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자료서울 영등포구 쪽방촌에 사는 한 노인이 길거리에서 주워 모은 재활용품을 정리하고 있다.

“20년 전 혹은 30년 전만 해도 가난은 불의의 산물이었다. 좌파는 그것을 고발했고 중도파는 인정했으며 우파는 아주 드물게 부정했다. 세월은 너무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바꾸어놓았다. 지금 가난은 무능력에 대한 정당한 벌이다. 가난한 자에겐 연민이 일어나지만 더 이상 가난이 의분을 유발하지 않는다(〈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르네상스, 2004).” 작가이자 사회비평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말이다. 더 나아가 사회학 교수인 에드워드 로이스는 “사람들이 느끼는 진짜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명태, 2015).

가난을 인정할 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하기 시작한 때는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이다. 소수의 상류층, 이를테면 양반이나 귀족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항상 궁핍한 생활을 했다. 굳이 가난에 도덕성을 결부시키고 도움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애써 판별할 이유가 없었다. 물질적 풍요가 확대되고 누구나 노력하면 잘살 수 있다는 계층 상승의 신화가 퍼져나가면서 가난은 연민을 자아내던 상태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문제’로 변했다.

이를테면 미국에서 가난과 사회적 배제 때문에 초래된 절망, 대응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제기된 ‘빈곤 문화’ 개념은 1970년대를 지나며 빈곤의 결과가 아닌 빈곤의 원인으로 둔갑했다. 빈곤에 빠질 법한 문화와 생활양식을 가지고 있으니 빈곤해지고, 그러므로 이들의 생활태도와 해이한 도덕 기강을 바로잡는 것이 과제가 되었다.

철거지역 가난한 이들의 삶을 오랫동안 연구했던 조은 교수는 〈사당동 더하기 25〉(또하나의문화, 2012)에서 “가난함의 경험은 그 가난을 실제로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생존의 문제지만,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생활양식”으로 이해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이제 가난은 부정수급, 복지 먹튀, 무임승차, 도덕적 해이라는 부정적 단어와 함께 움직인다.

유시민 작가는 참여정부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파스 1만3000매’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2006년 10월 ‘국민보고서’라는 이름의 공개 반성문을 발표했다. 의료급여 제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의료비가 폭등한 결과에 대한 반성과 이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 대책을 담았다. 그가 진단한 의료급여 진료비 급증의 주된 원인은 수급자들의 공짜 의식이었다. 하루에 병원 수십 군데를 전전하며 중복 처방전을 발급받아 연간 파스 1만3000장을 구입한 의료급여 환자 사례가 그 증거였다. 이러한 진단의 논리적 귀결은 이들의 의료 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제한해 재정을 절감하는 것이다. 의료급여 수급자들이 세금도 내지 않으면서 공짜로 혜택을 받고 있으니 어느 정도의 차별과 규제는 당연시했다. 결과적으로 의료급여 환자들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었다.

ⓒ시사IN 자료2014년 2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서울 송파 세 모녀가 남긴 메모와 현금 70만원이 든 봉투.

의료급여 지출 증가는 의료 제공자 탓 커

의료급여 지출 증가는 인구 고령화와 대상자 증가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가 소개한 극단적 사례들은 이용자보다는 공급자의 과다한 의료 제공과 부당청구 탓이 더 컸다. 행위별 수가제라는 진료비 상환 방식과 의료 전달체계의 부실함이 이를 가능케 한 구조적 요인이었다. 정부가 반성해야 할 지점은 시스템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나서서 문제의 책임을 의료급여 수급자에게 돌리고, 심지어 ‘납세자’ 대 ‘세금도 안 내는 수급자’를 구분하며 차별이 당연한 게 아니냐고 주장한 셈이다.

