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켈 그림

지난해 가을 어설프게 알고 지내던 지인과 밥을 먹었다. 10월치고는 날이 쌀쌀해서 두꺼운 외투를 꺼내 입었고, 해도 그만 하지 않아도 그만인 말들을 이으며, 바람이 부는 언덕길을 걸어 맛집 프로그램에 나온 적 있다는 사람 많은 가게에서 따뜻한 닭 요리를 시켰다. 이 모든 것이 매우 선명하게 기억나는 이유는 그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면 진짜 X 된다는 걸 알았어요”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곰탕집 성폭력 사건 이야기였다. 그는 정말로 두렵다고 했다.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를 선고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판결을 규탄하는 온라인 카페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의 시위에 나갈까 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며칠간 지면에서 본 문장을 읊었다. ‘4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한 피해자를 찾아가 20여 차례 찔러 살해.’ ‘30대 남성이 헤어지자는 말에 피해자를 145차례 찔러 살해.’ ‘40대 남성이 왜 다른 남자랑 술 마시냐며 사귀던 여성을 흉기로 찌름.’ ‘유명 남성 헤어 디자이너 최종범, 사귀던 여성 연예인에게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강요·폭행.’ 모두 그달에만 본 기사였다.

여성은 필연적으로 패할 수밖에 없나

나는 2019년 내내 그 남자의 말을 떠올렸다. 여자친구를 주먹으로 때려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게 “사회로 돌아가 학업을 이어갈 기회를 주고자 한다”라며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했을 때. 스튜디오 성폭력 피해자에게 악성 댓글을 단 누리꾼을 수사 중이던 경찰이 “그저 남들 다는 대로 댓글 한번 달았을 뿐인데 너무하지 않으냐”라며 오히려 가해자를 감쌌을 때. 열 살 초등학생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전직 보습학원 원장에 대해, 몸을 누른 행위는 “피해자의 반항이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협박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라며 재판부가 징역 3년으로 감형했을 때. 고 장자연 성추행 혐의로 기소된 유일한 한 사람이 무죄를 선고받았을 때. 두세 살 영유아까지 포함한 전 세계 아동 대상 성범죄 영상 공유 사이트 ‘웰컴투비디오’의 운영자 손 아무개가 고작 1년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여성 스태프를 성폭행·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배우 강지환에게 재판부가 “앞으로 더 노력해서 밝은 삶을 살길 바란다”라며 집행유예를 내렸을 때. 설리와 구하라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을 잃었을 때.

이른바 ‘X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남성은 ‘X 된다’고 말할 때 가해자가 될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여성들은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두려워하는가. 대한민국에서 남자로 살면 ‘X 된다’고 말한다면, 여자로 사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 외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이곳의 여성들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서로를 살리기 위해 투사가 된다.

2019년은 그런 해였다.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은 해. 보통의 김지은들이 승리한 해. 체육계 미투를 외친 김은희씨의 승소로 성폭력 범죄를 겪은 피해자가 손해배상 청구시한인 10년이 지났더라도 정신적 피해를 비롯한 후유증에 대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는 법원 판단이 나온 해. 이토록 빛나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한 명이라도 잃으면 모두 잃는 여성들의 싸움은 필연적으로 번번이 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 패배에는 어떤 비겁함도 치졸함도 없으니, ‘X 됨’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서로를 구하며 2020년으로 갈 것이다. 한 명이라도 더 잃지 않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기자명 박수현 (다큐멘터리 감독)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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