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세계화에는 두 가지가 기여했다. 바로 여행과 디지털이다. 냉전 해체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선풍을 이끈 패키지여행은 싼값에 세상을 볼 기회를 제공했다. 20세기 들어 디지털 기술은 인터넷을 따라 사진을 세계화· 동시대화했다. 사람들은 여행을 하려고 사진을 찍었고 사진을 찍으려고 여행을 다녔다. 그 덕분에 여행 사진 콘테스트가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세간의 주목을 받는 공모전은 ‘HIPA(함단 국제 사진 공모전)’이다.

두바이 왕자이자 행정위원회장인 함단의 이름을 딴 이 상은 돈으로 승부한다. 우승자가 1억3000만원을 받는 등 총상금이 5억원에 이른다. 2019년 우승자가 얼마 전 발표되었다. 주제인 ‘희망’에 걸맞게 동남아시아 장애 여성이 어린 아들을 품고 허공을 보는 강렬한 느낌의 사진이다. 그런데 얼마 뒤 내부자의 폭로가 나왔다. 여행 사진가 십 수명이 모여서 이 여성을 연출해 찍은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사진계 용어 ‘빈곤 포르노그래피’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전 세계를 헤매며 사진 찍는 이유

ⓒ옹위키2019년 HIPA 우승자인 옹위키의 사진(왼쪽). 오른쪽 사진에서 흰색 티셔츠를 입은 이가 옹위키.


사실 여행을 위한 기록 도구로 디지털 카메라만 한 것이 없다. 공책을 넣고 다닐 필요도,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다. 언제 어디서든 세상을 편리하게 기록할 수 있다. 내가 방문한 곳과 내가 먹고 잔 곳의 정보를 시각적으로 풍부하게 기록해준다. 또 그 공간 안에 내가 존재했다는 증명까지 해준다.

하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는 못하는 이들이 있다. 좀 더 들어가 사진적인 완성도와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사진 여행으로 진화한다. 사진이 발명되고 몇 해 지나지 않은 1849년 프랑스인 막심 뒤 캉은 이집트 유적을 교육적으로 활용하겠다며 탁월한 여행 사진 200여 점을 제작했다.

여행 사진의 본질에는 이국취미(exoticism)가 담겨 있다. 이는 ‘자신이 인식하는 주변 공간과 다른 곳에서 느끼는 정서’라 할 수 있다. 여행 사진은 낯설고 기이하며 무언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사진 평론가 박평종은 “19세기 서양의 여행자들은 오리엔탈리즘 시각에서 여행지를 바라보았다. 중동, 아시아, 아프리카 등 그들에게 ‘타자’였던 세계는 미개하고 열등한 나라이자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세계였다”라고 말했다. 즉 여행자는 자신의 세계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타자화했다. 아름다운 자연과 위대한 문명 앞에 선 그들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평균 이하의 인간으로 취급됐다.

HIPA 우승자인 말레이시아 사진가 옹위키 역시 베트남의 산간 마을에 들어가 그런 여행 사진을 찍었다. 현대화한 도시 쿠알라룸푸르의 눈으로 벽지 산간 마을에서 살아가는 남루한 어머니와 아들을 발견한 것이다. 동행한 이들과 함께 모자를 둘러싸고 모델 삼아 무수히 셔터를 눌렀을 것이다. 그중 한 장을 골라 ‘희망’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다. 그녀의 장애와 가난은 그에게 이국취미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되었고, 보는 이들에게는 동정과 안심을 제공했다. 하지만 그 마을과 그녀 가족의 역사는 공유되지 않았고, 오직 1억3000만원짜리 피사체에 불과했다. HIPA는 연출에 대한 제재 사항도 없고 사진 조작도 아니므로 우승자를 취소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대로 옹위키에게 상을 주었다. 우리는 사진이 무엇인가를 증명한다는 착각 속에서 여전히 전 세계를 헤매며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기자명 이상엽 (사진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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