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건들이 자꾸 일어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5월20일자 기사에서 ‘수령(김일성)’과 ‘장군(김정일)’의 초능력을 부인해버렸다. 그 초능력은 축지법이다.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란 가요도 있다. 멀쩡하게 생긴 중장년층 북한 남성들이 군복까지 빼입은 채 행렬을 지어 엄숙하게 제창한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천하를 쥐락펴락… 수령님 쓰시던 축지법 오늘은 장군님 쓰신다.” 한국인이라면 이 노래를 부르는 북한 남성들의 진지한 표정을 보고 폭소를 자제하기 힘들 것이다. ‘설마 정말 믿는 거야?’
그러나 최고 지도자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그동안 북한 체제를 버텨온 가장 중요한 이데올로기 장치란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신문〉이 북한에선 사실상 공인되어온 김일성 부자의 축지법에 대해 ‘먼 거리를 줄여 단시간에 주파하는 도술’이 아니라는 취지의 기사를 낸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 신문은, 김일성이 이끈 항일유격대가 신출귀몰한 위장과 매복으로 일본군을 소탕한 전법이 축지법으로 표현되었다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해설을 시도했다. 김일성 일가에 대한 우상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 이후 거의 60년 만에 북한 통치체제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아닐까? 이런 통치 기술의 변화는 북한에서 급격히 확산되어온 시장 시스템이 강제한 인민 개개인들의 의식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현상일 터이다.
지난 3~4월엔 한국이 K방역으로 새로운 글로벌 지위를 달성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이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초토화되며 ‘록다운’에 들어가는 국면이었다. 시민의 자유와 방역을 동시에 달성한 한국은 찬탄의 대상이 될 만했다. 그런데 K방역을 칭찬한 미국과 유럽의 선진국들이 한국인들에겐 오래된 롤모델이다. 신화가 깨졌다.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에 살아온 사람들이 해외 대국들을 두려움과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은 것은 거의 수백 년 만의 경험인 것 같다. 어쩌면 한국인들에게 K방역은 그동안 미국과 소련, 나아가 독일, 프랑스, 스웨덴을 숭배하고 그 나라들에 비춰서 스스로를 평가해온 습성에서 벗어날 계기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나의 개인적 신상에도 새로운 변동이 발생했다. 〈시사IN〉은 취재, 사진, 편집, 미술 기자 등 편집국 성원들의 무작위 투표로 편집국장을 뽑는다. 의도하지 않게 편집국장직을 맡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무겁고 힘들고 자유롭지 않은 일을 수행하게 되었지만, 팔자를 탓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드린다. 새로운 흐름을 빨리 포착하고 깊이 분석하며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 개인에게나 공동체에게나 이롭다는 것을 그동안의 기자 생활에서 지겹도록 거듭해서 체감해왔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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