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곡이 끝나자 이영미 대중예술 평론가(57)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흥겨운 아랍 음악이 흘러나오자 그가 자연스럽게 자세를 잡았다. 왼손을 어깨 위로 뻗고 오른손을 배꼽 옆에 두는가 싶더니 금세 위치가 반대로 바뀌고 복부와 골반을 사정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사이 발도 쉴 틈이 없었다. “이렇게 내장을 다 움직이는 춤이 없어요.” 그가 숨을 몰아쉬며 물통을 꺼냈다. 10월1일 서울 홍제동의 한 벨리댄스 교습소 풍경이다. 이영미 평론가는 여기서 1년째 벨리댄스를 배우고 있다. 강사인 이주연 안무가가 그를 칭찬했다.

지난여름, 이영미 평론가가 5년째 여러 종류의 춤을 섭렵 중이라는 근황을 전해왔다. ‘연극과 대중예술에 대한 평론과 연구 활동을 직업으로 삼은 1세대 대중예술 연구자’로 익히 알려진 그였다. 연구 대상이라면 모를까 직접 춤을 춘다니, 선뜻 연상이 되지 않았다. 왜소한 체격인 그는 워낙 체력이 ‘부실했다’. “30대에 어마무시하게 일을 많이 했어요. 1990년대 중반부터 1년에 한 권 내지 두 권씩 책을 썼으니까. 누가 나보고 한정식 메뉴만큼 책을 많이 썼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체력이 약한데 남보다 더 일하니 모자라는 힘을 항상 한약으로 보충했죠.” 30대 중반부터 퇴행성관절염이 왔다. 침을 맞으면 잠시 나아졌다가 금세 재발했다.

ⓒ시사IN 신선영대중예술 평론가 이영미씨가 서울 홍제동의 한 벨리댄스 교습소에서 벨리댄스 연습을 하고 있다.

2013년 10월, 단행본 집필을 앞두고 걱정이 생겼다. 두문불출해야 할 시기였다. 긴 글은 엉덩이로 쓴다는 말이 맞았다. 하루 종일 붙들고 있어도 오후 서너 시가 되어야 첫 문장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면 안 된다. “운동을 해야 소화도 시키고 죽지 않을 것 같은데, 나는 이미 50대 중반이고 나가는 건 못하겠더라고요.”

북한산 바로 아래 살지만 등산도 시간과 체력 소모가 컸다. 지금 같으면 유튜브 동영상 같은 걸 보며 ‘홈트레이닝’을 했을 텐데 그런 시절도 아니었다. 눈여겨보던 동네의 댄스스포츠 학원을 찾았다. 그즈음 Mnet에서 각 분야의 댄서들이 서바이벌을 벌이는 〈댄싱 9〉가 방영되고 있었다. 해보지 않은 영역에 도전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 나이가 들면 춤을 배우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집에서 연습을 했다. 두 시간 글을 쓰다 5분간 스텝을 밟고, 밥 먹고 나서 소화시킬 겸 5분 춤추고. 그 힘으로 책을 썼다.

ⓒ남해의봄날 제공〈마녀체력〉의 저자 이영미 작가(위)는 마흔 이후 운동을 시작해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했다.
처음 강사가 무얼 배우겠느냐고 묻기에, ‘덜 야하고 우아한’ 왈츠를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모던댄스’는 초보자가 하기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속도감 있는 라틴댄스로 정하고 댄스스포츠의 하나인 자이브부터 배웠다. 댄스스포츠에도 국제경기로 규정된 종목만 10개다. 모던댄스 5종목(왈츠·탱고·퀵스텝· 폭스트롯·비엔나왈츠)과, 라틴아메리카댄스 5종목(룸바·차차차· 삼바·자이브·파소도블레)이 있다. 1년쯤 되었을 때 지인을 따라 탭댄스를 추가로 배웠다. 처음이었다면 무릎 상태 때문에 주저했을 텐데 그간 해온 경험이 있어 자신감이 붙었다. 격렬한 운동이라 다리는 아팠지만 할 만했다. 벨리댄스 역시 집에서 멀지 않은 학원을 눈여겨보았다가 1년 전부터 들렀다. 그렇게 자이브, 룸바, 살사, 탭댄스, 탱고, 왈츠, 벨리댄스 등을 섭렵해갔다. 지금은 스포츠댄스와 벨리댄스에 더해 플라멩코를 배우고 있다. 대중예술 평론가로서 호기심이 생겨 춤과 관련된 강좌가 있으면 비교적 문턱이 낮은 백화점 문화센터 등을 가리지 않고 찾았다. 공연 예술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호기심도 충족시켜주었다. 춤의 종류에 따라 무엇이 같고 어떻게 다른지 몸으로 체득하는 중이다.

