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 사이에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 등을 하고 있다.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하기 위해 방호복을 입고 마스크 사이에 테이프를 붙이는 작업 등을 하고 있다.

건물 로비로 나섰다. 병원 안뜰에 서 있는 벚나무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다. 벚꽃은 대부분 시들고 군데군데 초록 잎이 나기 시작했다. 교대를 마친 김은미 간호사(41)가 로비 난간에 걸터앉아 꽃이 지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꽃을 볼 때마다 집에 있는 두 아이를 생각했다. “벚꽃이 다 져버렸어요. 어떡해….”

2월21일 코로나19 지역거점병원으로 지정된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 의료진은 봄이 온 것도, 여름이 다가오는 것도 달갑지 않다. 한겨울에 입어도 더운 방호복은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지고, 병원 맞은편 서문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은 점차 늘고 있다.

4월9일 현재 대구동산병원에는 코로나19 환자 220여 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슈퍼 진원지’였던 대구·경북 지역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하는 최일선이다. 코로나19 전담병원이기 때문에 일반 환자는 없다.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 등 병동에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 환자를 보살피는 의료진은 330여 명이다. 병원을 돌아가게 하는 건 이들 의료진만은 아니다. 구호 물품을 배분하고 이송하는 물류팀 직원, 폐기물 처리업체 노동자를 비롯한 청소노동자, 식사 대장을 관리하고 도시락을 배분하는 영양사, 보안업체 직원 등 평상시에는 잘 보이지 않는 ‘그림자 노동자’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일을 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다.

병원 측의 허락을 받고 최일선에서 사투를 벌이는 이들을 3박4일 동안 만나며 취재했다. 코호트 격리된 병동 이외 현장을 출입했다. 원래 대구동산병원 소속인 이들도 있지만 전국에서 달려온 의료진, 자원봉사자들도 활약하고 있다.

병원으로 들어올 수 있는 입구는 주차장 관리소 하나뿐이다. 주차장을 지나면 의료진이 반소매 수술복 위에 방호복을 덧입는 착의실 컨테이너가 나온다. 컨테이너 안은 들어서기만 해도 열기가 훅 끼친다. 40여 명이 동시에 교대하는 시간을 맞추려면 10여 명이 한꺼번에 들어가 방호복을 입어야 한다. 의료진들은 레벨 D 방호복을 입은 뒤 덧신을 신고, 이중으로 장갑을 낀다. 얼굴을 강하게 압박하는 N95 마스크와 고글을 쓰기 전에 코와 눈 주변에 밴드를 붙여 쓰라림을 줄인다. 근무가 끝나기 전까지는 눈이 가렵거나 눈썹이 빠져도 얼굴에 손을 댈 수 없다. 요즘에는 고글 대신 얼굴 전면을 투명 필름으로 가리는 페이스실드를 쓰기도 하지만, 수량이 넉넉하지 않을뿐더러 시야가 굴곡지기 때문에 아프더라도 고글을 택하는 간호사도 있다.

ⓒ시사IN 이명익4월7일 근무를 마친 한 간호사가 병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은 레벨 D 방호복을 입고 나와서 PAPR(전동식 공기정화 호흡기) 착의실을 한 번 더 들러야 한다. 중환자실에서는 환자와 더 가깝게 접촉할 일이 많기 때문에 마스크와 고글만으로는 안심하기가 어렵다. 중환자실 의료진은 얼굴 전체를 덮는 후드 속에서 등허리에 찬 펌프를 통해 정화된 공기를 공급받는다.

착의실 컨테이너 벽 곳곳에는 누군가 매직으로 써 붙인 응원 글이 붙어 있었다. 호남 사투리가 섞인 ‘오늘도 겁나게 수고하숑♡’ 문구가 눈에 띄었다. 대구동산병원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뉴스를 보고 전국에서 자원해온 의료진은 약 460명(누적 인원)이다. 외부 인력은 대구시에서 제공한 숙소에서 지내며 셔틀버스로 출퇴근한다. 집이 대구이지만 혹시 본인이 감염될 수도 있어 숙소에 머무르는 의료진도 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간호사는 “원래 대구시에서 2주마다 임금을 정산해주기로 했는데 3주째 받지 못하고 있다. 생활지원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3월 중순에 왔는데, 3월 초에 오신 분들은 임금은 못 받았어도 생활지원금은 받았다더라. 나처럼 생활지원금도 아직 받지 못한 사람들은 급한 대로 사비로 숙박비를 결제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간호사가 덧붙였다. “불안하긴 한데 설마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임금을 떼먹기야 하겠나. 그래도 체불이 길어진다면 무급휴가를 받고 오신 분들은 버티기 힘들 것 같다.”