가난의 자격, 도움받을 자격에 집중하다 보면 빈곤을 낳는 구조적 문제, 즉 사회불평등 이슈는 사라져버리고 복지 의존을 어떻게 하면 줄일 것인가 하는 주제로 논의가 흘러간다. 그 결과는 부정수급에 대한 더 촘촘한 감시, 좀 더 세분화된 복잡한 자격기준이다. 이는 사회보장 제도에 대한 시민 서로간의 불신, 엄밀한 구분을 위한 행정비용, 가난한 사람들이 감내해야 할 부정적 고정관념과 삶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버스 운전기사였던 최인기씨는 대동맥류 진단을 받고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인공혈관 교체 수술을 받았다. 그는 이후 근로능력이 없는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지원받았다. 2013년 국민연금관리공단이 그에게 근로능력이 있다고 판정을 내리면서 그는 ‘조건부’ 수급자가 되었다. 생계비가 무려 60%나 깎였고, 그나마도 자활 조건을 이행해야만 받을 수 있었다. ‘취업성공 패키지’에도 등록했지만 몸 상태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2014년 지인의 도움으로 그나마 덜 힘들 것 같은 아파트 지하주차장 미화원으로 취업했다. 일을 시작한 지 겨우 3개월 만에 쓰러져 두 달 뒤에 숨졌다.

근로능력 평가는 원래 지방자치단체가 자체적으로 시행해왔지만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 때문에 2012년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 일원화되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은 그에게 1등급, 즉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상태’라고 판정했다. 아마도 당시 근로능력 평가에 참여했던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이라면 대동맥류 수술을 받고도 충분히 자신의 원래 일을 이어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주야 맞교대 경비업무나 지하주차장 청소가 아니라, 책상에 앉아서 글쓰기, 환자 상담하기, 학생 논문 지도하기 같은 일말이다. 최인기씨는 아프기 전에도 이런 일을 할 만한 근로능력이 없었고, 게다가 수술한 이후에는 원래 하던 일을 할 수 있는 근로능력마저 상실했다. 이 사건은 한국판 〈나, 다니엘 블레이크〉 사례로 언급되면서 현재 시민단체의 국가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시민단체 노동건강연대가 주최한 좌담에서 활동가들이 들려준 사연들도 가난의 자격기준에 의문을 제기한다.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60대 후반 여성 노인은 어려운 형편에도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지 않고 있었다. 주민센터에서 아들의 소득과 재산에 대한 정보제공 동의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노인은 서비스센터에서 제품 수리 업무를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아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그리고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미안해서 신청을 포기했다. 동사무소나 복지관에서 주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며 병원 진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삶을 이어갔다.

ⓒ연합뉴스지난 11월29일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촉구하는 사회복지인’ 소속 회원들이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또 다른 80대 노인은 아들 부부와 함께 살다가 갈등이 생겨 3년째 서울 동자동 쪽방에서 홀로 거주했다. 무료급식소와 다시서기센터, 동네 교회 등의 도움을 받아가며 어렵게 살고 있었다. 활동가가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하자니까 거절했다. 아들에게 연락이 갈까 봐 걱정해서다. 활동가는 아들에게 피해가 없고 ‘관계 단절 확인서’만 제출하면 된다고 1년 반을 설득한 끝에 신청을 했다. 할아버지는 수급자에서 탈락했다. 할아버지는 아들과 1년에 한 번 정도 연락했다. 통화기록 조회 결과 이 기록이 나오자 문제 삼았다.

생계형 건강보험 체납 연구에서 만난 한 비혼모는 ‘인지청구소송’에서 승소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름도 생소한데, 부모가 혼인 외 출생자를 자신의 자녀로 인지(認知)하지 않는 경우에 친생자(親生子)로 인지해줄 것을 법원에 청구하는 소송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승소가 걸림돌이 되었다. 인지청구소송에서 승소해 아버지라는 부양의무자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니, 아이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될 수 없었다. 아이 아빠가 양육비 지급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렵고 건강보험료도 장기 체납한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위해 ‘아빠 없는 아이’라는 오명 대신 경제적 곤란을 선택했다. 이런것을 선택이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또 다른 활동가는 청년 노동자 인터뷰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공장 옆자리 동료가 본명을 안 쓰고 가명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 가정이기 때문이다. 노동 사실이 알려지면 수급자격을 박탈당하니까 동료에게조차 본명을 알려주지 않았다.

