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염려했던 것이라고는, 한번 큰 시험에서 실패를 겪은 아이들이라 무력감이나 좌절감을 떨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라는 점 정도였다. 그래도 학생의 회복탄력성을 믿으며 강사가 정성을 다하고 기다리면 어떻게든 개선될 문제라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근거 없는 낙관은 빠르게 깨졌다. 절반 이상의 학생들은 그냥 공부를 안 했다. 공부를 할 마음도 없었고 왜 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소속 없는 스무 살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학원으로 온 아이들이 많았다. 부모의 눈치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하는 학생도 여럿이었다. 우리 반 학생들의 절반은 수업시간에도 자습시간에도 그저 눈 뜨고 앉아 있었다. 가끔은 눈이라도 떠주면 다행이었다.
학생이 공부 안 한 시간과 날짜를 자료로 차곡차곡 준비하고 여러 각본을 생각하며 아이를 불렀다. “선생님이 뭘 아시겠어요”라고 말하는 아이들은 무슨 조언을 해도 ‘꼰대의 잔소리’로만 여겼다.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며 깨달았다. 나는 학원 강사를 10년 하면서도 아이들을 몰랐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학생, 이상적인 사제 관계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보는 관점을 바꿨다. 공부를 안 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으니 재수를 하게 된 것이리라. 글 읽기 자체를 버거워하는 아이들에게, 한 문단을 넘어 다음 문단을 읽히는 것은 어렵다는 생각도 한다. 사실상 처음 공부를 해보니 힘들어서 세상 무거운 시름은 다 지고 있는 듯한 아이들에게 각자가 원하는 적정 수준의 관심과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압박을 조절하는 게 내 일인 것 같다.
이제는 되레 묻고 싶다. 이 아이들에게 수능이 너무 어려운 독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지금 글을 읽을 수 있는 세대가 맞는지. 나는 수업으로 학습 능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공부하고 있다는 기분을 판매하며 듣기 좋은 한 편의 연극을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
공부는 하기 싫고 오르지 않는 성적에 남 탓은 하고 싶어 강사 흉보는 일에 열을 올리는 아이들을 보면, 굳이 저 아이들을 품어야 하는가 의문도 든다. 하지만 교육의 본질은 ‘어떤 사람이든 아끼는 일’이었음을 자꾸만 되새긴다. 아이들에게 공부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도 내가 할 일이지만, 공부하지 않으려는 아이가 얼떨결에 공부를 했더라도 좋은 결과가 나오게 만드는 것 또한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재수학원이 아니었더라면 결코 알고 싶지 않았던 교육 시장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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