착의실을 나와 병동 입구로 향하는 길목은 의료진이 신은 덧신이 아스팔트에 끌리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마스크 때문에 말하기도 어렵지만 귀를 덮은 모자나 후드 때문에 상대방 말도 잘 들리지 않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르신 환자에게는 최대한 목청을 높여 한 글자씩 또박또박 발음해야 한다. “방호복을 입으면 시야가 좁아져서 몸 전체를 돌려야 한다. 모든 동작이 커지니까 훨씬 피곤하다.” 김은향 간호사(46)가 말했다. 두 눈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서로 구별하기도 쉽지 않다. 가슴에 붙인 ‘수간호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의 스티커를 보고 식별한다. 퇴원하지 못하고 오래 머무르는 환자들은 이제 의료진의 눈매나 목소리, 체격 등으로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한다.

ⓒ시사IN 이명익대구동산병원에서 교대 근무를 마친 간호사들이 후원물품으로 들어온 피자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병동에서 나올 때까지 화장실도 못 가

병원은 데이(오전), 이브닝(오후), 나이트(야간) 3교대로 돌아간다. 매일 인력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근무시간은 하루 전날에야 알 수 있다. 2시간씩 번갈아가며 A팀-B팀-A팀-B팀 식으로 근무와 대기를 두 번 반복해야 한 교대가 끝난다. 휴게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도 병동 안에서 긴급상황이 벌어지면 곧바로 방호복을 입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기 어렵다.

교대시간 사이에 쉴 수 있는 시간은 사실상 1시간 남짓뿐이다. 교대 30분 전에는 병동별로 모여 인원을 점검한 뒤 방호복을 입으러 가야 하고, 근무가 끝나도 다음 팀에게 인수인계를 한 뒤 신중하게 방호복을 벗어 폐기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쉬는 1시간 동안 화장실을 다녀오고, 밀린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고, 간식을 먹거나 식사를 한다. 초콜릿이나 에너지바와 같은 간단한 스낵류부터 피자·치킨 같은 식사 겸 간식거리는 거의 매일 후원물품으로 들어온다. 하지만 다시 병동에 들어가야 할 경우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말라도 양껏 먹지 못한다. 한번 방호복을 입으면 병동에서 나올 때까지 화장실에 갈 수 없다. 하루 근무가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마음껏 음료를 마실 수 있다.

병동에서 야트막한 언덕을 걸어 올라오면 식당과 샤워실, 휴게실 등 의료진이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비상대책본부가 있다. 본부 입구를 지키는 보안업체 직원들은 건물로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의 체온을 잰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4월8일 현재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의료기관 종사자는 모두 241명이다). 근무를 마치고 들어오거나 퇴근하는 의료진에게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본부에 들어서면 서울, 세종, 광주, 울산, 통영 등 전국 각지에서 온 편지들로 빼곡히 덮인 벽면이 보인다.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어요!’라고 쓴 어린이의 삐뚤빼뚤한 글씨부터 ‘당장 내일이 힘든 자영업자지만, 오늘 더 힘든 당신을 응원합니다’라고 쓴 단정한 글씨까지 각양각색의 편지 수백 개가 붙어 있다. 그 앞을 오가는 의료진들은 때때로 발걸음을 멈추고 편지를 읽기도 한다.

국민의 성원 못지않게 의료진에게 큰 힘이 되는 건 생사를 오가는 환자들을 함께 돌봤던 동료들이다. 길어야 한 달, 짧게는 며칠간 함께 근무했지만 꾸준히 연락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4월8일 오후 교대를 마치고 휴게실에서 쉬고 있던 김잔디 간호사(29)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혹시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한다면 저는 또 자원해서 올 거다”라고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김보연 간호사(27)가 말을 받았다. “그럼 그때도 나랑 같이 손 맞추면 되겠네.” 각각 부산과 울산에서 대구로 온 두 간호사는 그날 마지막 근무를 끝으로 일상으로 돌아갔다.

기자명 나경희 기자 다른기사 보기 did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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