춤으로 몸을 쓰며 달라진 일들

춤을 배우며 자세부터 달라졌다. 허리에 힘이 생겼고 체력도 붙었다. 룸바같이 상체를 많이 쓰는 운동을 반복하자 어깨도 좋아졌다. 무릎 통증 역시 재발하지 않았다. 운동은 필요하지만 헬스처럼 같은 움직임을 반복해야 하는 운동에는 흥미를 못 느끼는 그에게 춤은 여러모로 취향과 적성에 맞았다. 몸에 덜 맞는 종목을 가려내기도 했다. 비교적 젊은 층이 많이 배우는 살사는 ‘턴’ 동작이 많아 중심잡기가 어려웠다.

이영미 평론가를 비롯해 많은 중장년 여성들에게 운동의 목적은 몸매가 아니라 체력 도모와 생존이다. 수년간 일과 육아 등의 스트레스로 경직된 몸을 재건하려는 ‘몸부림’이기도 하다. 이영미 평론가 주변의 지인들도 마찬가지다. “몸매가 아니라 살려고 운동을 해요. 안 하면 죽을 것 같아서. 꽤 마른 동기가 있는데 얼마 전 카톡방에 큰일 났다며 1㎏이 더 빠졌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같은 몸에는 그게 적신호거든요. 개인 레슨을 해서 두어 달 만에 3㎏을 올렸어요. 30대 때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더는 힘든 거예요. 이러다간 나중에 병원 신세를 지면서 살 것 같은 불안감도 있고요.” 이 같은 특성은 베이비붐 세대 여성(1955∼1963년생)에 주목해 운동문화를 연구한 〈한국 베이비붐 세대 여성의 운동문화 연구〉(김영선, 2015) 논문에서도 드러난다. 논문은 중장년 여성들의 체중 조절의 목적이 몸매를 위한 것이 아니라 건강 차원에 있다는 걸 강조한다. 학창 시절 ‘공포스러운 체력장’을 체육 경험의 전부로 떠올리는 이들에게, 운동은 ‘반복되는 집안일이나 가족들의 뒷바라지도 전과 같이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도록 생존 체력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더해 ‘스스로 건강을 유지하여 민폐를 끼치지 않는 노후를 준비하고자’ 하는 목적을 함께 가지고 있다고 논문은 분석한다.

이영미 평론가는 중년 이상의 여성이 ‘몸의 재건’을 화두로 삼고 있는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얼마 전 출간된 〈마녀체력〉을 인상 깊게 보았다. 출판 에디터로 책을 100여 권 만들어온 동명의 저자, 이영미 작가는 마흔 살 이후 꾸준히 체력을 단련시켰다. 지금은 그때보다 강하고 단단한 몸매를 가진 50대로 살아가고 있다. 여느 사무직 노동자와 비슷하게 책상 앞에서 고혈압, 스트레스, ‘저질 체력’을 키워가던 그가 달라진 계기는 어느 여름휴가였다. 여럿이 지리산으로 휴가를 갔는데 간 김에 산에 올라가보고 싶었다. 그의 ‘저질 체력’을 아는 남편은 고개를 저었다. 만만한 산행이 아니라 민폐가 될 것 같아서 순순히 포기했지만 부아가 치밀었다. 결국 일행은 ‘등산 팀’과 ‘차밭 팀’으로 나뉘었고, 그는 ‘지리산을 코앞에 두고도 올라가지 못하고 쳐다만 보는 몸뚱아리’를 통해 처음으로 육체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 후 수영을 배우고 달밤에 공터를 달리다가 자전거를 탔다. 결국 10년 만에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 15회, 마라톤 풀코스 10회를 마치고 미시령을 자전거로 오르내리는 ‘강철 체력’이 되었다.

