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1일 KBS 팩트체크K 팀이 ‘조선족은 강력범죄의 원흉인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이날 저는 서울 대림동 구석진 식당에서 시라지국(시래깃국)을 우물거리며 이 기사를 읽었습니다. 댓글을 살펴봤습니다.

“기자님께서 먼저 대림동이나 신풍, 가리봉동 이런 조선족 동네서 살아보시죠. 일주일도 못 살고 도망 나올걸.” “밤에 대림동 가보면 이런 기사 절대 못 씁니다. 쪽수 적은 한국인들만 가려서 시비 걸고, 지들끼리 웃고, 지나가면 성희롱하는 게 조선족 패거리들인데.” “책상에 앉아서 숫자 비교하지 말고 조선족 밀집지역에서 직접 몸으로 한번 겪어보든가. 기자 완장 이런 거 두르지 말고 일반인 취객처럼 한번 돌아다녀봐.”

당시 저는 대림동 생활 11일차였습니다. ‘아, 이분들 덕분에 내가 이렇게 대림동을 온종일 쏘다닐 수 있게 됐구나….’ 머물던 방이 너무 추워서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던 저는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한 달간 몸으로 겪은 대림동을 ‘팩트체크’ 해드리겠습니다.

 

 

ⓒ시사IN 신선영

 

 

 

 

대림동은 치안이 불안하다. 칼 맞아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고, 동네 분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질문입니다. 실제 2017년 12월 우발적 살인이 한 차례 일어난 바 있기 때문이죠. 피해자와 용의자는 모두 재한 조선족이었습니다. 용의자는 당시 다툼 끝에 피해자를 칼로 찌르고 급히 고향 하얼빈으로 떠났습니다. 어머니의 설득 끝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자수했죠. 2017년은 대림동 중국동포 단체들이 영화 〈청년경찰〉 상영 반대 운동을 벌인 해이기도 했습니다. 동네 이미지 개선을 위해 노력했지만 마침 영화 〈범죄도시〉 흥행과 이 사건으로 인해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고 합니다. 어쩌다 한번 우발적인 일이라 해도, 바깥에서는 ‘저기 원래 저러나 보다’ 생각하기 쉽죠.

그렇다면 실제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범죄에 대한 공포’를 얼마나 체감하고 있을까요? 대림동 토박이 한국인을 만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반복했습니다. “중국에서 이주해온 분들이 칼을 소지하고 있거나, 서로 흉기로 위협하며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나요?” 제가 만난 한국인 가운데 직접 그런 장면을 봤다는 분은 없었습니다. 이 질문을 던졌을 때 돌아오는 반응도 한결같았습니다. “다른 동네 사람들한테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일상적으로 칼부림 나는 동네는 아니다.”

질문을 바꾸어보았습니다. “실제 이 동네에 살면서 치안이 불안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나요?” 반응은 조금 갈렸습니다. “처음에는 좀 낯설고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부터 “딱히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까지. 오히려 귀화한 조선족 출신 주민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10년 전 처음 왔을 때에는 나도 이 동네가 낯설고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동네가 정비되고 사람도 많아지면서 그런 생각은 안 들게 되더라.” 제가 대림동에 사는 동안에는 어땠냐고요? 1월1일 새벽 동네 맥줏집에서 한 번, 말다툼하는 모습을 보긴 했습니다. 동네 술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장면이었죠.

 

조선족은 중국인인데 왜 스스로를 동포라고 부르나?

엄밀히 말해 ‘동포’는 법적 개념입니다. 재외동포법에서 규정하는 동포는 재외 국민과 한국계 외국인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중국 지역으로 이주한 한국인의 자녀들 역시 동포에 포함됩니다. 한국계 중국인 3세대까지는 재외동포법에 따라 동포 지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재미동포·재일동포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흔히 ‘조선족’이라 부르는 이들은 재중동포에 해당합니다. 다만 ‘재중’이라는 단어가 현재 중국에 살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한국에 살고 있는 이들은 중국에서 온 동포라는 의미로 ‘중국동포’라 통칭합니다. 결국 한국계 중국인·재중동포·중국동포·조선족은 비슷한 말입니다.

정체성 호칭은 상당히 정치적인 개념입니다. 한국 사회가 그동안 ‘조선족’이라는 말에 다소 부정적 의미를 담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한국과의 연결고리를 강조하기 위해 동포라는 개념을 더 자주 사용하기도 합니다. 일상에서 동포라는 개념은 때때로 정반대로 이해되기도 합니다. 동포라는 표현만으로는 재한 중국동포를 의미하는지, 재중 한국동포를 의미하는지 모호해지기 때문이죠. 이미 귀화한 사람들은 ‘내국인’에 해당되기 때문에 동포 개념에 맞지도 않고요.

