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미션 스쿨’을 다녔다. 아침마다 교내 방송으로 성경 말씀을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강당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교목 선생님이 있었고 성경 과목도 따로 공부했다. 한번은 성경 시간에 친구가 손을 들었다. “부모 따라 불교 신자인데 성경 과목을 배워야 하나요?” 교목 선생님은 “개신교 학교이니 당연히 배워야 한다”라고 못 박았다. 담임선생님도,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의지와 무관하게 ‘뺑뺑이’로 학교 배정을 받은 친구에겐 종교의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다. 요즘이야 말이 안 되는 논리지만 그땐 통했다. 중학교를 졸업하며 교회도 졸업했다.


내 종교가 귀한 만큼 다른 사람의 종교도 귀한 법인데, 개신교는 유독 배타적이다. ‘믿음천국 불신지옥’ 논리가 강하다. 요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를 보면 이 논리가 다시 떠오른다. 황교안 대표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개신교’와 ‘공안통’이다. 검사 시절부터 그는 알아주는 전도사였고 ‘구공안’의 대표 주자였다. 첫 정권 교체가 이뤄진 김대중 정부 때 공안검사 인적 쇄신을 단행했다. 새 정부 기조에 맞춘 ‘신공안’이 생겼는데, 이에 맞선 정통 공안통들은 구공안이라 불렸다. 황교안 대표 스스로 자랑하는 〈국가보안법 해설〉을 쓴 게 김대중 정부 첫해인 1998년 6월이었다. 구공안 이론서나 다름없었다.

황 대표는 검사 시절부터 ‘법리에 밝은’ 공안통이었다. 법 지식이 엉뚱한 쪽으로 발현되기도 했다. 2005년 ‘삼성 X파일’ 수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으로 특별수사팀을 지휘했다. 검찰은 독수독과(毒樹毒果:위법한 방법으로 수집한 증거는 사용할 수 없다) 논리를 내세워 안기부 불법 도·감청만 처벌하고 삼성의 비자금 조성과 로비 의혹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 당시 수사팀 검사들은 이학수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조사할 때 도청 테이프를 직접 들려주며 압박하자는 의견을 냈다. ‘구공안’ 대표 주자는 이를 묵살했다. 황교안 차장검사는 “당사자인 홍석현과 이학수가 녹취록 내용을 전면 부인해 혐의를 입증할 수 없었다”라며 모두 무혐의 처분을 했다. 2년 뒤, 삼성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이 수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 드러났다.

그렇게 법리에 밝은 황 대표가 정치인이 되더니 현행법에도 어긋난 외국인 노동자 임금 차등 발언을 하는 등 ‘1일 1구설’에 오르내리고 있다. 어찌됐든 그는 야권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이자 제1 야당 대표다. 야당이 합리적으로 정부·여당을 견제해야 정부·여당도 안주하거나 독주하지 않는다. 정치도 좀 더 나아진다. 하지만 ‘정치인 황교안’의 행보는 합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제1 야당이 있어야 할 곳은 거리가 아닌 국회다. 그의 리더십을 검증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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