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이 사퇴했다. 발단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였다. 2005년 10월 노무현 정부 때 일이다.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불구속 수사 지휘를 했다. 검찰청법 제8조(법무부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에 나온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는데도 검찰은 반발했다. “사문화되다시피 한 수사지휘권을 행사해, 검찰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 어렵다”라고 검찰은 주장했다.  


당시 대검 간부들을 중심으로 일부 검사들은 일본 검찰 사례를 살폈다. 1954년 일본 조선업계가 정·관계에 뇌물을 제공한 ‘조선의옥’ 사건 수사다. 당시 이누카이 다케루 법무상은 거물 정치인에 대한 체포를 보류하라며 수사지휘권을 행사했다. 일본 검찰에서 처음 있는 수사지휘권 발동이었다. 우리 검찰총장에 해당하는 검사총장이 부당하다며 반발했다. 여론에 밀려 법무상이 사퇴했고 나중에 요시다 내각이 붕괴했다. 2005년 당시 내가 만났던 대검 간부는 “오판했다. 조선의옥 사건처럼 검찰이 반발하면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날아갈 줄 알았다”라며 속내를 내비쳤다. 검찰 내부의 집단 반발 움직임이 보이자, 김종빈 검찰총장은 사퇴 카드를 꺼냈다. 내부 반발을 의식한 사퇴도 놀랍지만, 검사들이 일본 검찰 사례를 참조했다는 점이 더 한심해 보였다.

검찰의 패거리 의식은 이명박 정부 때도 발휘되었다. 2011년 김준규 검찰총장은 국회에서 경찰 수사 개시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자 임기 만료 46일을 남기고 사퇴해버렸다.

최근 문무일 검찰총장이 여야 4당 합의로 패스트트랙에 태운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공수처 설치 법안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피했다. 이 법안에 대해서도 검찰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검찰 반발을 어느 정도 예상했다. 어느 정권이든 검찰은 자신들의 권한이 줄어들려고 하면 늘 조직 보위 논리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반대하며 내세운 논리도 어휘만 다르고 김준규 총장 때의 그것과 거의 흡사하다. 이제 검찰 집단의 반발 움직임이 물밑으로 본격화할 것이다. 하나는 수사이고 또 하나는 로비다. 정치권과 기업에 대한 수사로 힘을 과시할 것이고, 검찰 출신 여야 의원들을 로비 창구로 활용할 것이다. 한국 검찰이 일본 검찰에서 살펴야 할 사례가 있다면 일본 검찰의 역사나 수사 방식이 아니다. 일본은 검사 출신 의원이 거의 없다. 한국 국회에는 검찰 출신 ‘배지’만 17명이다.

검찰이 수사권부터 기소권, 영장청구권까지 한손에 쥐고 있는 나라는 드물다. 검찰 개혁을 둘러싼,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본격 시작되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