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을 제한하는 것은 정당하다.” 4월11일 세계무역기구(WTO) 판정이 뒤집어졌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전 세계가 놀랐다. 한국 정부도 예상 못한 결과라며 기뻐했다. 승소를 자신했던 일본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2013년 8월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능 오염수 300여t이 아무도 모르게 바다에 유출되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었다. 2011년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원전 사고가 난 이후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제대로 관리·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자, 한국은 같은 해 9월 후쿠시마와 인근 8개 현의 모든 수산물에 대한 수입을 금지했다. 또 수입이 가능한 모든 일본산 식품(농·수·축산물 및 가공식품)에서 세슘 등 방사능 물질이 조금이라도 검출되는 경우 플루토늄 등 17개 기타 핵종에 대한 비오염 증명서를 추가 제출하도록 했다. 식품 중 세슘 허용 기준도 370㏃(베크렐)/㎏에서 100㏃/㎏으로 강화했다.
 

ⓒ연합뉴스4월12일 윤창렬 국무조정실 사회조정실장(오른쪽 두 번째)이 ‘WTO 승소’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본은 한국에 이러한 수입 제한 조치를 철회해달라고 끈질기게 조르더니, 2015년 5월 한국을 WTO에 제소했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모두 WTO 협정의 회원국이다. WTO 협정은 여러 개의 부속협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위생 및 식물위생 조치에 관한 협정(Agreement on Sanitary and Phyto-sanitary Measures)’이다. 줄여서 SPS 협정이라고 한다. 일본은 한국의 일본 수산물 수입제한 조치가 이 SPS 협정 위반이라며 한국을 제소한 것이다.

1심과 2심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무엇?

구체적으로 일본의 제소 이유를 살펴보면 이렇다. SPS 협정은 모든 회원국에게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위생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제2.1조). 단, 그 조치는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적정 수준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정도 이상으로 무역을 제한해서는 안 되고(제5.6조), 다른 회원국들을 자의적으로 부당하게 차별해서도 안 된다(제2.3조). 일본은 바로 이 조항을 근거로 삼아 제소했다. “일본산 수산물의 세슘 수치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히 적정 보호 수준을 달성할 수 있는데 아예 수입을 금지하거나 기타 핵종 추가 검사까지 요구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무역 제한’이고, 일본의 수산물이나 다른 나라의 수산물이나 검출되는 세슘 수치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데 일본에만 이런 조치를 하는 것은 ‘차별’이다”라고 일본은 주장했다.

1심에 해당하는 WTO 분쟁해결기구 패널(주로 제3국의 전·현직 외교관 및 관련 분야 전문가 3인으로 구성)은 일본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2심이자 최종심인 WTO 항소 기구(WTO 분쟁해결기구 상설 재판관 3인으로 구성)는 1심 판정이 오히려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SPS 협정 관련 사건 중 1심이 뒤집힌 것은 사실상 최초다. 1심과 2심을 가른 결정적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1심의 판단 기준은 일본산 수산물이라는 상품 자체가 방사능 오염 때문에 위험한지에 집중돼 있었다. 세슘 수치가 100㏃/㎏보다 낮게 검출되면 안전한 식품이고, 국제식품규격기준(CODEX)에 따른 연간 방사능 노출 기준 1m㏜(밀리시버트)/년을 지키기에도 충분한데 왜 검사조차 하지 않고 아예 수입을 막느냐(㏃은 방사성 물질이 방사선을 방출하는 능력을, ㏜는 방사선에 의한 인체 영향을 각각 나타내는 단위이며, ㏜는 ㏃에 환산계수를 적용하여 계산한다), 일본이나 다른 나라나 수산물 세슘 수치는 비슷하게 나오는데 왜 일본만 차별하느냐 따위가 일본의 주된 주장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Reuter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후쿠시마현 하라가마항에서 ‘현지산 생선’을 먹고 있다.

2심의 판단 기준은 수산물 자체뿐 아니라 그 수산물을 둘러싼 생태와 환경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이 선택한 위생 보호 수준이 정당한가를 따질 때는 수산물 자체의 방사능 수치에 대한 고려만으로는 부족하다. 연간 방사능 노출 기준 1m㏜/년은 상한선일 뿐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능 노출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는 국가의 노력은 존중되어야 한다. 식품 섭취를 통한 방사능 노출뿐 아니라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방사능과 같은 요소도 고려되어야 하고 한국이 일본의 인접국임을 감안할 때 한국의 기준은 다른 국가보다 더 엄격할 수 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일본과 그렇지 않은 나라를 다르게 취급하는 것은 정당하다” 등 우리 정부의 주장에 WTO 항소심이 귀를 기울였다.

이번 판정은 WTO의 ‘결단’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이전의 국제사회에는 방사능 오염으로 인하여 인간의 생명과 건강에 해를 끼칠 것이 우려되는 식품에 대한 무역을 어떻게 제한할 수 있는지 합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WTO는 “해당 식품 자체의 방사능 수치만 놓고 판단하지 마라. 그 식품이 생산되고 섭취되는 생태와 환경을 포괄적으로 고려하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이는 자유무역과 검역 주권이라는 2개의 상충하는 가치 사이에서 자유무역에 더 기울어져 있는 것으로 평가받던 WTO가 적어도 먹거리와 방사능 오염에 관한 한 검역 주권에 더 무게를 두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결단은 결코 WTO 내부로부터 그냥 나오지 않았다. 우리 정부가 WTO 항소심에서 일일이 주장하고 입증하지 않았으면 WTO의 결단도, 한국의 승소도 가능하지 않았다. 더욱이 이 승소는 당시 박근혜 정부의 부실한 대응으로 한국에 불리하게 내려졌던 1심 판정의 페널티를 안고 일궈낸 것이었다(1심 판정의 사실관계는 항소심에서 다툴 수 없고 오로지 법률관계만 다툴 수 있다).

정부는 국민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적정한 보호 수준을 정하는 것은 주권국가의 재량”이고, “국민 여러분,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가 많은 관심을 주셨다. 감사드린다”라고 밝혔다(2019년 4월12일 정부 브리핑 일문일답). 이번 승소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고, 그 보호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국민이다.

기자명 노주희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통상위원회)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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