴스’이고 실제로 네로는 화재 현장을 누비며 구호 활동을 했단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건 로마의 재건이다. 요즘으로 치면 도시 재개발이다. 로마에는 원래 목조로 7층까지 올린 임대주택이 많았다. 가난한 이들과 외지인이 머물며 건물주인 귀족에게 임차료를 냈다. 이 주택들이 홀랑 타버리자 네로는 땅을 헐값에 사들여 석조로 된 공공건물을 지었...
- 이상엽 (사진가) 2019-02-01
- ‘사춘기’가 힘들다 한들 ‘며느라기’만 하랴 새창
- 웹툰으로 시작해 지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끈 <며느라기>. 이맘때 이 책을 돌아보는 것은,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에 이 땅의 수많은 며느리가 주인공 민사린과 같은 혼란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보는 못된 시어머니, 지독한 며느리는 우리 주변에 그다지 흔치 않다. 민사린이 무구영과 연애하고 결혼하면서 즉, ‘무’씨네 일원이 되어 만난 ‘시월드’ 집안은 무척 평범하다. 시댁 식구를 미워할 구석이 없는데도 민사린의 심기가 불편한 까닭은,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체화해온 관계성에 있다. 누구 하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아도 바보...
- 김문영 (이숲 편집장) 2019-02-01
- 용이 지나갈 풍수니 1층은 비워두시오 새창
- 상하이 여행 가이드북을 쓸 때다. 상하이에 있던 지인의 도움으로 꽤 괜찮은 아파트의 방 한 칸을 두 달 동안 썼다. 고급 아파트여서 집집마다 개인 정원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넓은 발코니가 있었다. 개중에 눈에 띄는 몇몇 집은 아예 발코니를 흙으로 덮고 심지어 연못을 판 집도 있었다. 말이 연못이지 발코니에 홈을 파고 물을 담을 수 있게 만든, 얼핏 보면 거대한 세숫대야 같았다. 심지어 가느다란 수로를 따라 물이 어디론가 흐르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입주민의 초대를 받았다. 내가 머물던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연못을 판 그...
- 환타 (여행작가) 2019-02-01
- 공권력과 자본이 여성 내동댕이치더라 새창
- 제주 제2공항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임 (천막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1월14일이었으니, 제주도청이 공무원 수백명을 동원해 농성자들을 기습 진압한 지 대략 일주일 만이었다. 메일을 보내온 이는 행정대집행 이후 여러 단체에서 다시금 천막과 텐트를 치고 도청 현관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며, 2월16일에 낭독회를 진행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 조금 더 다양한 사람들이 제2공항 문제에 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 행사를 기획한 듯 보였다. 그는 당연하게도 이번 농성이 지난한 싸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
- 김현 (시인) 2019-01-31
- 어느 겨울밤 ‘신청곡’을 듣다 새창
- <더 파이팅>이라는 작품이 있다. 음악이 담긴 앨범은 아니다. 현재까지 무려 120권이 발간된, 권투를 다룬 만화책이다. 이 작품은 내게 아주 복잡 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유는 이렇다. 인생 전체로 보자면 나는 <더 파이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신뢰하지 않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다. 이 작품을 본 사람들에게 먼저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주제를 어떻게 요약하겠나. ‘노력하면 이뤄진다’ 정도 되지 않겠나. 얼마 전 패션지 <에스콰이어>에 썼던 글 중 일부로 의견을 대신해본다. 나는 ‘스포츠가 곧 인생이다’라거나 ‘노력은 배...
- 배순탁 (음악평론가·<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2019-01-31
- 당신이 몰랐던 류승룡의 기막힌 사정 새창
- 2015년 겨울 어느 날 난데없이 배우 류승룡씨로부터 문자가 왔다.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전까지 일면식도 없는 사이여서 이유가 궁금했다. <시사IN>이 강제윤 섬연구소 소장과 진행하는 ‘청년 섬 캠프’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함께 가서 청년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도 들어보고 기회가 되면 후원도 하고 싶다며 만남을 청했다. 그의 마음을 붙든 것은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전남 진도군 관매도의 한 빈집을 찍은 것인데,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그 집을 청년들이 ‘멍 때릴’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로 만들어...