노인 두 명 중 한 명이 빈곤층

오늘날 파견노동 시장은 가난의 경계에 선 이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일하러 온 파견노동자가 누구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공장에는 이들에 대한 관리 책임이 없고, 이들이 다친다 해도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어렵다. 고용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산재를 신청하는 순간 기초생활수급권을 빼앗기기 때문에 피해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할 가능성도 거의 없다. 동료 노동자와 이름조차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없는 유령 같은 존재들, 기초생활수급만으로는 살 수 없고 그렇다고 노동소득만으로도 살 수 없는, 애매하게 가난한 사람들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타운젠트는 20세기 이후 빈곤의 개념이 ‘생존’에서 ‘기본적 필요(needs)’로, 그리고 다시 ‘상대적 박탈’로 변화해왔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특정한 생활양식을 획득하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그들이 속한 사회에서 바람직하다고 인정되는 삶의 조건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자원을 갈망한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한 사회에서 평균적인 사람들이 없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자원에 비해 심각하게 부족한 자원을 가졌다. 이들은 정상적인 생활양식, 관습, 사회적 활동으로부터 배제된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가난은 뼈만 앙상하게 남은 아이, 누추한 단칸방에 누워 거동을 못하는 불치병 환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판잣집이나 벌집 같은 쪽방, 지하보도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의 모습만은 아니다.

바로 여기에서 착각이 생긴다. ‘전형적인 불우이웃’이라면, ‘찢어지게’ 가난하다면, 피붙이 하나 없는 ‘천애고아’라면, 국가가 나서서 구호하지 않는다고 쓴소리를 내고 후원금을 낼 텐데, 현실의 가난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난하다는데 냉장고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고 스마트폰도 있다. 2018년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2018년 2분기 현재 가처분소득 기준 중위소득 50% 미만에 해당하는 상대빈곤율은 15.7%나 된다. 2015년 12.8%에서 매년 꾸준히 증가한 숫자이다. 노인의 경우에는 두 명 중 한 명이 빈곤층일 뿐 아니라, 심지어 취업자도 약 8%는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 이들 중 국가 공인 ‘가난 자격증’을 획득한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의료급여 수급자 비율은 수년째 3%라는 견고한 철옹성을 지키고 있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서울 송파 세 모녀는 생전에 가난의 ‘자격’을 얻지 못했다. 근로능력이 있는 성인 자녀 두 명이 있었고, 가장인 어머니가 월 급여 120여만 원을 받으며 주방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무너져가는 판잣집이나 단칸 쪽방이 아니라 단독주택 지하층에 월세로 살고 있었다. 빠듯한 형편에도 각종 공과금을 제때 납부하는 성실한 가족이었기에 국가의 빈곤층 ‘발굴’ 레이더망에도 걸리지 않았다.

굳게 닫힌 현관문 안쪽에서는 위기가 점증하고 있었다. 큰딸은 만성질환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었고, 작은딸은 나중에 밝혀졌지만 프리랜서 만화가로 일한 원고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이들은 병원비와 생계비 때문에 카드 대출을 이용했으며, 제때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이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생계 부양자이던 어머니가 팔이 부러졌다. 주방 일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당장 생계 곤란이 닥쳤다.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면 어땠을까? 팔이 부러졌으니 모든 게 불편할 것이다. 세수하고 밥 먹고 옷을 갈아입는 게 불편하고, 두 손으로 빠르게 타이핑하던 원고를 독수리 타법으로 해결해야 하니 불편하고, 휴대전화를 한 손으로 걸고 받는 게 어려우니 불편할 것이다. 여기까지다. 생계가 막막해서 죽음을 결심한다? 겨우 팔 부러진 것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사건이, 이미 버틸 수 있는 한도의 경계에 다다른 이들에게는 결정적 타격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벼랑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만으로 가난 자격증을 발행해주지 않는다. 혹시라도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까 봐.

지난 10월17일은 빈곤 철폐의 날이었다. 이날 시민사회는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2018년 10월 주거급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이 폐지되었다. 원래는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서도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를 약속했고, 문재인 대통령의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이기도 했다. 지난 9월5일 보건복지부는 의료급여를 제외한 생계급여에서만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동안 민관 협의체까지 구성하며 합의해왔던 내용을 뒤집었다.

아직도 시련이 더 필요한가? 얼마나 더 비참함을 증명하고 견뎌내야 건강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가난하지만 오순도순한 가족, 똘똘 뭉쳐 어려움을 이겨내는 가족이란 이제 ‘도시 전설’이다. 가난해서 가족을 이루지 못하거나 가난 때문에 흩어지고, 가족이 깨지면서 가난해진다.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보장은 건강권의 기본 요소이고, 국가는 이를 보호하고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기본권의 보장을 가족에게, 이미 취약한 가족공동체에 맡기려는 국가의 모습은 비겁함 말고는 표현할 단어가 없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포용적 복지국가는 이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기자명 김명희 (시민건강연구소 상임연구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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