“조선족이 중국인이지 어떻게 동포냐”라는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립니다. 귀화하지 않은 재한 조선족은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인 동시에, 동포이기도 합니다. 실제 대림동에 살고 있는 재한 조선족들도 ‘동포’ ‘조선족’ ‘한국계 중국인’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합니다. 일부 이주민들은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성을 나쁘게 볼 필요도 없다고도 설명하더군요. 참고로 우리한테 꽤 익숙한 ‘교포’라는 표현은 공식적으로는 ‘동포’라는 표현으로 대체하고 있습니다.

 

대림동에 불법체류자가 많지 않나?

과거에는 불법체류자가 많았던 것도 사실입니다. 재외동포 비자를 받는 게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거든요. 2007년 방문취업제도가 실시되면서 방문취업(H2) 비자를 받는 이들이 늘었고, 불법체류자를 양지로 끌어올릴 길도 열렸습니다. H2 비자를 받은 이들 가운데 한국에서 재외동포(F4) 비자로 전환하는 경우도 늘었고요. 재한 조선족의 경우 다른 외국인에 비해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길’이 넓은 편입니다.

지난해 10월14일 송기헌 의원실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8월 기준 중국 국적자의 불법체류 비율은 6.7%에 불과했습니다. 타이·카자흐스탄·몽골 국적에 비해 월등히 낮은 수치였습니다. 대림동 이주민 커뮤니티의 구성원 다수가 중국 국적을 지녔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네를 오가는 이들 가운데 불법체류자의 비중은 낮다고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불법체류 신분으로 이 동네에 머물기에는, 월세도 비싸고요.

 

 

중국인 상점에 가면 한국 사람은 쫓겨난다던데?
대림동 PC방에서 한국인이 쫓겨났다는 기사도 났는데?

이 지역 상점에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한국어를 잘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꽈배기 하나를 사기 위해 보디랭귀지를 동원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상점도 물건 사겠다는 손님을 쫓아내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다만 편의시설 사정은 조금 달랐습니다. 가령 PC방은 중국에서 널리 쓰이는 ‘PC방 관리 프로그램’이 깔려 있습니다. 한국 PC방에 넥슨, 피망 같은 퍼블리셔의 게임 클라이언트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한 PC방 매니저는 “설치된 프로그램 자체가 중국 서버만 접속이 가능하도록 세팅되어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모든 사업장이 그런 건 아닙니다.

 

 

대림동에 가보면 쓰레기, 담배꽁초로 난리도 아니라던데…

쓰레기와 흡연 문제는 대림동의 오랜 숙제가 맞습니다. 대림동에서 의외로 많이 볼 수 있는 게 바로 CCTV와 전봇대 앞에 놓아둔 테이블입니다. 테이블은 전봇대 옆에 쓰레기를 슬쩍 두고 가는 사람을 막기 위해 설치됐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그나마 나아졌다”라고 말하는 주민이 많습니다. 오래 거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한국식 분리배출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겁니다.

담배꽁초 투기나 흡연 문제에도 일부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저도 대림동 고시원에서 지내며 가장 힘들었던 문제가 실내에 찌든 담배 냄새였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사람이 몰리는 호프집·당구장·PC방 역시 한국 법에 따라 대부분 실내 흡연을 금지하고 있지만, 일부 2·3층 영업장에서는 늦은 시각이면 실내 흡연을 방치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상인이 오히려 대림동에서 쫓겨나는 것 아닌가?

대림동에서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전까지 대림동은 동네 사람을 상대하는 상점이 많았습니다. 2010년대 들어 외부에서 방문하는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많은 상점이 중국인을 위한 편의시설로 바뀌었습니다. 일부 상가는 중국어만 가능한 직원을 고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업종에 따라 여전히 내국인이 장사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된 원인은 상가 임대료 상승입니다. 마진이 크게 남지 않는 유통업은 동네에서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에 도태됩니다. 최근에는 중국 식자재나 물품을 파는 유통업이 임대료 상승을 견디지 못하는 경우도 생겼습니다. 동네 대형마트에서도 기본적인 중국 식자재(중국 무, 모충, 진달래, 초두부, 중국술 등)를 팔기 시작하면서 내국인·외국인 할 것 없이 유통 매장이 위태로워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한국인만 피해를 당한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 더 많은 사진과 영상은 ‘대림동 한 달 살기’ 웹페이지(daerim.sisain.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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