- 고재열 기자 2019-01-31
- 쉰다섯에 탭댄스 대박이어라 새창
- 살사댄스를 그만둔 후 몇 달쯤 지났을까? 다시 몸이 좀 근질거렸던 모양이다. 한 후배가 탭댄스를 배우러 다니는데 운동이 꽤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와우! 일반인들에게 탭댄스 가르치는 학원도 있어?’ 싶었다. 모든 것을 판매하는 이 사회에서 뭔들 없겠는가마는, 그래도 탭댄스는 뮤지컬 전공자들이나 배울 것이라 짐작했는데 의외였다. 구미가 확 당겼다. 댄스스포츠는 계속 배우고 있었다. 시작한 지 2년이 채 안 되었는데 라틴댄스인 자이브·룸바·차차차·삼바를 끝내고, 바야흐로 모던댄스인 왈츠로 들어서고 있었다. 맞다! 몸이 근질거린 ...
- 이영미 (대중문화 평론가) 2019-01-31
- 지금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는 ‘라비’ 새창
- 라비(Ravi)가 처음 대중을 만난 건 소속 그룹 빅스(VIXX)의 노래를 통해서였다. 당시 빅스는 좀비, 저주, 이중인격 등 연이어 극단적인 콘셉트로 활동하고 있었다. 라비는 눈을 희번덕거리며 뛰어나와 랩을 하곤 했다. 음산하고 야비하며 조금은 불량한 듯한 목소리로. 단단하면서 공격성을 잘 표현하는 외모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는 빅스가 펼치던 어둡고 섬뜩한 세계를 대표하는 얼굴이었다. 말하자면 빅스라는 작품 속 ‘성격 배우’ 같은 것이었다. 잘 맞는 캐릭터를 찾은 배우는 그것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자기 안에서 새로운 얼굴을 ...
-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2019-01-31
- 이토록 신랄한 마영신 작가의 만화 세계 새창
- 마영신 작가가 머리를 기르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어깨를 덮을 정도로 장발이 되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탔는데 뒤에서 말이 들렸다. “머리 잘라 개××야.” 돌아보니 누군가 통화 중이었다.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있었지만 그에게 하는 말이 분명했다. 머리 긴 남성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을 실감했다. 최근 그가 ‘다음 웹툰’에 연재 중인 <아티스트>에 같은 장면이 나온다. 웹툰 <아티스트>는 제목대로 예술가들의 세계를 그린 만화다. 지하철에서 겪은 일뿐 아니라 데뷔 후 12년간 작가가 보고 듣고 접한 경험이 농축되어 있다. 극중 ...
- 임지영 기자 2019-01-30
- 입에서 스르르 녹는 봄날의 초콜릿 이야기 새창
- 서울 용산 카카오봄(Cacao Boom)은 초콜릿 전문점이다. 카카오봄을 운영하는 고영주 대표는 한국인 ‘쇼콜라티에’ 제1호다. 1999년 벨기에 안트베르펜에서 초콜릿 전문 과정을 마쳤다. “쇼콜라티에(Chocolatier)는 초콜릿 전문 기술자, 또는 초콜릿 장인의 가게를 말해요. 파티시에(Patissier:제과사)보다 전문적으로 초콜릿을 다루는 제과사라고 보면 되죠. 저는 ‘초콜릿 기술자’라고 부르는데, 아무도 따라 하진 않네요.” 고 대표는 벨기에에서 초콜릿 전문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2001년부터 2003년까지 부산 ...
- 고영 (음식문헌 연구자) 2019-01-30
- 영화 [가버나움], 우리의 멱살을 확 잡아채다 새창
- 수갑 찬 아이가 법정에 들어선다. 자인 알 하지(자인 알 라피아). “어떤 나쁜 새끼를 찔렀기 때문에” 복역 중인 소년범인데, 녀석이 오늘 서 있는 곳은 피고석이 아니다. 원고석이다. “제가 부모를 고소했어요.” 판사가 묻는다. “왜 부모를 고소했죠?” 자인의 대답. “저를 낳아줘서요.”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만든 죄를 물어 부모를 고소한 소년. 엄마 아빠가 아이의 생년월일도 기억하지 못해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다. 피고석에 불려 나온 부모는 억울하다고 한다. 그때부터 시작되는 아이의 진술. 영화로 재현되는 아이의 열두 살...
-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2019-0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