이영미 작가는 트라이애슬론을 하며 작은 키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했고 사이클을 통해 남자들을 추월하는 짜릿함도 맛보았다. 그는 여성들에게 몸을 날씬하게 하기보다 근육을 단단하게 만드는 운동을 권한다. 특히 나이 마흔을 여성이 체력을 키워야 할 시점으로 강조한다. ‘여성에게 마흔이란 나이는 특별한 변곡점이다. 그전까지는 젊어서 잘 몰랐던 체력의 한계가 여실히 느껴진다. 때 아닌 오십견이 찾아오면서 여기저기 몸이 아프기 시작한다. 여성으로서 성적 매력이 점차 사라지고, 아랫배나 등·허벅지에 원하지 않는 지방과 군살이 붙는다. 근력도 감소하고 기초대사량도 낮아진다.’

신체와 마음의 근육 늘리는 일은 붙어 있다

운동과 담을 쌓고 지내던 ‘책상 앞’ 중년 여성이 생존을 위해 운동하고 그 경험을 기록한 사례는 또 있다. 인권운동가로 잘 알려진 〈아무튼 피트니스〉의 저자 류은숙씨다. 그도 쉰이 될 무렵 여러 군데가 아프고 나서부터 피트니스를 시작했다. 무리하거나 폭음을 하면 ‘가슴에 지진’이 나고 다리에 쥐가 나길 예사로 하던 어느 새벽, 가슴이 너무 아파 잠에서 깼다. 검사를 했더니 당장 입원하라고 했다. ‘알리바이용’ 운동을 시작했지만 트레드밀(러닝머신) 45분 걷기가 전부였다. 근력운동에 도전한 어느 날, 팔 운동을 하고 있는 그에게 트레이너가 뭘 하느냐고 물었다. 등 운동 기구로 팔 운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개인 트레이닝(PT)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는 피트니스를 도 닦는 연습에 비유했다. ‘무거운 걸 들어 올릴 땐 자기 한계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 자기 힘의 최대치를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면서도 더 했다간 무리일 것 같은 순간을 빠르게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더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무리인 것 같기도 한, 그 애매한 짧은 순간 자기 역량에 솔직해지는 것, 도전할 줄 알면서도 물러설 줄 아는 것!’ 그 역시 운동의 목적은 ‘몸짱’이 아니다. 그저 ‘오후가 돼도 처지지 않고, 아침부터 천근만근이지 않고, 좋아하는 술을 계속 마실 수 있고, 친구가 푸념하고 고민을 털어놓을 때 귀찮아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그런 체력을’ 원했다. 그의 원칙은 단 하나. ‘나에게 맞는 식으로 꾸준히’다. 무턱대고 피트니스를 권하지는 않는다. 내가 효과를 봤다고 해서 타인에게도 맞는 건 아니다.

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과거에도 많았고 지금도 많다. 생존을 위해 또는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운동한다. 일본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는 40대의 실연에 대비하기 위해 운동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영미 평론가는 최근에야 여성들의 주도로 운동이 담론화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담론화·조직화에 탁월했던 1980년대 학생운동 세대가 50대에 접어든 것이다. “1970~1980년대 청년 문화를 이끌었던 세대가 노년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앞 세대와 차별화되는 특성을 보이는 것 같다. 1980년대 이후 대학 내 여학생의 비중이 급격하게 늘었는데 이들의 사회활동도 활발했다. 일상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데 익숙하다. 헬스·요가 등 어떤 배움의 장소에 찾아가는 걸 넘어, 자체적인 모임에 트레이너를 초빙하는 등 좀 더 능동적인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이영미 평론가도 잠시 운동을 멈춘 시간이 있었다. 문화운동가이자 연극연출가인 남편 박인배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다. 지난해 타계한 그를 8개월여 간병하는 동안 밤낮이 바뀌고 일과 춤을 끊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안 되겠다 싶었다. 남편의 친구가 시간을 내주어 일주일에 한 시간씩 다시 댄스스포츠를 배웠다. “춤이 아니었다면 운동 부족으로 내가 먼저 쓰러졌을 거예요.” 타고난 체력이 약한 그도 스스로 평하길 ‘이른 나이에 시작한 이들과 비교는 안 되지만 나이에 비해 습득이 빠른 정도로’ 실력이 향상되었다. 나이가 들면 마음뿐 아니라 ‘반강제로’ 몸을 성찰하게 된다. 류은숙 작가도 말했다. ‘신체와 마음의 근육을 늘리는 일은 동떨어져 있지 않다. 둘의 근력을 강화하고 유연성과 협력하는 능력을 늘리려면 운동이 필요하다.’

기자명 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tot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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